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기도해요. 생명의 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일 기도해요. 생명의 땅을 지키기 위해”
  • 김윤주 기자
  • 승인 2012.06.08 19:12
  • 호수 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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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4대강 사업지역, 양평 두물머리

<편집자주>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기자의 심경처럼 두물머리 농민들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철거통보를 받았다. 정부는 이들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단 4가구의 농민만이 남은 두물머리에서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희망의 기도와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물이 하나가 되듯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400년 된 느티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를 떡하니 지키고 서있듯 농민들도 이 땅, 두물머리를 지키고 싶다.

낭만의 고장 양수리에 생긴 일
가슴에 응어리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청정한 공기
확 트인 한강변

…(중략)

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 섞는 두물머리로
갖은 오염과 배신의 거리를 지나
가슴 넉넉히 적셔 줄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처용의 마을

이제는
양수리로 아주 오시게

 박문재 시인의 ‘양수리로 오시게’라는 시의 일부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한 줄기로 만나는 곳이라 순우리말로는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400년이 넘은 웅장한 느티나무와 맑은 강 그리고 초록빛의 연잎들이 연인들과 사진작가들을 불러들인다.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현 정부의 최대 과제인 4대강 사업의 36경 중 하나로 지정됐다. 남한강은 이미 공사가 시작됐다. 곧 번듯한 자전거 도로와 공원 등이 들어서게 된다. 두물머리의 지역만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수 십 년째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생명평화미사 현장을 찾아서

 두물머리를 찾은 이 날은 햇빛이 강렬히 내리쬐어 무더웠다. 이 곳 어딘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드린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두물머리 초입에 들어서자 강변을 따라 길게 난 산책로가 보인다. 4대강 사업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라고 하기엔 자연의 생기가 넘쳐흘렀다. 왼쪽에는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강물이 오른쪽에는 이슬이 연잎 가운데 맺혀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미사를 드리는 곳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멀었다. 느티나무를 지나 길을 물어물어 겨우 밭까지 도착했다. 밭길을 따라 흰색 페인트칠을 한 작은 팻말들이 보인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왜 이렇게 지저분해? 유기농지 철거하고 4대강 개발공사 한다고 이렇지요.

이것이 떠나가게 된 농부의 자리입니다. 4대강 개발의 과정입니다”

 두물머리의 끝부분에 도착하자 임시로 설치한 검은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미사를 집전한 신부님 뒤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으로 흐르고 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신부님들이 직접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에는 진짜 예수가 매달려 있는 듯하다. 허름하고 태풍이 불면 금방 날아갈 것처럼 연약한 곳이었지만 여기서 미사를 드린 지 어느덧 837일이 됐다.

유기농업 특구에서 4대강 개발 특구로 변하기까지

 두물머리는 원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인구, 즉 전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 지역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물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이 지역의 유기농업에 지원과 투자를 해왔다. 이 지역은 올해로 30여 년째 유기농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물머리는 ‘유기농의 시초’라 불릴 만큼 유기농업의 발달을 이루는 데에 한 몫을 했다.

 4대강 사업을 실시하게 되면서 이 지원은 중단되었고 정부는 오히려 유기농업이 퇴비로 인해 물에 녹조현상을 발생시킨다며 금지령을 내렸다. 13년째 여기서 터를 잡고 유기농업에 종사해온 한 농부는 팔당호를 오염시키는 진짜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끈질긴 설득과 강요에 못 이겨 이제는 다 떠나고 4가구의 농민만 남아 저항의 뜻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전과자다. 지난 2009년에는 ‘공무방해죄’등으로 경찰에 연행된 주민만 20여 명이었다. 공무원들이 마을에 포크레인 등을 끌고 와서 위협을 한 적도 있었다.

어둠의 끝에서 희망의 연대를 만나다

 정부가 강행하려고 마음먹은 사업인 만큼 두물머리의 주민 몇 명이 저항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던 중 천주교에서 신부들이 농민들과 뜻을 함께 하게 됐다. 천주교연대 김재욱 사무국장은 “교회의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4대강 사업의 잘못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예언하는 단체를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됐죠. 명동성당에서 각 권역별 대표신부들이 집결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를 결성 했습니다.” 이후 낙동강, 금강등지를 기점으로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두물머리에서도 지난 2010년 2월경부터 매일 오후 3시마다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상황이 사람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4대강 사업지역으로 지정된 곳 중 유일하게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관련공무원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만약 두물머리에 신부님들이 오지 않았다면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남았을 거라고요.”

 십자가와 땅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지킬 수 있었단다. 그 마음은 이제껏 땀 흘리며 일궈온 비옥한 땅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신부님들이 마을 주민들과 합숙을 하면서 미사를 드리자 정부 측에서는 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벌금폭탄을 맞으면서 불법 경작을 하다

 이 지역은 국가의 하천부지였다. 정부가 유기농업을 장려하면서 농민들에게 하천점용권을 허가하고 5년마다 갱신해 온 것이 30년째였다. 4대강 사업 실시 이후 갑자기 하천점용권 허가를 취소했다. 농민들은 허가 취소에 대해 소송을 냈다. 1심에서 법원은 농민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패배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로 농사짓는 것은 아직 ‘불법’이다. 저항의 표시로 농사를 계속 해오던 농민들에게 몇 백만 원에 달하는 벌금폭탄이 쏟아졌다. 농민들과 연대의 뜻으로 함께 불법 경작을 하던 시민단체 ‘두물머리밭전위원회’ 회원들도 벌금폭탄을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시민단체는 4대강 사업 반대와 두물머리 유기 농지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4월 8일 발족식을 치렀었다.

 여기서 1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팔달공동집행위 집행위원장 서규섭씨는 “두물머리에 남아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덕분이에요”라고 고백했다. ‘두물머리밭전위원회’뿐만 아니라 천주교연대, 천주교 농부학교의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 녹색당의 사람들, 청년환경단체인 ‘에코토피아’,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있었다.

먹을 것 나는 땅으로 장난치면 쓰나

 미사가 끝난 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미리 준비해 둔 요깃거리를 나눠 먹었다. 신부님이 기자에게도 김으로 싼 떡 한 개를 권했다. 짭조름하면서 쫄깃한 음식이 마침 허기져 있던 배로 들어가자 피로가 좀 풀리는 듯 했다. 오늘 드린 미사의 의미를 알까 싶은 기껏해야 다섯 살 혹은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도 서로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두물머리에 마지막 남은 한 폭의 평온한 풍경이었다.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랜만의 미소가 번졌다.

 이들이 바라는 것이 그리 커다랗고 무리한 소망일까. 단지 자신들이 여태껏 몸 비비고 살아온 땅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작년, 두물머리 농민들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까지 정부에 제시했다. 정부의 개발과 농민들의 유기농업에 대한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 애쓴 대안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대안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 답변도 받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이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바로 두물머리죠”

 4대강 사업에 대해 서규섭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떼를 쓰고 있다. 농민들의 터전인 밭을 자전거 도로로 바꾸고 공원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4대강이 친환경적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싶은 게 올해 마지막 억지인 듯하다. 이 억지가 현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오는 12월 19일에 두물머리 농민들의 앞날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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