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
  •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본교 초대 총장
  • 승인 2011.09.26 03:43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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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제주도에 취하고 있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정부는 제주가 유네스코에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 자연유산,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록되어 트리플 크라운이라며 자랑하며 세계 자연보전 총회를 내년 이곳에 유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된 강정 앞바다의 해저를 준설하고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아 수십 척의 군함이 정박하는 군항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너무도 이율배반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 이 결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사생결단으로 4년 넘게 계속 반대해 오고 있다.
 강정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강정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하는 과정과 절차가 너무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최근 갈수록 심화되는 아시아에서의 미·중·일의 안보 경쟁 현실에서 볼 때, 제주는 평화로운 관광지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이 모든 반대 이유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더 근원적인 사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제주에 와 살면서 깨닫게 된 제주의 역사와 제주도민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주도에 새로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이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을 즈음하여 제주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기해야 한다. 역대한국 정부는 4·3을 좌익 폭도들의 봉기라고 규정하고, 50여 년 동안 이에 대한 상세한 조사나 언급을 용납하지 않았다. 4·3은 남로당 무장 세력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촉발되었지만, 그 대응 과정에서 국가의 공권력이 무장 세력 이외의 민간인들을 정당한 재판 없이 무차별 학살한 ‘제노사이드’ 에 준하는 범죄다. 전시라 하여도 민간인을 이렇게 집단으로 학살한 사건은 전쟁범죄에 해당되고 국제사회에서도 그 책임은 반드시 묻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자국민이 3만 명이나 집단 학살되었음에도 50년 동안 침묵을 강요하며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99%의 국민이 이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고 수많은 동족의 희생에 대하여 아무런 아픔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수많은 무고한 피에 물든 이 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은 그 희생자들의 무덤을 짓밟는 행위요,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다. 이 수많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에서 이념과 폭력을 뛰어넘는 평화를 창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절호의 도약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는 제주도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하여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나는 강정이 대한민국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동북아의 긴장을 해소하는 평화의 마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도 기도할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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