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보루"
"공권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보루"
  • 배도현 기자
  • 승인 2014.03.20 14:42
  • 호수 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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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밀양시의회 문정선 민주당 의원 인터뷰

▲ 공권력에 의해 끊어진 것은 단 힘줄 2줄이었을까. 1월 24일(금) 오후 2시, '새부산병원'에서 목, 팔, 어깨 등 재활치료 중인 문정선 의원을 만났다.

지난 1월 24일 밀양을 찾았다. 추운 겨울, 가장 추운 곳을 찾아 떠났다. 자신들의 삶을 바쳐 9년 째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년에 불과하다. 오히려 2013년 9월 30일, 한국전력이 다시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00여 명이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병원에 실려 가고, 경찰에 끌려가고, 연행되는 등 공권력의 횡포에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보다 먼저 현장에 대해 공감하고 싶었다. 직접적인 경험, 이야기를 통해 연대하고 싶었다. 이에 9월 30일부터 4개월가량 밀양 현장을 지킨 밀양시의회 문정선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올해 초인 1월 24일, 밀양 희망버스 출발 전 날, ‘새부산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인 문정선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부터 밀양 현장에 관심을 가졌나
처음부터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6개월 정도는 일 배우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6개월 후 주민들이 찾아와 밀양 관련 자료를 보여줬지만, 형식적으로 주민들이니까 만났다. 그래도 꾸준히 주민들이랑 가까워지는 와중에 2012년 1월 이치호 할아버지께서 분신하셨다. 장례식장 가서 참 아픈 소리 많이 들었다.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그제서야 주민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2년 7월부터 주민들이 산 위에서 쓰러지고 구급차에 실려 가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제일 더운 곳이 밀양이다 보니 폭염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 쯤 현장에 갔다. 가관이었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고 주민들하고 다투고…. 그때부터 현장에서 지냈다. 전기톱도 뺏고, 포크레인 위에 올라타고, 현장에서 노숙하고 헬기에 매달리고 산위로 올라가는 등 그렇게 지내면서 한 달 사이에 다쳤다. 2012년 8월 어깨 힘줄이 끊어졌다.

폭행을 당한 것인가
헬기장에 계속 뛰어 들어가니까 철문 입구를 닫아버리더라. 그래서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문 밑으로 들어가니 20명이 넘는 의경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팔, 다리 가릴 것 없이 붙들고 배 위에도 올라탔다. 30분 동안 건장한 의경들이 목 위에서 올라타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헬기장으로 기어가려하고 의경들은 붙잡다 보니 순간적으로 힘줄이 끊어졌다. 사실 힘줄 2줄이 끊어진 것도 모르고 있다가 혼자 세수도 못하고 일어나기 힘들다 보니 병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때 힘줄  두 줄이 끊어진 것을 알게 됐고 2013년 1월 15일 수술했다.

밀양시 의회에서 혼자 야당이다. 밀양 현장에서 끝없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공간만 다를 뿐, 환경은 같은데 어떻게 대응하나.
처음 현장에 갈 때는 티셔츠 입고 아무렇게나 다녔는데 다치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이왕 폭행당하니까 정장에 배지 달고 폭행당하는 것이 낫겠다고 느꼈다. 여름에 아예 흰 셔츠를 입고 정장을 입고 간다. 마음가짐도 다르고 대응하는 방식도 달랐다. 사실 감정이 먼저 앞서는데 옷을 바꿔 입으면서 공인이라는 인식과 함께 경찰의 잘못을 확인하고, 주민 편에 서서 냉철하게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몸으로 부딪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미 별나다는 소문은 났지만, 배지를 달았는데 마구잡이로 폭행할 수도 없고 주민들이 폭행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정당인으로서 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주민을 지키고 싶다.

