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니잖아요
아닌 건 아니잖아요
  • 가톨릭대학보
  • 승인 2013.11.25 01:07
  • 호수 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솟대

 물대포가 다시 나왔다. 지난 10일 서울 시내 한복판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거리. ‘2013 전국노동자대회’의 서울시청 앞 광장의 집회 후 행진하던 노동자 및 시민들이 멈췄다. 행진의 최종 목적지인 청계천 전태일 다리(버들다리)를 불과 800미터 남짓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이들의 앞에는 곤봉을 포함한 진압 장구의 경찰이 벽을 이뤘다. 그리고 벽 뒤엔 물대포의 모습이 보였다.

 물대포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때다. 물대포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촛불을 강경히 진압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초기 수많은 촛불시민들이 광장으로,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당시 정부는 일명 ‘명박산성’으로 불린 벽으로 방어적인 반응을 보였다. 촛불이 장기화 될 무렵. 다수의 시민들이 피로감과 무력감에 빠져 더 이상 광장을 찾지 않을 때. 비로소 정부는 촛불에 대한 강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즈음에 가늘어진 촛불을 끄기 위해 등장한 위압적인 물대포의 등장은 매우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다시 2013년 11월 10일. 주말에 찾아온 기습적인 한파를 뚫고 행진하던 시위대를 향해, 막강한 수압의 물대포가 시위대에 발포되었다. 단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물대포는 다시금 그 존재를 각인케 만들었다.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반대의 목소리는 짓밟을 뿐이라는 것을.

 야당 정치인 시절부터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고 지켜온 현재의 대통령이다. 지지여부를 떠나 기성 정치인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지난 정부 보수 여당 안의 야당 노릇을 하며 진보적 의제인 복지 정책에 적극적인 점도 눈에 띄었다. 반대편의 입장에서도 역대 대통령 국정 지지율 최저 수준을 경신해가던 지난 정부보다는 그나마 낫겠지. 설마 그만큼이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기대는 정말 막연했다. 새로 밝혀진 수사결과와 양심고백들은 현 정부의 최소한 민주적 정당성마저도 흔들고 있다. 약한 정당성에 기초한 정부로서는 반대파에게 대화나 소통을 통한 신뢰 쌓기보다 강경한 법 원칙에 의한 진압을 택함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대편의 약점을 잡아 물고 넘어지는 식으로 불리한 형국을 만회하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다.

 반대파의 핵심 세력들이 진압되는 와중 아직 공격당하지 않은 주요 집단이 있다. 바로 조용하고 세속과 거리를 두었다는 평을 들어오던 한국 천주교다. 과거 각종 시국 사건에 대해서 비공식단체인 정의구현사제단만이 목소리를 냈으나 올해의 경우 교황청 공식 승인 조직인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를 주축으로 전국 15개 교구 전체가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특정 종교가 하나된 목소리로 사회 불의에 문제제기한 것도 역시도 이례적이다.

 세속의 일에 대해 사제들의 입을 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불의다.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가 훼손되어지는 모습이 이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서 사제들은 분명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닌 건 아니잖아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