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목소리’ 오토튠의 들썩임. 사양할래!
‘가짜 목소리’ 오토튠의 들썩임. 사양할래!
  • 오원석 기자
  • 승인 2009.11.12 10:04
  • 호수 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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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노래 요즘가수

 

뉴욕 힙합의 제왕 ‘제이지 (Jay-Z)’가 뿔났다. 9월 15일 국내 발매를 앞두고 있는 그의 11번째 정규앨범 ‘The Blueprint 3’의 두 번째 싱글 ‘Run this town’을 통해 ‘오토튠’사운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제이지의 반 오토튠 선언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Run this town’에 앞서 발표했던 싱글 ‘D.O.A(Death of Auto-Tune)’로 ‘오토튠’으로 만들어진 가짜 목소리가 난무하는 지금의 음악계에 일침을 가했던 제이지는 ‘오토튠의 죽음’이라는 제목 그대로 9월 발매할 자신의 새 앨범에서 ‘오토튠’을 완전히 제거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최근 필라델피아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오토튠’의 과도한 사용을‘가짜행위’라고 단정하며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재능이 필요하다. 그저 가짜행위(오토 튠)를 할 뿐이라면 음악에 결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이 날 구했으니 나도 음악을 보호하겠다’며 오토튠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력히 피력해 음악계에‘오토튠’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오토튠’으로 인해 뉴욕이 떠들썩한 것과는 다르게 국내 음악인들과 음악 팬들의 반응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앨범을 기계소리 일색으로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음악인도 별로 없을뿐더러,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이‘오토튠’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기계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는 음악팬도 없는 듯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나 ‘G-Dragon’의‘Heart breaker’등의 노래가 ‘오토튠’으로 ‘수정’‘, 보완’된 노래의 대표적인 예이다. 비단 최근의 음악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크게 히트한 ‘슈퍼쥬니어’의‘Sorry, sorry’는 4분여에 걸친 곡 전체를 ‘오토튠’으로 수정하였다. 게다가 이 노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보컬의 목소리 또한 실제의 음성과는 크게 다른 목소리로 변화시켰다. ‘2PM’의 히트곡인 ‘니가밉다’ 역시 ‘오토튠’의 기술을 사용하여 보컬의 불완전한 음정을 재건한 음악이며, 올 초 미국서 정규 1집을 발표한 ‘보아’의 음반 역시 전체적으로 ‘오토튠’ 기술을 이용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아, 차라리 ‘오토튠’을 사용하지 않은 음반을 꼽는 것이 더욱 빠르겠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가수들의 음반에 ‘오토튠’의 기술이 마치 조미료처럼 첨가되며 이제는 필수요소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오토튠’이 점령한 음악계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오토튠’을 통해 보정된 음악은 ‘절대 악’이다. 이 첨단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보컬 본연의 실력을 감출뿐더러 왜곡과 변조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목소리로부터 완전히 멀어진다. 한 대중음악 웹기사에 실린 ‘, 오토튠’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잠시 빌리자면 ‘, 오토튠’ 유행이란 마치“똑같은 모양의, 감흥 따윈 전혀 없이 그저 팔랑거리는 음악이 자가 번식으로 세를 넓히”는 것이고,“ 거부하고 싶은 독감이자, 쾌락의 뒤를 좇을 뿐 인 설레발”이다. 핵심은 ‘오토튠’이 사악한 사기라는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같이.

‘오토튠’이 난무하는 지금 국내외의 음악계는, 들리는 음악에서 보이는 음악으로 변화한 결과요. 음악을 왜곡하는 자본주의의 사기성 짙은 테크놀로지다. 그‘첨단기술의 사기’는 미학적 음악의 완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하에 숨어, 음악 감상자들의 귓등을 때린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오토튠’이라는 기술을 첨단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90년대 후반 상용화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할 수 있다. 98년 ‘셰어(Cher)’라는 가수는 그녀의 노래 ‘Believe’에서 당시, 보컬의 목소리만으로는 낼수 없었던 독특한 효과를 사용하기 위해‘오토튠’의 기술을 사용했다. 물론 ‘셰어’는 가창력에 문제가 있었던 가수는 아니었다. 그저 첨단의 유행을 선도하고 싶었던 욕심에 그녀의 목소리에 기계음

이라는 색깔을 칠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사용되기 시작한 긍정의 기술이 이제는 모든 음악의 진정성을 해 하는 부정의 테크놀로지로 변질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걸 그때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이제 녹음의 완성도를 위해 같은 노래를 수십, 수백 번 불렀다는 가수들의 이야기는 케케묵은 가수들의 기억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수 김범수는 신인시절, 4분여의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녹음실에서 7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4분의 노래를 위해, 단지 4분의 시간이 필요한 지금과 비교하자면 참으로 비효율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작곡가나 엔지니어보다 보컬리스트의 음색을 우선시 했던 시대가 작별을 고하려 하고 있다. 이제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에 두고 목소리를 가미하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들의 고막을 울리는 음악이 다 같은 음악이 아니다. 신나고 좋으면 그만이라고? 음악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컴퓨터가 들려주는 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는 짓, 사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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