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노크하다_식품영양학 김석신 교수 편
J가 노크하다_식품영양학 김석신 교수 편
  • 정희정 기자
  • 승인 2014.12.09 19:36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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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을 하는 특별한 의미
J : 주말에 김장을 하셨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김치를 사먹는 경우가 많아 김장하는 가정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온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서 김장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한데, 저서를 통해 음식에서 사랑과 행복, 생명이 비롯된다고 말씀하신 교수의 생각은 어떠한가?

김석신 교수(이하 김) : 2013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김장이 등재되었다. 문화유산이란 후대에 계승·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전대의 문화적 소산이다. 김장은 분명 우리만의 고유하고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겨울에도 맛있게 먹는 김치는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 필요한 영양소를 두루 갖춘 지혜로운 발효산물이다. 이것만 봐도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하는 데에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의미가 있지 않겠나.

J : 하지만 김장문화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후손들도 김장문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갈지는 알 수 없지 않은가.
김 : 사시사철 돈으로 김치를 살 수 있는 시대에 힘들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김장을 계속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김치는 먹되 김장은 하지 않는, 즉 ‘Sustainable Kimch, non-sustainable Kimjang’의 현상을 우려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김장의 의미는 분명 인정한다. 의미(意味)라는 말 자체가 어떤 일의 뜻과 맛, 즉 가치 아닌가? 그런데 재미가 없는 것이 김장이다. 재미는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인데, 김장은 힘들고 지루하다. 의미만 있고 재미가 없거나, 재미만 있고 의미가 없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인생의 최고선인 행복은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지닌 상태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김장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세계가 인정한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을까? 우선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운동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재미있어 하는 법이니까.

 

#사먹는 김치와 ‘어머니 표’ 김치
김 : 먼저 사먹는 김치와 담가먹는 김치의 차이점부터 생각해 보자. 사먹는 김치는 익명의 사람들이 익명의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담가먹는 김치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주려고 만든 것이다. 정성의 차이는 물론이고 재료부터 맛까지 다르다. 알파도 오메가도 다른 거라고 할까?(그렇다고 결코 파는 김치가 나쁘다고 차별하는 말이 아니다.)

즉, ‘어머니 표’ 김치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김치는 거의 매일 우리의 밥상에 오른다. 일 년에 한두 번 먹는 음식과 매일 먹는 음식의 영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 년에 한 번 먹은 인삼 한 뿌리 때문에 얼마나 건강해지는데 매일 먹는 김치의 영향은 어떨까.

J : 우리가 매일 먹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 인가보다.
김 : 그렇다. 만약 그 영향이 만약 나쁜 경우라면 더 심각하다. 이른바 매스컴에 ‘납 김치’나 ‘기생충 알 김치’로 알려졌던 해로운 김치는 한 번 먹고 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우려되는 것이다.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으러 멀리 다니기 전에 매일 먹는 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먼저 알자. 이런 것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김장이 재미있어 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학생도 나중에 결혼해서 부모가 되었을 때 돈 버느라 바쁘다고 귀여운 자식에게 김치를 사서 먹이겠는가? 아니면 의미 있고 재미있게 담가서 온 식구가 맛있게 먹겠는가? 재미는 그 놀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렇다고 김치와 김장에만 의미와 재미가 있을까? 인생은 생명이 있기에 존재하고, 생명은 음식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모든 음식에도 의미와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하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의미와 재미가 공존하는 상태이다.

 

# 당신은 왜 먹습니까?
J : 교수께서는 "우리는 왜 먹는가?"에 대해 오랜 고찰을 하신 결과 어떠한 결론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종종 ‘난 먹기 위해 산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어 보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왜 먹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공유해줄 수 있는지.
김 : 인생에 대한 질문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본다. 1단계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For what do I live?’이다. 이 질문보다 더 근원적인 2단계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 Why do I live?’이다.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3단계 질문은 ‘나는 사는가?, Do I live?’이다.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나라면 이렇게 답하겠다. 1단계는 ‘행복을 위해서. For the happiness.’ 2단계는 ‘생명이 있어서. Because I have a life.’ 3단계는 ‘나는 내가 살고 있음을 인지해서. Yes, I recognize that I live.’이다.

흔히 우리는 ‘먹고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영역하면 ‘eat and live’가 된다. 다시 말해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다. 영역하면 ‘eat to live’도 아니고 ‘live to eat’도 아닌 것. 먹는 게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먹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먹는 것과 사는 것은 대등한 관계다. 숨 쉬는 생명인 우리는 공기가 없을 때 공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먹어야 사는 우리는 음식이 없을 때, 배고픈데 먹을 게 없을 때라야 비로소 음식의 중요성을 안다. ‘먹고 산다’는 말은 이런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면 위 질문에 ‘산다’ 대신에 ‘먹는다’를 대입해 볼까? 왜냐하면 두 가지는 대등하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먹는가?, For what do I eat?’이다. 2단계 질문은 ‘나는 왜 먹는가?, Why do I eat?’이다. 이것이 오늘의 질문이다. 3단계 질문은 ‘나는 먹는가?, Do I eat?’이다. 이 질문에도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답은 1단계는 ‘행복을 위해서, For the happiness.’ 2단계는 ‘생명이 있어서, Because I have a life.’ 3단계는 ‘나는 내가 먹고 있음을 인지하기에, I recognize that I eat.’이다. 어떤가? 좀 무리인가? 하지만 수긍이 가는 점도 많을 것이다.

