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마음이 담긴 한 그릇
여러 마음이 담긴 한 그릇
  • 정희정 기자
  • 승인 2014.12.09 19:14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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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손 칼국시 편>

필자가 초등학교 입학 전, 유년시절에 외할머니는 시장에서 칼국수 집을 하셨다. 외할머니는 직접 반죽을 하셨다. 도마 위에 밀가루를 찹찹 뿌리고 칼로 면발과 호박을 숭숭 썰고 육수를 팔팔 끓여 몇 평 안 되는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뜨겁게 한 그릇 대접하셨다. 외할머니의 볼록 나온 배 위를 덮은 앞치마는 항상 밀가루와 국물로 얼룩 졌었는데 손님이 다 나가고 나면 할머니는 따뜻한 손으로 어린 내 볼을 쓰담아 주셨다. 그러면 난 할머니 품에 안겨 그릇을 다 비우고 나간 사람들도 나처럼 포근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후에 할머니는 몇 가지 이유로 가게 문을 닫고 앞치마를 매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도 그 맛과 기억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학교에 오고 가는 길 왔다 갔다 수백 번을 했으면서도 <엄마손 칼국시>를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다. 겨울이 되어서 가게 유리문이 뿌옇게 김이 서리고 나서야 칼국수 생각이 났다. 그래서 들어가 본 <엄마손 칼국시>는 외할머니 생각이 나는 맛이었다. 시원하라고 배추 몇 이파리 넣은 닭 칼국수부터 아끼지 않고 야채를 수북이 쌓아준 비빔밥까지 “맛있어!”를 내뱉지 않으면 안 되는 맛이다.

<엄마손 칼국시>는 원래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날이 춥기도 하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조금 편찮아 세 자매 중 두 딸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새벽 일찍 나와 육수를 끓여 내신다. 할머니는 갈비 집부터 시작해서 여러 장사를 하셨는데 마음 넉넉한 철학이 있다. 남는 게 별로 없더라도 학생들을 내 자식이라 생각하며 많이, 맛있게 배를 불리는 것. 조금이라도 상한 재료들은 바로 비워내고 좋은 재료만을 사용하기. 할머니의 딸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인 착한 철학이다. 온 가족이 복작대며 순수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엄마손 칼국시>.

어느 날인가 아침 일찍 할아버지가 가게를 열려고 도착해 보니 한 학생이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괜찮겠냐고 하자 학생은 들어가서 기다렸다고 한다. <엄마손 칼국시> 가족들의 마음도 웃고,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 간 학생도 웃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학생은 할머니가 엉덩이 두들겨 주는 그런 그리움, 가족과 같은 따뜻함, 어린 시절 필자가 느꼈던 그런 맛으로 그 아침을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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