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양합니다
대학, 사양합니다
  • 이가현 기자
  • 승인 2013.04.18 17:35
  • 호수 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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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자들의 이야기

▲ 사진모델_하지은(법학·2)사진_이가현 기자 bethemi20@catholic.ac.kr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대학입시거부선언>중 발췌, 투명가방끈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네 명의 해맑은 영국 청년들은 이렇게 노래해 주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

-<이별선언문>중 발췌, 장혜영

▶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은 무엇 때문에 대학에 왔나요?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해진 지금, 대학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혹시 당신도 그러하나요? 어떠한 이유로 대학에 왔는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기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 3월 고려대 학생이었던 김예슬씨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남기고 자퇴했다. 2011년 10월 서울대 학생이었던 유윤종씨는 입시교육과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남기고 자퇴했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기자회견 가졌다. 같은 달 연세대 학생이었던 장혜영씨는 대학과의 ‘이별선언문’을 남기고 자퇴했다. 이외에도 자발적으로 대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4월 8일과 9일,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했던 어쓰씨(22세)와 연세대학교를 자퇴한 장혜영씨(26세)를 만났다.

 

‘왜 대학을 안다니려고?’라는 이상한 질문  

2012년 대학 진학률은 71.3% 이었다. 이 숫자가 말해주듯 대학에 진학하는 건 당연시 여겨진다. 사람들은 보통 ‘대학에 왜 가?’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만약 대학을 가지 않거나 그만두려고 하면 사람들은 항상 질문한다. “왜 대학을 안다니려고?” 대학교에 ‘왜 다니는지’는 묻지 않으면서 ‘왜 안 다니려고 하는지’만 물어본다.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이 물음은 청년들의 사회 일각을 보여줄 수 있는 질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대학을 왜 거부했는지’

어쓰(이하 어): “입시경쟁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가 입시경쟁에 뛰어든다는 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대학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 왜 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는 대학에 가서 배우고 싶은 학문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신 그 당시 하고 있었던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했다. 

장혜영(이하 장): “채플수업 등 졸업을 하려면 해야 하는 과정들이 많잖아요, 졸업을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을 생각해보니 훨씬 낫겠더라고요. 또 지금 여기에 흘러가는 것과 맞춰가는 건 내가 믿는 가치와도 맞지 않았죠. 그 이외에도 생각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었는데 맞춰가려고 하면 생각할 시간이 없는 거죠.”

본인의 판단에서 나온 이러한 이유로 대학을 거부했지만, 혹시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주변사람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는데, 그 길에서 벗어난다는 두려움은 없었을까? 사람들은 ‘지금이야 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나중에 너 정말 후회한다’는 말을 한다. 미래에 대한, 내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어쓰씨는 이미 10대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자신이 번 돈으로 먹고 살았다. 그럼에도 19살에서 딱 20살이 됐는데, 나이만 변했을 뿐인데 너무 불안했다. 지금 당장이 아닌 나중을 내다봤을 때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불안, 그 상황에 대한 ‘우황청심환’이야기를 들었다. 

어: “같이 투명가방끈 활동을 했던 친구가 ‘대학에 가는 것은 4000만 원짜리 우황청심환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황청심환은 불안을 눌러주는 것이지 불안을 없애주는 게 아니다. 대학 역시 우황청심환처럼 4년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불안을 유예시켜줄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이란 신분으로 유예된 그 불안은 대학을 졸업하면 다시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20살에 느꼈던 불안은 뭔가 잘 못 됐다거나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모두가 느낄 불안, 모두가 느끼고 있는 불안, 모두가 느껴야 될 불안을 대학에 간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일찍 맞닥뜨렸던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 “잠시나마 눈을 가리고 불안을 조금이라도 나중에 마주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는 불안을 일찍 마주치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고, 뭐 먹고 살아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먹고 살수는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조금 더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나 할까?”

장혜영씨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그만둔다는 것이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았다. ‘카르페디엠(이 시간을 잡아라)’란 말처럼 그녀에겐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정석의 길을 정해두고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협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그나마 낫다. 안정된 직업이 있어야 그나마 낫다. 결혼을 해야지 그나마 낫다.’ 이건 계속 ‘그나마 나은 삶’을 사는 거지 한 번도 ‘행복’해질 기회가 없는 것이다. 

장: “한 번도 정말로 자기인생을 선택해 본적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선택한다는 감각이 뭔지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그게 안타까운 거죠.”

