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저에게 아직도 '가만히 있으라'고만 합니다
세상은 저에게 아직도 '가만히 있으라'고만 합니다
  • 서지영(국어국문·수료) 학생
  • 승인 2014.08.08 17:27
  • 호수 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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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동대문 경찰서의 만행

저는 5월 18일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특별한 날 입니다. 저에게도 5월 18일은 역사적 ‘사건’이 있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에게 18일은 흘러가는 날들 중 하나가 아니라 개인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조용하기만 했던 제가 난생 처음 경찰에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연행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저는 세월호 추모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에 참가했습니다. 노란리본을 단 국화꽃과 ‘가만히 있으라’ 피켓을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행진을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가만히 만 있어서 미안하고, 무기력하게만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 ‘작은 움직임’이지만 추모행지에 그렇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발언을 할 때도 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추모행진에 껴서 걷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화롭던 추모행진이, 우리의 목소리가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광화문대로를 따라 걷던 중 경찰은 우리를 갑자기 막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인도에 있던 저를 차도로 밀어내는 가하면, 불법집회라고 하며 돌아가라고 막아섰습니다. 경찰의 ‘토끼몰이’진압방식으로 ‘인도’에 있던 저는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침묵행진 참여자의 몇 배에 해당하는 경찰들에게 포위된 채 그렇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연행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여성의 치마가 위로 올라가고 스타킹이 찢어지고, 옷이 벗겨지는 가하면 경찰은 성적 수치심이들 만큼 바지를 위로 추켜올리고, 여성 참가자들에 성적인 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경찰의 폭력 앞에서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끌려갔습니다.

저는 동대문 경찰서로 이송되었습니다. 18일 오후 10시 30분경에 경찰서에 도착해 변호사 접견 후 새벽시간에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인후두염과 목감기가 있었던 저는 새벽시간이기도 하고 몸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라 약을 구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조사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지만 조사관은 “조사를 아예 못 받을 정도는 아니죠?”라며 톡 쏘듯 말했고, 조사를 강행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야간시간(0~6시)에 조사를 받을 시에는 “심야조사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조사관은 저에게 이러한 권리를 말해주지 않았고, 저는 조사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조사과정에서 저는 여러 차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사관은 저에게 “개인정보는 묵비권 행사의 대상”이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대답을 강요하는 가하면 경찰이라는 권력을 사용하여 여러 차례 대답을 강요, 협박하였습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던 저는 “대답하지 않으면 본인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는 조사관의 말을 쉽게 넘겨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새벽 2시 30분경 조사가 끝났습니다. 잠시 대기를 하다가 새벽 3시경 유치장으로 내려갔고, 입감 전 여경을 따라서 한 명씩 신체검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여경은 저에게 “자해 및 자살방지의 위험이 있으니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처음 연행된 저는 여경의 요구에 당황했습니다. 불쾌했지만 법적으로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판단이 들지 않았습니다. 몸도 많이 안 좋은 상태였고, 이미 조사과정에서 조사관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던 저는 수치심이 들었지만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로 그 말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3차례의 면회와 19일 오후 2차 조사 시에도 저는 브래지어를 벗은 채로 남자 조사관들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조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얇은 옷을 있던 저는 유치장 안에 있는 40여 시간 내내 경찰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위축감이 들고,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2차 조사 후 저는 여경에 또 한 번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상위 속옷을 탈의하고 있던 저에게 여경은 “속옷만 입고 가운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한 채 여경을 쳐다보았고, 신체검사를 해야 한다는 여경의 말을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운은 브이라인으로 깊게 파져있고, 매우 큰 사이즈로 당시 저는 상의 속옷을 입지 않고 있던 터라 가운을 입으면 가슴이 다 보이는 상태였습니다. 가운으로 갈아입은 저는 가슴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이러한 여경의 처사에 불쾌하고,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유치장 안에 있는 화장실은 문을 열면 소리가 나고 잠금 장치가 없으며, 윗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어 변기에 앉은 채 볼일을 보면 남자 경찰관들이 그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40여 시간동안 볼일을 볼 때마다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볼일을 봐야했으며, 바지를 추켜올릴 때도 반쯤 앉은 상태에서 바지를 올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40여 시간을 유치장에서 보내며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위축감과 수치심 등의 감정을 느끼며, 인권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집으로 돌아 온 날 저는 제 방이 어색했습니다. 넓게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자유로움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40여 시간의 구금이 저를 움츠려들게 만들었습니다.

어제 동대문경찰서장의 사과문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 여경의 ‘실수’라고 하던군요. 피해자가 직접 찾아야만 사과문을 볼 수 있다니 미안하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한 책임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한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공권력의 폭력 앞에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가만히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공권력에 의한 성적 폭언과 폭행 등의 인권유린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만 같습니다. 당사자의 입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과 불법행위를 전면 조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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