정부와 싸우다보면 왜곡된 부분이 오히려 더 알려지지 않나
폭행당한 것과 어깨 힘줄이 끊어진 것이 사실인데도 자작극이라고 말한다. 故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도 가족사로 치부했다. 마지막 유언에 ‘송전탑 때문에 죽는다’고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故이치우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불앞에서 몸을 쬐다가 불이 옮겨 붙어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다행히 민주당에서 녹취록을 틀고 아니라고 문제제기 하고 사과받기는 했지만. 진짜를 거짓으로 둔갑하는 세상이 된 것에 마음이 아프다.

어제 2001년도 대우자동차 금속노조 농성 영상을 봤다. 경찰들이 진압봉으로 당시 농성자들을 두들겨 패고 방패로 짓누르면서 팼다. 그때 그렇게 저항하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서 밀양에서는 그나마 진압봉은 없어질 수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만큼 발전했다. 만약 당시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진압봉은 존재했고 방패로 두들겨 맞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여경들이 할머니들을 발로 차고 꼬집는다. 웃통 벗고 있는 할머니들을 발로 찬다. 아직도 폭력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밀양에서 이렇게 저항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는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 미친 듯이 달려가야 겨우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진보다. 그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엄연히 말해 국책사업이다. 희생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나.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공공연히 살아오는 모습이었다. 다수를 위해 결정하여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성장했던 방식이라면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해서 99명이 희생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하버드대학교에는 동양인 장애인 학생이 들어오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계단 구조를 바꾸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바꿨다. 우리나라 같으면 입학 거부부터 시도했을 것이다.

밀양이 한국의 기준을 바꾸는데 있어 시발점이어야 한다. 국가는 그동안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래서 국민이 탄광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에 가지 않았나. 나라 발전에 기초가 되니까 갔다. 그렇게 치열하게 희생해 이제는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심지어 국민들은 모든 것을 다 내놓을 준비로 살았다. IMF 당시 금 팔아서 대기업이 진 빚을 국민이 갚았다. 국채보상운동도 가난한 국민들이 주도해 갚았다. 모든 것을 내 놓아 지킨 나라다. 그래서 현재 세계 10위권 국가로 발전한 것 아닌가. 그런데 또 다시 국가를 위해, 대기업을 위해 희생해야 하나. 근로노동 악조건 속에서 최저임금 받으며 이렇게 성장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만든 국가가 아닌 것이다. 국민을 기반으로 발전했는데 또 다시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을 요약하면 ‘공권력의 사병화’가 핵심 의제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직접 느낀 사람으로 어떤 생각인가.
내가 내는 세금으로 돈 받는 일꾼이 나를 폭행하는 구조다. 내가 폭행당한 것을 말 못하는 것 역시 이 세상 살아가는 구조더라. 그럼에도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권력, 큰 힘에 맞서는 것은 작은 힘인 것 같다. 큰 파도가 몰려올 때 물길을 돌리는 것은 시멘트 방파제가 아니다. 작은 모래알이다. 작은 모래알 한 알은 미약하지만 작은 모래알들이 함께 모여 파도의 물길을 돌려 막는다. 국민들이 모여 파도도 막고 아픔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공권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저항하고 공부해 알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분신했다. 그를 통해 노동현장이 재조명됐다. 노동현장 최저임금이 바뀌고 주5일제가 생겼고, 월차 수당이 생기며, 출산휴가를 받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이 작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상을 물들이는 작은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많이 모이면 바꿔지고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장 큰 고통은 뭐라고 생각하나                                                                        자아가 없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잃어버리고 산다. 때로는 맛있는 것도 먹어야하고, 자식들이 오면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아프면 병원도 가야하는데 송전탑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나’가 없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 분들은 땅 하나 지키려고 인생을 바쳐 살아왔다. 물로 배를 채우고, 고무신이 떨어져 물이 새는 것도 신고 다니고, 손발이 부르트게 일하며 살아온 것이 밀양이고 삶이었다. 스스로 살아오면서 지켜온 땅이었다고 위안을 받으며 살아온 인생이다. 그렇게 자식들 공부시켜 결혼시켜온 것이 그들의 전부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까지 자식에게 주고 싶고,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시대의 부모다. 그런데 지금 이 분들은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고 있다.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을 뺏기니까 더 억울하다. 그 분들이 못 쓰고 못 입고 못 먹는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은 먹는 걸 아기처럼 좋아하지만 그것마저 아끼면서 자식들에게 주려고 한다. 지금도 고추, 감, 밤 등 멀쩡한 것은 안 먹는다. 깨지고 터진 것 드시면서 성한 것을 돈 주고 판다. 그걸 팔아서 명절 때 자식들 주려고, 집사면 전세금이라도 조금 보태려고. 근데 송전탑으로 땅값이 떨어지니까 그분들이 뭐가 남겠나.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목숨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근데 또 자식들은 그걸 이해 못한다. 받지 않아도 된다면서 송전탑 현장에 가지 말라고 하며 오지도 않는다. 땅을 지켜서 자식들에게 줘야하는 할머니들은 그래서 더 억울할지 모른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생각해서 그걸 지켰는데 아무도 몰라주니까.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모르고 자식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니까. 이렇게 당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레 찾을 수밖에 없다.

