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바라본 진화론, 진화생물학
철학자가 바라본 진화론, 진화생물학
  • 임수진 기자
  • 승인 2009.08.25 18:58
  • 호수 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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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인간학 연구소 콜로키움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은 ‘진화론’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대표작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와 종(􃱜)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최초의 학설이다. 신이 만물을 창조했으며 ‘신이 자연을결정한다’는 교회의 관점이 당시 사상계를 지배했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종의기원》의 출간은 종교계, 과학계 뿐 아니라 종교 중심적인 사상에서 과학적 인식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과학과 종교 간 갈등의 심화에도 한 몫을 차지하며 많은 논쟁거리를 낳았다.

다윈이 탄생한 지 두 세기가 지난 올 해까지도 진화론을 둘러싼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을 생물학에만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에까지 영향을 미쳐 논의의 범위는 확장되었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을 논하기 위해,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본교 인간학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는 ‘진화생물학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대주제로 총 5회에 걸친 월례 세미나를 진행한다. 인간학연구소의 이번 기획은 다윈 탄생을 기념하는 한편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학문적 시각에서 조망하려는 학제간 연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본교 신승환(철학) 교수가 지난 4월 29일(수) 오후 4시 교수연구동 107호에서 ‘진화생물학의 일반적 논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신 교수는 ▲진화론 ▲진화생물학과 생명과학 ▲진화생물학과 이후의 문제 ▲생명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해석 ▲진화생물학의 층위로 이제까지 진화론에서 비롯된 논의들을 정리했다.

‘진화생물학의 일반적 논의’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세미나에서는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한 가지 분야를 집중 조명한다거나 체계적인 발표를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다룰 주제들을 제시하며 철학적 관점으로 진화론을 이해하는데 주력했다.

 

진화론과 과학의 만남

생명의 시작은 우리가 완벽하게 밝힐 수도, 또 밝힐 방법도 없다고 보는 것이 차라리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진화론, 창조론, 오파린(Oparin)의 생명 탄생설 등 여러 가설들이 존재했다. 이후 1859년 문제작 《종의 기원》의 출간과 더불어 1866년 멘델이 유전법칙을 주장하면서 이른바 ‘진화생물학’이 자연과학의 법칙에 의해 이해되기 시작했고, 1943년 슈뢰딩거가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제시하며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53년 크리크와 왓슨이 DNA의 2중 나선구조를 밝히면서 진화론이 과학의 한 분과로 인식되는 시대의 정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 교수가 본 현대 진화생물학의 철학적 원리는 이처럼 근대과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원리로 결정론적이고 수학적인 세계관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진화생물학’의 응용을 통해 생명 복제 등의 윤리적∙철학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함께 언급하며 과학적 인식에 근거한 진화생물학 이후의 문제들을 지적했다. 인간의 정신이나 자유까지도 과학에 기초한 인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사회적 의미

다른 학문과 섞이는 과정에서 다윈의 진화생물학은 합리화의 도구나 사회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적인 예로 ‘우생학’을들 수 있다. 우생학에서는 진화생물학의 ‘자연이 선택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생물체의 번영 능력이 그 생물의 우∙열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하며, ‘과학적인’것으로 알려진 IQ(Intelligence Quotient) 등을 통해 인간 종(􃱜)까지도 우∙열로 가려냈다. 이 이론에 영향을 받아 인종차별주의가 합리화 될 수 있었고,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대량 학살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도구로서의 이론으로 전락한 진화론에 철학자이며 분자생물학자인 자크 모노는 1971년 《우연과 필연》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은 서구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철학을 제공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와 더불어 오늘날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생명산업’등의 명칭으로 동물 복제를 경매하는 등의 행태와 지난 해 미국의 유전정보차별금지법 등의 제정을 들며 이것이 유전 정보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단순한 학문을 넘어선 사회적 층위의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 새로운 문제와 오해들

진화론을 마음, 인간 심리에 적용하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또 다른 학문이 나온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이른바 ‘진화심리학’이 그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마음(mind)이란 연산기관들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이며, 그 연산기관들은 식량채집 단계에서 인류의 조상이 부딪혔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이 설계한 것”으로 마음이론과 자연선택설을 통해 ‘마음’과 ‘진화’를 이해한다. 이는 생물이 번식하며 그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을 뒤집어 설명한 역설계(reverse-engineering)에 그 기본 원리를 두고 있는데, 역설계는 생물의 기관이 유기체의 번식, 생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철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닌 생물학의 문제로 마음과 두뇌에 접근하기 때문에, 여기에도 자유, 윤리, 규범, 정신 등의 문제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도덕이나 사랑과 같은 다양한 심리적∙행동적 특성을 진화의 선택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와 심리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논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다윈 이후 우리는 어떤 새로운 ‘진화론’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제기된 다양한 논의를 무시한 채 완전히 새로운 규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 교수의 말처럼 이제까지 비(􂺰)역사적이며 결정론적인 관점에 젖은 채로 진화론의 논의가 전개된 것에는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철학의 시각으로 바라본 ‘진화론’은 우리 인간에게 또 어떤 의미를 던져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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