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 허좋은 기자
  • 승인 2009.09.03 14:41
  • 호수 1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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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학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지난 5월 19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시집《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유명한 황지우 한예종 당시 총장은 갑작스레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지난 3월18일부터 5월1일까지 진행된 문화부 감사는 학교 설립 이후 유례가 없는 융단폭격식 감사였다”며 감사 결과에 반발해 사퇴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후 황 전 총장은 사표가 수리됨은 물론 한예종 교수직마저 박탈당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문제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감사를 보면 △통섭교육중지 △통섭관련 교수 징계 △이론과 축소 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등 전체 12개 조항 중 4개 조항이 통섭교육과 관련되어있다. 이번 감사는 한예종이 순수예술을 전문적으로 교육해야 할 종합예술학교의 역할 보다 통섭∙이론교육 확장을 일삼고, 그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인 U-AT Lap(이하 U-AT)의 연구가 부실하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한예종에는 각 전공 별 이론교육을 담당하는 6개원(~원은 보통 대학의 단과대개념으로 기존 한예종에는 음악∙무용∙영상∙미술∙연극∙전통예술원과 협동과정이 있다)에 각각 하나의 이론과가 개설되어 있다. 통섭교육은 협동과정 소속의 서사창작과와 예술경영과에서 교육되고 있다. 또한 2008년 황지우 당시 총장은 심광현(영상이론과)교수를 단장으로 기존 교수들과 진중권씨를 객원교수로 초빙해 U-AT를 추진했다. U-AT는 예술에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접목시키려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4년 계획의 연구 프로젝트였다.
한예종의 학생들은 통섭∙이론교육 관련 4개 조항을 교권 침해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정예은(서사창작∙) 학생은“감사라면 행정적인 부분과 재정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지 4년간 진행 될 프로젝트를 보고 1년 지나 성과 없으니 교수 자르라는 것이 이번 감사”라며“아직도 이론교육은 부족하다. 이론과는 각원 개원 후 정원이 늘어난 적이 없고 협동과정은 기존 이론과에서 분리된 것이다. 이론 없는 순수예술은 없다. 무엇보다 섬세해야 할 예술을 문화부 공무원들이 탁상공론으로 해치우려는 것”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한예종 학생들이 학내 플래시몹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제공: 한예종 비대위>

문화부∙뉴라이트 단체∙종합대 예술계열 교수의 삼각동맹
감사 이전부터 뉴라이트계열 문화 단체인‘문화미래포럼’(이하 포럼)과 종합대 예술교수들의 단체인‘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회’(이하 예교련)와 같은 곳에서 이론과 폐지와 한예종 해체 등을 주장해왔다. 지난해 9월 3일 두 단체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동국대 정재형 교수는 발제에서“한예종이 대규모 종합대학과 같은 통합교육과정과 예술경영과정을 지나치게 확장”한다며 이론과와 협동과정의 폐지 및 종합예술학교를 해체하고 각 원 별로 학교를 독립시키는‘한예종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한예종 해체를 주장해오던 예교련은 2005년 출범 이후 한예종의 규모를 축소 시켜 음악원과 무용원 위주의 소규모 영재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한예종의 예술계에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한마디로‘예술계의 밥그릇 싸움’과 관련된 것이다. 포럼은 지난 2006년 11월 20일“정치와 이념에 종속된 문화계의 좌편향을 바로잡자”며 창립한 단체이다. 또한 <미디어워치>와 <빅뉴스> 등의 인터넷미디어협회(이하 인미협) 소속 언론들도 한예종의 좌파 예술학교의 온상으로 낙인찍었다. 한예종 학생 측은 이들 단체들의 바람을 실현시킨 것이 바로 문화부 감사였다고 주장했다. 7월 15일‘문화예술 행정정상화를 위한 문화 예술인 공개 토론회’발제에서 한예종 비대위 부위원장인 이현빈(영화과∙2)학생은“1년 전에 발표된 한 단체의 문건과 문화부 감사결과가 유사한 것에 학생들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며 학생들의 입장을 전했다.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보복
이번 감사로 U-AT 연구를 중단하게 된 진중권씨를 두고 그간 MB정권에 대한 비판을 줄기차게 해오던 인사에 대한 정부의 보복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다. 이미 감사 이전에 친여성향의 인미협 소속 언론들과 포럼에서도 진씨를 언급하며 그가 예술학교의 교수가 자격이 없음과 수업도 하지 않고 연구비를 수령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의 비판은 감사에서도 적용된 데다가 연구비를 전액 환수하라고까지 했다.
진씨의 수난은 방학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중앙대에서도 이어졌다. 그를 독어독문과 겸임교수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학교 측은“겸임교수는 상시적으로 소속 된 기관이 있어야한다”는 조항을 들어 진씨를 탈락시켰다. 그러나 학생 측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독어독문과의 교수와 학생들은 성명에서“학생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행위라고 학교 측을 비판했다. 진중권씨는 8월 18일자 <한겨레> 인터넷 기사에서“세 군데에서 강의했는데 작년과 올해 들어 강의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씨는 8월 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축하...?’라는 제목의 글에서“홍대 강의도 오늘 갑자기 날아갔네요.”라며 2학기에 맡기로 한 홍익대 일반대학원의‘디자인 미학’강의가 취소되었음을 알렸다. 진씨는 글 마지막에“올해 들어 웬 우연의 일치가 많은지”라며 자신을 둘러싼 사태들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이러한 사태들에서 학생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한예종 학생들은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 표명한 직후부터 학생들이 돌아가며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5월 22일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각종 집회와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감사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중앙대 학생들도 진씨의 재임용 탈락 발표 나흘 뒤 기자회견을 갖고 박범훈 총장실에 레드카드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에 학교 측은 퍼포먼스를 진행한 학생 7명에게 징계할 뜻을 내비쳤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상 징계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엄포했다.
한예종은 8월31일 박종원 총장이 취임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뉴라이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고 보수지식인 단체인 ‘싱크넷’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한예종 비대위는 그가 문화부에 총장 후보로 공천되었을 때“한예종을‘문화계 좌파의 거점’으로 지목해 해교세력으로 표현한 문화미래포럼과 싱크넷은 동질이형의 관계”라는 성명을 냈었다. 중앙대의 경우 학교 측은 진중권 재임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2학기가 개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끝은 보이지 않고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질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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