[칼럼] 혐오의 시대
[칼럼] 혐오의 시대
  • 김형렬 기자
  • 승인 2021.01.31 0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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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란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아주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이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혐오라는 감정은 쉽사리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혐오하기 위해선 안 좋은 경험이나 감정이 반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쉽게 혐오한다. 개인의 혐오는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결국 집단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혐오를 통한 부정적인 유대관계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끝없는 혐오의 굴레가 형성되는 것이다. 더구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혐오의 특성 때문에 혐오의 굴레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혐오는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알페스와 딥페이크, 국민청원으로 공론화 되다

 

19, 래퍼 손 심바는 자신의 SNS에 알페스(실존 인물의 애정 관계를 상상해 만든 창작물)에 관한 내용을 업로드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알페스의 대상이 됐다며 각종 커뮤니티에 공론화를 요청했다. 그 결과 국민청원 게시판에 알페스를 규제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어 각종 언론과 유튜브 등은 앞다투어 알페스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알페스 제조자 및 유포자 처벌 수사를 의뢰했다.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알페스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고 국민청원은 결국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한편, 여성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에선 알페스는 그저 창작물일 뿐 n번방, 딥페이크와 같은 성범죄와 다르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에 쓴 창작물에 불과하다며 2000년대 초창기부터 존재해온 알페스 문화가 이제야 성범죄 취급을 받는지 의아해했다. 또한, 당사자인 아이돌은 알페스를 이용해 인기를 유지하고 굿즈를 팔며, 소속사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피해자가 없는 창작 활동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이어 애꿎은 알페스를 처벌하기보단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30만 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올바른 국민청원, 그러나 혐오만을 낳다.

 

위의 두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만큼 타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알페스는 분명 아이돌 팬 창작 문화의 일부이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작품도 존재했다. 심지어 미성년자를 성적대상화 한 작품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더욱, 이 같은 알페스를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 규제가 필요했다.

 

딥페이크는 초창기엔 혁신적인 기술로 등장했다. 하지만 온라인에 유통된 딥페이크 동영상 중 90%가 성적인 영상으로 사용되며, K팝 가수도 상당수 등장한다. 이에, 실제로 딥페이크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두 청원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젠더갈등이 심화 되었다는 점이다. 알페스를 공론화시킨 래퍼 손 심바와 비와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엔 무수한 악플이 달렸다. 알페스의 주 소비층이 여성인 만큼 남성 혐오적인 댓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알페스와 딥페이크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했다. 선정적인 알페스를 모든 여성이 즐기는 것 마냥 여성을 혐오하고, 아이돌 딥페이크를 모든 남성이 즐기는 것 마냥 남성을 혐오했다. 성범죄를 근절하자는 본질적인 문제점은 희석되고 혐오만이 즐비했다. 좋은 취지의 청원은 결국 혐오만을 낳게 된 것이다.

 

젠더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남성은 남성향 커뮤니티에서, 여성은 여성향 커뮤니티에서 우물에 갇힌 개구리처럼 혐오를 반복하고 있다. 특정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논쟁은 찾아볼 수 없고 혐오하기 급급하다. 나와 다른 개인의, 집단의 생각을 들어보려 노력하지 않는다. 이번 알페스, 딥페이크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혐오의 시대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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