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의 위기라고 합니다
학보의 위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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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21 20:17
  • 호수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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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서 독립언론이라는 것이 유행이다. 자유로우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었기 때문이다. 대학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국민대의 <국민 언론>, 성균관대의 <고급 찌라시>, 중앙대의 <잠망경> 등 독립언론이 등장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의 학보사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것은 독자가 학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언론 구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외압도 물론 없어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저널리즘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독립언론은 그런 면에서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또 돈다 "학보는 짜장면, 교지는 냄비…" 못 다 쓴 저 줄임말에는 무엇이 있었을지. 언론 구실을 한다고 그렇게 목에 힘이 들어갔는데 어쩌다 저런 말이 나왔을까.

대학언론의 몰락은 기자 그 본인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다.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올바로 알리는 것'에 그 기본이 있다. 진실 혹은 정의와 같은 것은 기본에 충실하고 난 이후에 기자가 적재적소에 붙이는 성격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앞뒤가 바뀌어 버렸다. 기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올바로 알린다는 기본보다 취재를 할 때의 정신인, 기사를 쓸 때의 정신인 진실과 정의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알리다'는 것은 타자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 여러분의 일상이면서도 사실 남의 이야기와도 같을 얘기를 하나 해보고 싶다. 내가 취재를 할 때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 직원과 만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직원은 자리에 앉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꾸 학생 사회와 학교 사이에 벽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시는데 학교의 얘기도 들어주세요"라고 말이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학보는 학교의 신문이다.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보는 열려 있어야 하고 타자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로 알리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이다. 그 다음에 올 것이 기자 개개의 정신이다. 매 기사를 위해 적절한 이슈를 골라야 하고 올바로 알리기 위한 판단을 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라면 이 두 가지로 끊임없이 고뇌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자들은 후자에 도취되어버린 듯하다. '진실'보도, '탐사'보도, '공정'보도와 같은 것들을 일컫는 것이다. 기자는 스스로의 정신적 판단으로 결코 오만해서는 안된다. 학보의 위기는 다름아닌 기자의 오만함이 나아버린 비극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학보는 언제나 올바로 알리는 것에 매여 공정할 수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약자가 존재하고 밝히지 못한 진실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잎은 햇빛이 광합성을 해주고 흙이 영양소를 떠 먹여줘서 살아난 것이 아니다. 잎은 멋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당신은 저널리즘을 실현하는 사람인지 저널리즘에 당신의 정의를 포장한 사람인지. 다시금 '올바로 알리는 것'이 선(先)이 되는 학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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