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현대사회의 언론은 현대가 두려운가
■기자의 시각-현대사회의 언론은 현대가 두려운가
  • 배도현 기자
  • 승인 2013.09.06 22:03
  • 호수 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20일(토)~21일(일)까지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비정규직 철폐 및 정규직 전환, 대법원 판결이행’을 주장하며‘현대차 희망버스’가 기획됐다. 이러한 목적으로 개최된 집회에 대해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본 ‘사실’과는 사뭇 달랐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시위대와 용역간의 단순한 충돌에만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희망버스가 아닌‘폭력버스, 혼란버스’라는 왜곡보도를 시도했다.


  가장 극명하게 현상을 보여줄 수 있는 고리는‘사진’이다. 사진 한 장으로 현장을 그대로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생함이 의도된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 예로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아파트 단지 내에 주민들이 사용했던 각목을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휘두른 각목이라며 왜곡하여 사진보도 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사진이 진실을 그대로 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현재 담고 있는 모습이 결코 현장 전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등을 비롯한 보수언론에서 다뤄진 사진들은 하나같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폭력 행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일정한 구도가 보인다. 참가자들에게만 모든 카메라를 집중한 상태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만장대 깃발로 용역을 향해 위협하고, 용역은 완전 무장한 채 방어하는 프레임만 담아냈다. 현대차 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참가자들을 향해 소화액을 뿌리고 낫을 휘두르는 장면은 생략했다. 만장대 깃발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사진들은 마치 폭동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사진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희망버스에 대한 이미지는 사건의 본질이기보다는 왜곡이 아닐까.


  채널A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휘두른 쇠파이프 등에 맞아 관리자 50~100여명이 폭행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는 눈 주위가 시퍼렇게 부었고, 죽창에 찔려 뺨에‘구멍’이 났다는 등의 부상을 당했다고 전했다.

 
  물론 폭력시위는 옳지 않다. 하지만 싸움의 조건이 서로 극명하게 다른 상태에서 과연 보수언론이 주장한 부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중 세시대에 두 사람이 결투를 준비 중이다. A는 철제 갑옷을 착용하고 물도 벨 듯한 칼을 차고 있다. 게다가 키를 훌쩍 넘는 철장 펜스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A와 대치 중인 B는 집에서 쓰는 녹이 다 쓴 곡괭이 하나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을 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다른 조건의 싸움에서 언론이 보도한 부상자 대부분은 A였다. 설령 A가 다쳤다 하더라도, 보수언론에서 A가 실제보다‘더 심하게, 더 많은 수’로 폭행당했다고 보도한 것이 문제다.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들의 세태를 꼬집는‘한겨레 하니 리포터’의 김승열 기자가 쓴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언론이 피해야 할 것은 당파성이 아니라 왜곡이다’. 보수언론은 지향하고 있는 당파성을 떠나서라도‘정확한 사실보도’의 원칙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 보도한 부상자인 50~100명이라는 숫자 역시 의구심이 든다. 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응급차는 그 한 명을 위해 출동한다. 하물며 100명은 오죽하겠는가. 그 단적인 예로 올해 초, 1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는 보스턴 시의 모든 응급차가 출동했다. 사건 발생 후 보스턴 시 내 응급차의 출동 횟수를 보면 ‘100여 명’이‘중상’의‘부상’을 당했다는 것은‘시’를 움직일 만한 큰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과 희망버스의‘부상자 수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의 논지대로라면 희망버스 사건에서도 응급차의 출동횟수 역시 보스턴 시와 유사해야 한다. 언론이 보도한대로 50~100여 명의 용역들이 부상을 당했다면 울산시 북구 소방서의 모든 응급차가 출동했어야 한다. 하지만 울산시 소방서는 4대만의 응급차가 출동했다고 전했다. 이날 응급차에 실려간 총 14명의 부상자 중 7명은 농성자였으며 나머지 7명은 경찰이었다.

  그렇다면 보수언론에서 보도한 100여명의 부상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언론 스스로 만들어낸 볼록거울 속 왜곡된 자화상 아니었을까. 과장되고 왜곡된 언론의 볼록한 모습을, 한 시민이 사실적인 거울을 통해 보여줬다. 7월 21일 희망버스 마지막 날 오전 7시, 묵묵히 소화액에 젖은 물통을 치우는 시민이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언론의 악의적 보도는 원래 계속됐다”며“끝까지 있지도 않은 채 보도하기때문에 신경 쓰지도, 더 이상 믿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한 시민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직접 진실을 보고 듣고 느끼려 했던 것은 아닐까.

  2004년 노동부가 실사하여 불법파견 문제가 확인되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모두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고, 2010년 대법원 역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자동차 공정 특성상 파견노동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다. 본질은 현대차가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대법원의 3년 전 판결이 아직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 현대차로부터 정규직 전환이 가능했으나, 7000여 명의 노동자 모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천의봉 노동자와 함께 296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언론의 당파성을 문제로 트집 잡는 것이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가릴 것 없이 왜곡보도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이는 당파성을 떠나 언론의 책임감 문제다. 끝까지 취재 하지 않은 상태라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취재상황으로 뉴스라며 보도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기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 ‘기자들은 소설가와 다름없는 직업이다. 그들이 쓴 기사는 상상력으로 쓴 소설이 아닌가’와 같은 비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기자는 일부 언론들의 왜곡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을 전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언론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존경에 대한 책임은 사실을 전해야만 하는 언론의 존재이유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 존경이‘책임’을 저버린다면, 그때 우리는‘언론’이어야 하는 이유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