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더불어 살기 위한 몸짓입니다
‘시위’는 더불어 살기 위한 몸짓입니다
  • 김윤주 기자
  • 승인 2012.09.18 23:39
  • 호수 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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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 현장스케치

 오후 4시. 내천고가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던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막 대우자판 정리해고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결의대회를 마치고 도보가두행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목적지는 부천 남부역 잔디광장이다. 여기서 ‘부천희망광장’이라는 문화제가 예정돼 있다. 아직 해가 떠 있어서 그런지 후덥지근했다. 그들의 표정은 더위를 못 느끼는 듯 담담하고 주먹은 단단하다. 가끔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을 뿐이다.

 행진하는 모습을 사진 찍으며 함께 걸어가는 도중에 옆에 늘어선 상점들의 상인들이 문 밖에 나와 가두행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던 시위대 아저씨 한 분이 해고노동자의 고용승계권 보장에 대한 전단지를 상인들에게 나눠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거부감 없이 전단지를 받아 들고 유심히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좋게만 바라본 건 아닌 듯하다. 기자가 전단지 한 장을 받아든 상인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지금 여기서 시위하는 것 보니까 어떠세요?” 그 상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솔직히 가게 앞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시위하는 건 별로 달갑지 않죠”하고 대답한다. 잠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멈춰선 경찰들에게도 다가가 물어보았다. “시위하는 모습 옆에서 쭉 지켜보니 어떤가요?” 한 경찰이 마지못해 “시위하는 모습 보고 든 생각이요? 별 생각 안 들던데요”하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행진은 부천 남부역 광장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됐다. 그러다가 잠시 목도 축이고 주먹밥으로 간단히 끼니 해결을 하기 위해 시위대가 걸음을 멈춰 섰다. 삼삼오오 모여 보도의 한켠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들 중 ‘재능교육OUT 국민운동본부’라는 글씨가 새겨진 천조끼를 입은 아주머니 한 분께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노동자’로 불리기 위한 힘들고 외로운 투쟁 중이다. 얼핏 노동자라는 말은 힘든 육체노동만을 의미할 것 같아 노동자로 불리는 것이 왜 좋은 것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하지만 회사에 고용되어 정당하게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회사의 꼼수 때문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리되어 마치 개인사업자마냥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것처럼 왜곡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당연히 받아야 될 노동자로서의 권리들을 박탈당하게 된다. 아주머니는 “우리는 노동자가 맞다고 생각해서 노조를 결성했는데 회사에서는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래요. 참다못해 노동부에 건의해도 소용없었어요. 행정부에선 특수고용노동자로는 인정해주겠대요”하고 말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이들을 공식적인 노동자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거리에 나오게 된 것이다.

 길을 걷다가 커다란 흰색 날개와 흰색 옷을 입은 ‘천사’분장을 한 여자가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대와 반대방향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본 한 시위 참가자는 옆의 동료에게 “예수님 다시 오기 전에 박근혜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오늘 시위 참가자 중 여러 명이 ‘새누리당은 쌍용차관련 국정조사 및 청문회를 수용하라!’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새누리당이 현재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제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묵인과 방조를 고수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어느 덧 저녁이 되어 문화제가 열리는 광장에 도착했다. 잔디밭에 앉아 저녁을 간단히 먹을 곳을 찾던 중 ‘희망밥차’가 눈에 띄었다. 3000원 정도에 간단한 국과 반찬, 밥을 용기에 담아 판매하며 수익금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대부분 희망밥차에서 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희망밥차 왼쪽에는 ‘희망진료단’이라는 천막을 치고 3명의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무작정 찾아가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하고 대뜸 물어봤다. 이분들은 의사, 약사, 한의사 등으로 이뤄진 ‘건강한 부천을 위한 의료인 모임’이었다. 오늘처럼 광장 집회 참가자들에게 의료 진단과 처방을 무료로 해준다. 진단 후에 약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어 환자에겐 더 없이 좋은 서비스다. 오늘은 집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10~20명 정도가 왔다고 했다. 주로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건강체크나 건강상담을 하고 혈압, 혈당, 감기, 근육통 등의 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록 ‘해고는 살인이다’, ‘영안모자는 대우자판 해고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하라!’, ‘기업폭력을 책임질 자는 재벌과 이명박정부다’ 등과 같은 무겁고 암울한 표어들이 많았던 시위였지만 저녁의 문화제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노동 허가제’, ‘왕따 금지’, ‘이주민 조례’, ‘이주민 행복권’ 등을 외치는 퍼포먼스와 고등학생·대학생들의 문선, 콜트콜텍밴드와 4층 총각 등 가수들의 공연도 분위기를 돋우는 데 한 몫 했다. 나이가 꽤 지긋한 아저씨 두 분이 정답게 옥수수를 먹으며 공연을 보는 모습을 찍고 있는데 기자를 발견하곤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주신다. 그 순간 ‘연대감’ 비슷한 것을 조금 느꼈다. 그 분들이 어리고 뭣도 잘 모르는 대학생을 무리에서 받아준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그 분들은 이런 연대감을 사회에서 느껴보고 싶어 시위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마음 속 맻힌 응어리를 문화제를 통해 승화시키는 그들과 함께 있으니 오늘따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유난히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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