공권력 남용이라고 느꼈던 큰 사건이 있었나.
분향소를 차렸는데 주위에 있는 천막을 의경들이 짓밟고 뜯었다. 천막과 함께 할머니들도 같이 짓밟았다. 법적으로 천막을 뜯는 것은 행정적 업무로, 공무원들이 하는 것이다. 불법 건축물을 철거할 때의 경우인데, 그럴 경우에도 경찰이 관여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기가 막힌다. 한 주민이 거세게 저항한다고 천막 파이프 사이에 목을 끼웠다. 상식적으로 사람 목을 빼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목을 쪼아서 잡아당겨간다.

겨울에 비가 와서 바닥에 파레트 10개를 깔려고 했다. 명분은 천막에 상시 거주하는 것을 막아 장기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에 공권력이 먼저인가. 결국 <한겨레>에 얼굴이 나오고, 국회의원들이 밀양으로 내려오고 해서 이틀 만에 파레트 10개를 깔았다.

공권력이 어떠한 경우에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안 된다. 주민이 한전 직원, 경찰을 때리는 것도 안 되고 경찰이나 한전이 우리를 폭력 하는 것도 안 된다. 사람이기 때문에 말로 해야 한다. 얼마든지 말로 가능한 일이라면 더디더라도 말로 풀어가야 한다. 그 상황에서 말로 하지 않고 양 쪽 모두 잘못 할 때, 공권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 말이다. 양 쪽 모두 다치지 않도록 중간에서 방패가 되어주는 것이 공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권력 자체가 무기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힘없는 사람에게는 무기가 되어있고 힘 있는 자에게는 칼자루를 주고 있다는 것. 서로 상처입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는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보루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 당장은 전기를 공급하는 원전과 송전탑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최선 때문에 경제가 발목 잡힐 수 있다. 방사선폐기물처분장에서 처리하는 쓰레기와 폐기물이 자연 상태로 소멸하기까지는 50만년이 걸린다. 후대에는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국민 혈세를 이용해야한다. 대체 에너지에 눈을 돌려 새로운 대안을 생각할 시류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원전을 폐기하고 있고 대체에너지 투자에 힘쓰고 있는 판에 우리나라도 원전을 포기할 때, 살 길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런 과정에서 모든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사과상자가 썩기 시작하면 일단 상자를 연다. 쏟아내서 썩은 것부터 끄집어내거나 제일 성한 것부터 가려낸다. 문제는 현재 정부에서는 상자조차 열지 않는다. 국민이 썩은 것을 골라낼 수 없으니 썩은 상자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와 전쟁의 공통점은 죽을 때까지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다. 다만 전쟁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지만, 정치는 산다는 것을 목적으로 비전제시를 한다. 희망이 있다. 선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더디고 미끄러지지만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살자고 하는데, 표 깨질까봐, 마무리 못할까봐, 머뭇거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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