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도 모순은 대학생의 아르바이트 현장에도 존재한다
구제도 모순은 대학생의 아르바이트 현장에도 존재한다
  • 장재란 기자
  • 승인 2012.08.31 12:48
  • 호수 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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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이 뜨거운 날들이 계속되었던 여름, 대학생들의 방학은 바쁘기 만하다. 뜨거운 무더위 속, 너무 바빠서 지친 것일까, 아르바이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청년들의 눈에는 고통스러움이 가득하다.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가,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바라보게 된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혹시, 그 작은 매장에서 업주의 횡포에 불평등을 느끼고 있진 않았는가, 이로 인해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탄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 기사를 통해  21세기형 구제도 모순의 단면을 보여주는 아르바이트 현실에서의 계급 구조에 관해 알아보자.     -편집자주-

"최저임금은 줄 수 없다"며 "수습기간에 시급은 2400원이고

3개월 지나면 시급 3600원이니 그렇게 알고 일을하라, 시급은 올려줄 수 없다"는

 선포를 하였다.

 대학에 합격했다! 조금 더 공부해볼까 싶었지만 어서 어서 대학생이 되어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자유! 그 얼마나 소원했던 단어인가. 친구들아! 중,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은 잊어라. 난 정말 예쁜 여자가 되어 너희들을 놀라게 해줄테니. 이렇게 당당하게, 때론 설레기도 하면서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다니다 보니,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회에서 나에게 어떠한 제한도 하지 않는 ‘성인’이 되었는데 아직도 나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청소년’인 것이다. 부모님께서 ‘누구네 딸은 알바를 해서 용돈은 자기가 번다더라’ 혹은 ‘등록금이 얼마가 나왔다더라’라는 말을 하시면 내 귀가 유독 반응한 것인지, 내 몸 전체까지도 움츠러들었다. 점점 ‘누구네 딸’처럼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솟았다. 그러고 보니 부쩍, 아빠의 작아진 등과 염색물 빠진 엄마의 머리카락에서 하얀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꼭, 반드시 누구네 딸처럼 되어야겠다. 아니, 그래야만 고생하시는 우리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고 몇 년이 흘렀다. 다시 돌이켜보면 아랫입술을 꽉 깨물도록 사회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면접을 하러갔을 때,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생각과 그저 잘 보이려는 마음에 방실방실 웃었다. 이런 나에게 사장은 “최저임금은 줄 수 없다”며 “수습기간에 시급은 2400원이고 3개월 지나면 시급 3600원이니 그렇게 알고 일을 하라, 시급은 올려줄 수 없다”는 선포를 하였다. ‘최저임금이 뭐지......?’ 모르겠다. 다 필요 없다. 당시에는 나에게 돈을 준다는 것, 돈을 번다는 사실이 나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사장이 원하는 단정한 모습으로 편의점으로 향하곤 했다. 쌀쌀한 날씨와 더불어, 비가 오는 날이면 축축한 공기까지 더해, 몸은 더 무거워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바쁘고 힘들었다. 매일 아침이면 상품들을 들어내고 진열대를 걸레로 닦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바닥과 쓰레기통 등 청소를 하면서 틈틈이 손님이 들어오면 상품을 계산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사로부터 물건이 들어오면 유통기한에 따라, 진열대 위 상품을 재배치했다. 고3을 막 버티고 합격 한 패기 때문일까, 일이 조금 바빠서 힘든 것이라면 그래도 난 버텼다.

안내문을 달지 말라고 말하던 그 표정과 같은 비릿한 표정이었다.

"따뜻한 차를 사는 손님들한테 컵 값을 따로 받아"

 문제는 점점 내 스스로 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루는 콜라가 1+1로, 행사 물품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본사에서 ‘가맹점’이었던 우리가게에 물건을 전달할 때 1+1 물품 명단과 상품들이 한 바구니에 들어온다. 본사에서 뭐라고 하던 사장은 자신이 왕인 양, 1+1 안내문을 진열대에 달지 못하도록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지시하였다. 1+1안내문을 달지 않는 것만으로도 2배의 상품으로 인해, 원 가격대로 팔아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차를 찾는 손님이 많아 편의점에서는 커피믹스와 종이컵을 준비해서 판매한다. 한참 따뜻한 차가 많이 나가던 1월의 어느 날, 사장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안내문을 달지 말라고 말하던 그 표정과 같은 비릿한 표정이었다. “따뜻한 차를 사는 손님들한테 컵 값을 따로 받아. 몰래, 50원을 더 찍어. 손님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나는 저 사람 말을 듣지 않으면 짤린다. 50원이 적은 돈이지만 돈은 돈이다. 나는 결국 50원을 찍어야만 할 것이다. 근데 내가 책에서 배운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순진했나? 그 이후 따뜻한 차를 집어 드는 손님에게 제발 사지 말라고 속으로 수십 번을 말렸다. 이렇게라도 마음속에서 사장의 행동에 반항하고 있었다. 굉장히 소심하게. 그렇게 소심한 반항이 속으로 곯아터진 것인지, 결국 관두고 말았다.

 일한 시급을 계산해 돈을 달라고 하니, 나를 포함해 3교대로 이루어지는 시간에 없어진 물건이 있다며 없어진 물건의 값을 아르바이트생들의 월급에서 제외시키고 주겠다는 통보를 했다. 어떤 물건이 없어진 것인지 명단을 보여 달라는 내말이 공기 중에서 분해되어 안 들리는 것인지 미동하나 없었다. 결국 주는 대로 받았다. 분했다. 분한 마음은 풀어질 줄 몰랐다. 그 편의점 근처만 가도 화가 나서 째려보기 일쑤였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고등학교 때처럼 단 돈 만원으로도 행복하게 한 주를 보낼 수 있었던 그 때와는 다르다. 나는 돈이 필요한 대학생이다. 당장 교통비, 식비, 교재비, 유흥비 등의 돈이 필요했다.

 다시 주말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다가 집 주변, 건물 지하에 위치한 빵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해서 밤 9시에 일을 마쳤다. 장작 13시간동안 일을 한 것이다. 그 넓은 매장에,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서 일을 하니 한 가지 일거리를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일거리가 생기기 일쑤였다. 점심으로 대출 빵 한입을 꾸겨 넣었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급하게 삼키느라 목에서 빵이 어디쯤 내려가고 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저녁 8시 정도 되니,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사장과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장 내에 따로 밥 먹는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먹고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향해 “빵 정리 해놔”라고 하고는 매니저와 제빵사를 데리고 급히 밥을 먹으러 나갔다. 나도, 정말 나도! 13시간을 일했다. 한시도 놀지 않았다. 빵 한입 먹고 일한 것이 전부인데. 설마 싶었다. 

나도, 정말 나도! 13시간을 일했다.

한시도 놀지 않았다.

빵 한입 먹고 일한 것이 전부인데, 설마 싶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는 것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의 손에 아메리카노까지 들려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 ‘저 사람들이 정말 사람을 잡으려고 하는 구나’ 싶더라.

 일을 끝마칠 쯤, 더 이상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장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조용히 다가왔다. “내일도 일 할 의사가 있으면 밥을 싸와! 내가 김치 2종류를 준비 해둘 테니까” 여기까지만 들어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더 대박이었다. “아마, 바빠서 못 먹을 수 있는 건 알지?” 정말 이 괴물들이 날 사람으로 보긴 하는 건지!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난 대학생이라는 죄로, 정말 빌었다. 다음 아르바이트 사장님은 제발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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