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판단
옳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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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9 12:05
  • 호수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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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학생회 구성원들을 만나면 예리하게, 날카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상처가 나면 ‘왜’ 다쳤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금방 나을 상처인지, 수술해야 할 상처인지까지 짚어야 한다. 그렇게 긴장하며 끊임없이 학생사회와 소통하고 취재하다보면 한 개인을 통해 학생회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대자보 및 홍보물 승인부착제도(이하 도장제도)는 2014학년도 가톨릭대를 이끌 학생회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창구였지만 적잖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던 취재 경험이었다. 

분명 지난 해 2학기 본교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도장 제도였다. ‘안녕’하냐는 물음 보다 ‘도장’에게 안녕하지 못하면, 안녕하냐는 물음이 진정으로 ‘안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와 소통하고자 하는 물음에 도장을 직접 가서 찍어주지는 못할망정 철거시킨 부끄러운 자화상 말이다. 언론사에도 보도되고 총학생회 페이스북에서 논쟁이 시작된 탓에 대부분의 학생이 알았던 이슈였다. 그랬다면 적어도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소속 학생대표들은 치열하게 고민했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무분별하게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요 파악해야하니까, 의견이 분분했고, 작년에 폐지된 제도라서 ‘작년과 별 차이점이 없다고 밝힌 더욱 복잡해진 제도’를 들여왔나. 분명 실효성, 정당성, 지속성 하나 없어 스스로 폐지했던 제도임에 불구하고 올해 제도는 작년과 비슷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무지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언제부터 학생회가 학생들을 관리·감독하는 체제로 변모했는지 의문이다. 무분별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수많은 학생회가 대자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 자율권을 존중했던 소수의 학생회에 비하면 자기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VOS팀에 꼬박꼬박 회의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회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먼저 아니었을까. 실제로 3월 16일(일) 신도림(니콜스관 4층), 국제관 1층, 국제관 4층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기까지 중운위 규정대로 작성자, 연락처, 자체수거일이 기재된 자보 및 포스터는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알고 있는 학생들조차 거의 없는 것이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학생들이다. 간식제도가 1번 공약인 것이 학교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편의주의를 경계함과 동시에 옳은 판단을 하길 진심으로 당부한다. 수요를 파악해 관리하기 편해지고, 학교가 깨끗해지면 보기에는 좋을 것이다. 다만 ‘학교가 깨끗해져서 보기 좋은 것’은 누구를 염두에 한 판단인지 같이 살펴보자. 학생을 생각하고 한 판단인지, VOS팀을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 학교 총장을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를. 참고로 전자일수록 ‘옳은’ 판단이고 후자로 갈수록 ‘그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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