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바다에 침몰한 사회의 안전
불신의 바다에 침몰한 사회의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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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06 13:18
  • 호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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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화된 정본통신과학기술은 현대 사회의 장점으로 인식되지만, 1986년에 이미 독일의 사회학자 올리히 벡(Ulrich Beck)이 위험사회라고 지적했듯이 그 역기능도 병존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를 목격하면서 21세기를 맞이하기 전에 이미 불확실과 불안이 만연하고 일상적 위험이 상존하는 현대 위험사회를 체감해 왔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국가의 재난관리체제를 재정비하였고, 국민들은 한층 향상된 국가의 재난관리역량에 대한 믿음을 가져 왔다. 2004년 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도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의무로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 국가의 위험관리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다시금 증폭되었다. 이날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탑승 승객들 대부분은 선내 안내방송에 따라 구조를 기다리며 객실에서 대기하다가 참사를 당했다. 국가의 재난관리체제도 부실했다. 관련 사항들을 조정하기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되지만 실제 재난 발생 시 효율적인 재난 관리·수습을 위한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명확하지 않아 사고 초기 많은 혼선이 빚어졌고, 효과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 해운·항만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해양수산부, 안전관리사무를 관장하는 소방방재청과 해양에서의 경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해양경찰청 등의 권한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에 직면하여 국민들은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의 증폭을 경험하였다. 국가 재난관리체제에 대한 이와 같은 국민적 불신은 5월 2일에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전동차 추돌 사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동차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안내방송에 따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차량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시민들은 안내방송에 따라 객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위험사회를 살아가면서 재난 발생 시 정부가 인명구조를 위한 선조치 이후 사고원인 파악 및 후속조치 등 적극적인 사태수습을 통해 공적책임을 실현할 것을 기대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는 큰 괴리를 드러냈다. 이번 참사의 총체적 문제가 불가항력적으로 휘몰아친 자연재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점철된 구조적 난맥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또 다시 고개를 쳐든 인재(人災)의 근원은 정합성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데 있다.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안전관리위원회가 있지만 관련 기능들이 여러 기관으로 분산되어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가 일원화 및 전문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는 최근 '국가안전처'의 신설을 공언하였다. 하지만 조직의 신설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 강화를 비롯한 국가 재난관리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개편을 통해 국민적 신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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