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그 바다는 안녕했어요?
2014년 그 바다는 안녕했어요?
  • 정희정 기자
  • 승인 2014.12.09 20:15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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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3월생인 나는 유독 빠른 년생 친구들에게 언니나 누나인 척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 때는 내가 마치 우주 최고 철학자이자 카운슬러인 줄로 착각하며 살았다. 또 오지랖도 심해서 빠른 년생 친구들이 언니들 틈에서 공부하며 마음고생이 심할까봐 없는 고민도 내놓으라고 졸랐었다. “너희들이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 나는 땅을 짚었다”며 허세를 부리면 친구들은 어이없어하기 일쑤였지만 나름 진지하게 듣는 모습에 그녀들은 그렇다 쳐 주었다. 그렇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학교를 다녔다. 나름대로의 조언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늘어났고 점차 다양한 친구들이 쉬는 시간이나 자습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덕분에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높은 나이보다 깊은 내면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다.

한 친구 한 친구 다 마음에 새겨 놓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내가 부르던 별명은 나비였다.) 역시 빠른 년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간섭을 받으며 친해졌었는데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다. 나비는 유독 한 친구하고만 붙어 다니면서 꼭 같은 자리에 앉고, 점심도 둘이서만 먹고, 화장실까지 같이 가고, 방과 후도 같은 것만 듣고, 자습실도 옆자리에 앉고. 다른 친구들과의 교류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툼이 있었는지 자신의 편협한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듣다가 “인간관계는 파도 같은 거야.”라고 넌지시 말했다. 친구는 ‘얘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종례 후 적막한 교실에 나비와 마주 앉아서 나는 이야기했다. 이렇게. 인간관계는 파도 같은 거야. 계속해서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고… 넓은 바다를 돌아다니다 다시 들어오고. 예전 그 물일 수도 있고 처음 보는 물일 수도 있고. 때로는 파도가 심하게 쳐서 아플 수도 있고 평온으로 잔잔할 수도 있고…바다는 파도가 치기 때문에 바다인 거야. 파도가 치는 것 자체로 고마운 일이라니까. 그러니까 그 친구와 잠시 멀어졌어도 슬퍼하지 마. 너무 붙잡아만 두려 하지 말고. 밀물 파도에 맨발을 담군 것처럼 예뻐해 주면 돼. 가끔 너무 거세면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우리 모두 마음에 바다가 있다. 2014년, 당신의 바다는 수많은 파도로 울렁였다. 행복했을 수도, 괴로웠을 수도. 하지만 그 바다는 어쨌거나 파도가 쳐서 다행인 것이고 저쨌거나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한 거다. 그리고 이제는 쉼 없이 파도 친 바다를 멀찍이 바라보며 다음 파도를 넘실넘실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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