그렇기에 그녀에게 그 선택에 대한 후회도 불안도 없었다. 그녀는 과자를 예로 들었다. 이 과자가 환상의 맛일지 지옥의 맛일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내가 모르는 세계를 향해 한발자국 나아가고 넓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그녀는 현재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정보인권을 주장하는 NGO단체인 ‘오픈넷’ 활동부터 자유기고가, 간단한 통역 등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개인에게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사회  

장: “독립을 하고 싶어 한 달을 일해도 이 세태에선 우리는 집을 구할 순 없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없어요. 이건 잘못된 거죠. 정말 아르바이트를 해서도 먹고살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정도여야 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근로빈곤층(워킹푸어)이라 부른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근로빈곤층 비율은 약 270만 명에 해당하는 11.6%이었다.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본소득제를 주장했다. 기본소득제는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빈곤선 이상으로 살기에 충분한 월간 생계비를 지급한다’는 제도이다.  

장: “기본소득제가 인권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거예요.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인터넷 이용비용 등 기본적인 돈이 필요하잖아요.”

이러한 문제는 개인만이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과 그 결과는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공에 있어 사회의 역할은 크다. 예를 들어, 삼성은 회장 혼자 우뚝 세운 것이 아니다. 삼성에서 일하는 혹은 삼성과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그 이전에 발견된 과학법칙과 제도, 기술의 발명, 사람들 사이의 문화, 인프라 등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즉, 사회 없이 온전히 개인만의 노력을 통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장: “일한만큼 가져가야한다면 사회가 가장 많이 일했으니까 사회에게 가장 많은 몫을 줘야죠.”

개인의 성공이 사회의 영향을 받듯이 개인의 선택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의 선택은 사실 ‘온전한 개인만의 선택’은 아니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있어서 사회에서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으며 그 압력은 무시하지 못한다. 대학 진학의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 “‘대학을 가냐, 마냐’라는 선택을 할 때, ‘네가 선택한 거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네가 알아서 잘 살아야지’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책임이 온전히 개인한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책임져야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사회 구성원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대학을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에 대해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걱정하거나, 응원을 하기도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선택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언론과 대학생들도 있었다. 

장혜영씨는 ‘너는 지잡대가 아니라 명문대 자퇴생이니까 그렇게 이목이 집중되는 거야’는 댓글들을 봤다. 이 댓글을 보고 그녀는 슬프기는 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장: “‘아, 내가 이런 사람들하고 살고 있구나, 우리나라 사회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이 여기에 있구나, 이게 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문대를 자퇴한 애플의 잡스처럼 너도 성공할 것이다’는 내용의 댓글도 있었다. 

장: “그런데 난 잡스가 되려고 관둔 게 아니에요. ‘특이한 사람이니까 저런 걸 하지’ 이렇게 예외형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입학을 거부하는 사람, 자퇴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생기고 있다. 이들을 예외형 인간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현재 사회엔 문제가 없고 그저 이들이 특이한 것일 뿐이라는 시선이 담겨있다. 

어쓰씨는 17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때 많이 들었던 말이 ‘고등학교 자퇴하면 뭐 할 건데?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데?’였다. 대학을 거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안가면 뭐 할 건데?’

어: “사람들은 정해진 길에서 딱 벗어난다고 했을 때, 다른 명백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 선택이 합리화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는 고등학교 자퇴했을 때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도 다른 무언가를 너무 하고 싶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너무 하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자꾸 ‘그럼 뭐할 건데?’를 물었다. 그에게 저런 질문은 너무나 이상했다. 그만두고 나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천천히 찾을 수 있지 않나.

그가 투명가방끈 활동당시 ‘지금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문제제기 했을 때 대학생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을 공격할 의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 “사실 저희는 ‘이런 사람도 있다. 우리도 이해해 달라’라는 마음이 컸었던 건데. 그런데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는 심정이 어떤 건지는 알 것 같아요. 나는 이것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그게 부정당하는 느낌이 아닐까요?”

이들은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대학을 다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어: “‘대학생이라고 안 힘든 건 아니잖아요. 대학생이라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너도 불안하고 나도 불안하고 지금 우리 모두가 불안한데, 그럼 뭔가 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얘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사회는 ‘자기의 불안을 누구도 툭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사회’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한데도 모두가 불안하지 않은 척해야하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는 바란다. 대학생들과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같이 무엇이 바뀌어야하는 지 찾아보고, 함께 바꿔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장: “예전에는 ‘생각을 잘 해봐라. 정말로 네가 있고 싶어서 그 자리에 있는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 있어왔기에 있는 건지’라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왔어요. 지금은 이야기하라고 하면 그때완 조금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그걸 바라다보면 다른 게 보여요. 주변에 뭐가 있는 지도 보일거에요.”

인터뷰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다. ‘학교를 다닐 동안은 다른 길이 없이 그 길을 쭉 가야하는 거잖아요. 하나의 길에서 빨리 가거나 천천히 가거나, 남들보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이 ‘하나의 길’에 대한 당위판단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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