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오래도록 그 자리에
여전히 오래도록 그 자리에
  • 정희정 기자 대필
  • 승인 2014.11.11 19:52
  • 호수 2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사양복점 편>

학교 정문 신호등을 건너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작고 오래된 집이 있다. 그곳은 바로 <신사양복점>.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코에 안경을 걸치시고 수증기를 내뿜으며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는 아저씨가 계신다.

81년도.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양복점을 시작하신 아저씨는 맞춤정장을 많이 하던 시절부터 90년대 산업화로 기성복이 마구 생겨나고, 이제는 수선 집으로 바뀐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아저씨네 큰 집이 서울에서 양복점을 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군대보다 더 세밀하고 아주 무서웠다고 했다. 일 보조로 가위나 자 같은 것을 가져다주는데 작은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아 바로 물건이 날라 왔다고 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얻어맞으면서도 배우셨다는 아저씨. 요즘엔 다 기계로 팔, 소매, 앞판 짜깁기 하듯 만들어 내는 기성양복이 늘어나 맞춤 정장하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단추 하나를 달아도, 주머니를 만들어도 최고로 정성을 들이신다.

본교 의류학과 학생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와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고급 정보들을 물어보면 제자 길러내듯 전수해 주신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조금은 까칠하신 모습이셨지만 깊은 정이 뿜어져 나왔다. 아저씨네 집에는 강아지 3마리도 있다고 했다. 다들 나이가 지긋해 한 쪽 눈이 안보이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한번 정주면 오래도록 끝까지 품에 안으시는 아저씨의 마음이 강아지 뿐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가게에도 스며있었다.

이제는 좀 쉬셔도 될 것 같은데 쉬면 뭐하나, 젊어서 배운 기술 끝까지 사용하고 싶다고 하신다. ‘우리도 아저씨처럼 젊음의 패기와 노년의 열정 바쳐 지켜낼 무언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다시 손 때 묻은 미닫이문을 열고 학교로 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