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내가 아직도‘사람’으로 보이니~?
일하는 내가 아직도‘사람’으로 보이니~?
  • 장재란 기자, 사진_김윤주 기자
  • 승인 2012.09.18 23:43
  • 호수 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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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한반도 전체가 볼라벤의 위력에 꼼짝 못하고 있었던 8월 28일,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후보가 전태일을 만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전태일 재단 앞에서도, 청계천 전태일 다리 앞에서도 박 후보는 전태일의 그림자도 밞지 못했다.
 9월 7일 부천매천교차로, 허름한 깃발을 단 봉고차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보였다. 뉴스에서 박 후보가 전태일 다리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다 박 후보의 측근에 의해 멱살이 잡힌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그 사람이었다. 태풍만큼 무서운 위력을 가진 후보가 무섭지도 않은 것인지! 이 사람을 포함한 ‘희망광장위원회’라는 이름을 걸고 부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 뭉쳤다. 처음 뭉친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희망광장은 어떤 것이냐’고.                       <편집자 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그러나 회색빛이 어울리는 날이다. 일렬로 서서 구호를 외칠 뿐, 묵묵히 전진하고 있는 그들은 세상과는 분리된 듯 보였다.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묻는 필자에게 “학생이냐”며 오히려 되물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명자, 다른 이름으로는 선생님이라 불린다. 대학을 나온 그녀는 우연치 않게 들어간 재능학습지로 인해 6년간 이 싸움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이다. 기업은 특수고용노동자를 간접고용 형태로, 비정규직임에도 사내하청 정규직으로 등록하여 비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은 특수고용노동자를 정규직 개인 사업체 자격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대 사업체의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아도 합법적이다.

 아이들에게 학습의욕을 고취시켜야한다며 스티커 판을 만들어주지만 정작, 스티커를 다 모은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선물은 ‘나 몰라’식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눈에 실망이 담기는 모습을 보기 힘든 선생님들은 개인 돈으로 선물을 산다. 이렇게 반복이 되고 월급 형식의 ‘수수료’를 지급 받고나면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각자의 삶이 있는지라, 삶의 무게는 더 해져만 갔다.

 ‘이것은 말도 안돼’라는 단순한 생각이 1999년 처음으로 합법화된 노조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 번은 노조에 속한 선생님들끼리 재능교육학습지 불매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매운동을 벌인지 얼마 되지 않아 전원이 해고당했다. ‘이것은 더 말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굴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오뚝이의 원리가 이런 것이리라.

 광장으로 나가, 더 많은 노조 사람들과 집회를 해 나가는 우리를 가만 둘 수 없었는지, 어느새 깡패들이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용역깡패였다. 그들이 우리 주위를 어슬렁대고부터 집회를 하기 어려워졌다. 집회를 하기로 한 날이면 경찰서에서 하는 집회신고를 깡패들이 어떻게 알고 먼저 신청해버리곤 했다. 집회가 어려워지자, 집회 한 번 하려고 경찰서 근처에서 4박 5일간 노숙을 했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 노숙을 견디고 있는데 용역 깡패들이 큰 소리로 희희낙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저 여자의 가슴은...”, “저 여자의 성기는...” 여자로서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치욕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대결하는 것만 같았다. 같이 노숙하던 몇 조합원들은 정신적으로 병이 들 지경이었단다.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담담해 오히려 듣는 사람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그녀는 대학 다닐 때 운동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단다. 공부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단다. 막상 사회에 발을 디딘 후,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이 ‘어떠 한가’였단다. 내가 어떤 사람이기 이전에 세상은 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였고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은 부속품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자본주의에서 비정규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말이 팽배하고 이것이 정당한 말이 되고야 마는 세상이다.

 그간 거대 자본과 싸우는 것이 힘이 드는데, 너무 많은 힘이 들었나보다. 예민해진 노조원끼리도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중간에 가족 문제, 생계 문제 등 때문에 이 싸움을 포기해도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싸운다. 억울해서, 악에 받쳐서 이기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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