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교정) 생명윤리연구소장 정재우 교수 편
(성의교정) 생명윤리연구소장 정재우 교수 편
  • 정희정 기자
  • 승인 2014.11.26 22:05
  • 호수 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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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J : 생명. ‘나’와는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이다. 학점 관리하며 돈도 벌어야 하고 동시에 꿈도 찾아야 하는, 오늘 날의 많은 학생들의 삶이다. 빈둥거리는 것 같아 보인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안고 산다. 그래서 어느 샌가 자기 존재의 소중함과 가치가 흐릿해진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단어도 참 생소하다.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생명은 왜 중요한가 묻고 싶다.
정 :
생명. 우리는 살아 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친구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개인이 행하는 모든 것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잠시 후에 우리가 죽게 된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생명이 귀하다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과 지금 이 시간에 살아 있게 해주는 근원이기 때문에 귀하다.

J : 육체는 살아 있어도 스스로 마치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낄 때도 있지 않은가.
정 : 살아 있어도 삶이 너무 힘들어서 심적으로 우울하고, 외롭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태를 다들 한 번 쯤은 경험해 봤을 것. 그렇더라도 ‘내가 힘들다,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뭘 하면 좋을지,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괴로워하는데 그 자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도록 우리는 방향을 바꾸며 그 곳에는 생명이 있다. 

J : 개인적으로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나.
정 : 생명은 우리가 살아있는 근원이고 에너지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발판과도 같다. 작년에 성심교정 인간학 특강에 갔었을 때도 생명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강의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받치고 있는 것은 생명이며 발판이 무너지면 그 위의 모든 것도 무너지고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 있게’해주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J : 내가 생명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진다는 뜻인가?
정 : 아니다. 내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 의미 있게 해보자’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발견하고 새로이 부여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J : 그 의미가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나.
정 : 그렇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J : 부정이 부정이 아니라는 뜻일 수 있겠다.
정 : 맞다. 내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르침을 주며 살아있다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그것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J : 한 편 그런 성장과 발전을 거부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무엇 때문인가?
정 :
대개는 사람이 건강하고 평온할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 모든 것이 귀찮아 지고 허무함을 느끼는데 이는 곧 잘 살아보고 싶은데 마음, 좋은 것만 누리고 싶은 열망처럼 되지 않는 실패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부터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J : 일상 속에서 새로운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절망적인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뭐라고 하겠나.
정 : 절망적인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면 주기적으로 상황이 어려워지기 때문인지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만약 마음이 문제라면 나를 돌봐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 이야기로 풀어내고 치유 받을 수도 있고. 방법에는 ‘관점’이 있다. 다들 이런 얘기를 알 것이다. 물이 반 밖에 없는 것과 반이나 남은 것은 보는 관점과 마음가짐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 반이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똑같은 사실이나 가치를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난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살아있고 큰 변화 가 없으면 내일도 살 것인데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어서 나에게 왜 하루가 주어졌는지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어제 어머니께 불평한 것, 또 실수한 것을 오늘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살게 해준 생명이 귀하다.

J : 생명이 삶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근본이 받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래서 내 생명조차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정 : 가장 절망스러울 때 그렇게 느낀다. 희망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 J가 여기까지 차를 타고 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 아닌가. 의미가 없으면 할 마음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것이 개인의 차원뿐 아니라 사회의 차원에서도 생명은 근본이 된다. 평화·평등·자유·사랑·희망 이런 것들은 생명을 해치는 곳에 없다. 살인을 저지르면 구속이 되니 더 이상의 자유가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리 없다 더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옳다. 생명이 파괴되면 사랑도 희망도 없다. 희망은 언제나 사랑을 향해서 살아보자는 거니까.

J : 우리 사회는 앞서 말한 사랑과 같은 가치들이 무너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몇몇 사건이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좋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지.
정 : 그런 사건을 보고 ‘아.. 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것 자체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조차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퍼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건 후에 이런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생명이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런 사회여야만 평화와 자유, 사랑을 얘기할 수 있다.

J :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반대로 대표되는 욕심과 같은 것들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정 : 사실 우리는 욕심이 없어도 살기가 어렵다. 욕심이 있어야 열정과 의욕도 생기니까. 무언가를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밝은 곳, 생명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옆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겠는가?

#죽음
J : 생명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죽음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등의 질문 앞에서 다시금 엄숙해지며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또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찰하게 되는데 죽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 :
대게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가령 우리가 공부를 할 때 다음 주 시험과 두 달 뒤 시험일 때 어떨 때 더 공부를 열심히 하겠나. 시험이 다가올수록 정신을 더 바짝 차리게 된다. 또 만회할 수 있는 공부와 당장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수능에서 언제 더 정신이 차려지겠는가. 뭔가 하나 맺어지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이 시간이 안 소중할 수 없다. 그러니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이 삶이 무한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J : 그래서 죽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정 : 죽을 때 보통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서 아쉬워하는 것들은 대게 좋은 것 인데 많이 못했던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더 할걸…’, ‘부모님 돌아가실 때 전화 한 번 더 할걸…’ ‘한 번 보자고 했는데 볼걸…’과 같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린다. 따라서 귀한 인생 무엇을 채울 것이냐는 질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더 많이 사랑하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만 해도 아까운 인생이기 때문에.

 

# 그래서...
J : 왜 하필 사랑일까? 믿음, 희망, 정의, 평화 많고 많은데.
정 :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이 사랑에 있으니까.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지 사람들 끼리 친분을 나누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이고 여러 가지 모습들로 표현이 된다. 이해관계를 떠나 호의를 베푸는 것이 없어진 사회를 각박하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나눌 줄 알고 마음 쓸 줄 아는 사회에서는 우리는 살 맛 난다고 한다.

J : 우리 사회가 각박한 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겠나.
정 :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말이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말이다. 즉 나 먼저 챙기라는 것. 그런데 우리가 과거에 옛날에 비해서 굉장히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자살을 많이 하고 각박함을 느끼는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마음으로는 메마르고 어둡고 무의미하니까 죽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정말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은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진정 느끼게 하는 것은 위로와 베풂, 사랑이 아닐까. 물질은 그것을 돕는 조건에 불과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직업을 갖고 집을 마련하고 당장 먹고 사는 것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과 함께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이 귀하다는 생각, 생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사랑과 삶의 보람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을 포기하지 말기를.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것 안에서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봉사도 하고 나눔도 했으면.

J: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니다?
정 :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아도 도움주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별것 없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을 알지 않나.

J :그런데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은 왜 눈에 보이지 않나?
정 :
성경에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것을 알려고 하고, 찾는 사람에게는 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가 중요하다. 마음의 동요. 아무리 공부가 중요한지 알아도 마음에 동요가 없으면 안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스스로의 의지와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새로 주어지는 하루를 좋은 마음으로 살며 그 안에서 감사를 찾고 나와 나를 둘러싼 사회에서 숨쉬는 모든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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