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
자발적 가난
  • 이계은 기자
  • 승인 2009.09.01 16:39
  • 호수 1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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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4호 사회면에서는 소비주의사회에서 존재하는‘명품’선호 현상 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그러던 중, 소비는 더 이상‘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나는 10억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 아니다. 물가도 오르는데 15억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답은 다다익선일 것이다. 우리는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가‘양의 관계’임이 분명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욕망의 추구는 인간의 본성인 양, 물욕에 대한 탐욕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요컨대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기가 더 어려운 세태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가난해 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은‘정상인’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끊임없이 생산-소비과정을 거듭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된 부의 축적은 ‘축적을 위한 축적’일 뿐이다. 무엇을 위한 축적인가. 아직도 존재하는 빈곤과 기아는 물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나누지 않아서다. 풍요로운 것을 나누기 이전에, 자발적 가난이 큰 실천이 된다.
여기서‘비정상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자발적 가난.’ 그들은 더욱 ‘비워내기’위해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는 각종 시스템을 이용하여 그들을 배제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비울수록, 내면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자발적 가난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는 조금 더 가난하게 살 ‘용기’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자발적 가난은 부조리의 세상에 대한 반항이다. 무소유는 행복의 또다른 방식이다.

무소유는 훔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은
훔친 물건이 아니더라도 훔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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