원래 음식의 飮은 밥 식변에 欠(흠: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모양)을 덧붙인 글자로 마시다와 호흡하다의 뜻이다. 食은 사람(人)에게 좋은(良) 것이란 뜻이고요, 그러니 飮食은 사람에게 좋은 것, 살아 숨 쉬는 생명에게 좋은 것이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왜 먹는가?’에 대한 저의 대답은 ‘생명이 있어서’이다. 왜냐하면 생명인 우리는 생명을 먹고 살고, 생명이 먹는 생명이 바로 우리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 앞으로는 벌레도 먹어야 한다는데…
J : 요즘 학생들 같은 경우 아주 어린 시절부터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등 이미 '제품'이 되어 버린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에서 생명을 느끼지 못한다. 또 SNS 상에서 치킨이 신격화 되었지만 정작 닭의 생명과 삶은 없는,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소비들이 이뤄지고 있고.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김 :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고, 생명이 먹는 생명이 바로 우리의 음식이다. 음식은 단순히 만들고 팔고 먹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음식이 제품이나 상품이 되었다. 식품(食品)이란 말도 먹을 물건이란 뜻. 이 말에서는 음식(飮食)에 담겨 있는 고귀한 생명의 뜻이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 TV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 댁에 아들내외와 손자가 방문했다. 할머니는 귀여운 손자 먹으라고 키우시던 닭을 잡아 요리를 했는데, 그걸 본 손자는 할머니에게 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닭의 생명을 느낄 수 없는 닭튀김은 잘 먹었다. 나는 추어탕이 미꾸라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미꾸라지를 갈아 만든 추어탕은 잘 먹지만 미꾸라지 모양이 살아있는 통추어탕은 싫어한다. 불편해서.

그런데 앞으로는 식량부족 때문에 곤충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먹던 벼메뚜기와 누에번데기는 물론 딱정벌레, 각종 애벌레, 흰개미도 먹게 된다고 한다. 지금도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시장에서는 곤충을 판다. 벼메뚜기나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먹던 우리 나이의 사람들은 음식이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젊은 사람이나 어린이들은 치킨너겟이 하나의 생명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만약 먹을 것이 없어서 바퀴벌레를 구워먹는다면 음식이 생명임을 잘 알게 되겠다. 그러니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한다.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면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존재의 생명을 존중해야 내 생명도 존중받는 법이다.

 

# ‘먹고’ 그리고 ‘사는’ 우리
J : 마지막으로 밥도 못 챙겨 먹고 바쁘게 지내는 학생들을 대신하여 조언을 구한다. 젊은 날에 어떻게 살아야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어낼 수 있을는지.
김 : 우선 가족들이 함께 하는 밥상을 규칙적으로 갖도록 신경 쓰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세 번...이렇게 늘려가면서 행복을 경험해 보길. 학교에 오면 밥 친구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한 사람도 좋고 두 사람도 좋고 열 사람도 좋다.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라. 꼭 공부나 취직 이야기만 할 필요 없다.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 이야기도 하고 교수님 흉도 보고···. 하루를 즐기듯 한 끼를 즐겨라! 그 한 끼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젊은이는 면역력이 충분하고 건강하다. 하룻밤을 새우고 일을 해도 피로가 쉽게 풀리고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회복이 빠르다. 또 젊은 시절에는 먹는 것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먹는 걸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다. 한마디로 ‘먹고 산다’ 중에서 ‘산다’에 충실하고 ‘먹고’에 충실하지 못한다. 안 된다. ‘먹고 산다’에 대등하게 충실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집 밥의 즐거움은 인생의 절반
김:
언제까지나 젊지 않다. 그리고 평생의 건강은 젊었을 때의 건강으로 유지하는 거다. 식품영양학 전공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것은 “오늘 내가 식이섬유를 충분히 먹었나?” 자문자답하는 일이다.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배변도 중요하지요. 식이섬유는 기본적으로 통변을 좋게 해주고 비타민, 미네랄 등 미량원소도 공급해주는 성분이다.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와 과일은 우리가 좋아하는 햄버거나 라면, 짜장면에는 충분히 들어있지 않다. 그러니 소위 ‘집 밥’을 먹도록 애쓰세요. 담소하고 웃으면서 말이다. 집 밥의 즐거움이 인생의 절반이다.

예전에 하수도 공사를 하면 그 주변을 넓게 파헤치는 바람에 다니기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칼로 도려내듯 아스팔트를 잘라내어 공사하는 현장을 보면서 참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나는 ‘넓게 파야 깊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효율을 중시하고 ‘빨리 빨리’를 지향하는 우리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비효율적인 생각이다.

요즘 라면 먹으면서 컴퓨터 하는 젊은이가 많은데, 이런 ‘면식’ 하지 마라. 컴퓨터작업이 정말 함께 먹는 한 끼 식사보다 중요할까? 효율적으로 빨리만 파려하지 말길. 천천히 넓게 파다보면 아주 큰 것을 건질 것이다. 대박은 결코 효율에서 오지 않는다. 꼭 밥 챙겨 먹자. 어머니 당부에 틀린 말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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