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유리벽
  • 김덕현(국사,4)
  • 승인 2014.12.09 20:31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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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가대문화상-소설 부문/당선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아침 일찍부터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 터라 따뜻한 햇빛에 졸았던 모양이다.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자료 가져오셨나요?”
  성모병원에서 가져온 자료를 찾기 위해 주섬주섬 가방 속을 뒤졌다. 영수증 뭉텅이와 함께 CD한 장과 소견서 봉투가 나왔고, 의사선생님은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내가 건넨 CD와 소견서를 보기 시작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꼭꼭 숨어있던 희망이 머리를 빼꼼 들었다.
  “입원요건은 충분하네요. 뭐, 완화의학이라는 게 치료의 목적은 아니예요. 그래서……”
  “알고 있습니다. 알아요…….”
  되었다. 입원할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사의 뒷말이 듣기 싫어 황급히 잘라버렸다. 혹시 기분이 상했을까 곁눈질을 하니, 그는 내 말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일 오전 중으로 입원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왔다. 입구에 빨간 주발이 달린 짜장면집, 시즌세일 중인 미도파백화점, 굴다리 입구의 해병대전우회간판, 진동하는 생선냄새…….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어느새 기억 속의 길로 변해있었고, 그 속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재잘거리는 일곱 살 난 여자아이와 환하게 웃는 젊은 엄마가 아른거렸다.


  
  “딸, 왔어?”
  “응. 잘 갔다 왔어. 엄마 내일 병원 갈 거야. 하루만 더 참자.”
  엄마는 힘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을 건네고, 익숙한 동작으로 엄마의 목을 주물렀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깨려고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어쩌면 집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란 생각에 엄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자 마자 앰뷸런스에 엄마를 태웠다. 옆 좌석에 앉아 엄마 손을 잡고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려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출근시간이 지난 도로 탓인지 한 번의 막힘없이 차는 달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조금 편하게 해주는 길인데 지체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혈압 체크할게요. 보호자분 어머니 케모포트하셨나요?”
  “네. 케모포트 되어있어요.”
  “어머니, 케모포트 좀 볼게요. 안정제랑 수액 들어가니까 이제 괜찮을 거예요.”
  “살려주세요… 빨리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간호사선생님과 의사선생님은 재빨리 엄마의 상태를 체크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는 엄마. 엄마의 약해져가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아졌다.
  “엄마 괜찮아. 주사 들어갔으니까 걱정하지마. 숨 천천히 쉬자. 다 괜찮아.”
  아기가 무서워 엄마 손을 잡듯이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은 간절했지만 악력이 사라진 듯, 힘이 하나도 없었다.
  “보호자분, 환자복 두고 가니까 갈아입히시고 어머님 진정되시면 잠깐 간호사실로 오세요.”
  스테로이드제 투입으로 금세 안정을 찾은 엄마는 잠이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약에 의존해서라도 오랜만에 편하게 자는 엄마를 보니 안쓰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렇게 잠든 엄마를 뒤로하고 간호사실로 향했다.
  “아 오셨어요? 음… 몇 가지 할 얘기가 있어 오라고 했어요. 지금 엄마상태는 알고계시죠?”
  “네. 전 병원에서 DNR동의서도 썼고요… 대강 알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여기서도 동의서 한 번 더 쓰셔야 하고… 어디보자, 지금 가져오신 약은 드셔    도 소용없고, 산소호흡기도 필요 없는 거 아시죠? 안정하라고 설치해 드린 거예요.”
  알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웅크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머리에서 받아들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수백 번 수천 번 되 뇌이며 유리벽을 쌓았다. 번번이 나의 유리벽은 금세 무너졌고, 유리 파편들은 내 마음을 마구 찔러댔다. 앰뷸런스 안에서 ‘이번 유리벽은 버티게 해주세요.’라고 수 없이 빌었던 간절한 기도는 또 한 번 무너진 것이다.
  “저… 선생님, 엄마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나요? 한 달 정도…인가요?”
  “그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내일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거든요.    더군다나 젊은 분들은 진행이 더 빨라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별의 시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나보다. DNR동의서를 처음 작성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 저는 지금 어머님 담당하는 박사라 교수님 펠로우 김선희고요, 어머님 상태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 급하게 오시라고 했어요. 이게 어머니 CT사진이에요. 여기,    뇌로 전이되어서 다리가 안 움직인 거였고요, 또 여기보시면 폐까지 전이됐죠? 그것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거예요. 지금 림프절까지 완전히 전이됐어요. 그래서… 언제 숨이 멈출지 모    르는 상황이거든요. 동의서를 하나 쓰셔야하는데, 이 동의서는 심폐소생술 금지 동의서예요.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을 안 한다는 동의서죠.”
  “잠깐만요, 꼭 그거 써야 해요? 안 써도 되잖아요.”
  눈에선 벌써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아졌다. 감당할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머리에서도 감당할 수 없다며 경광등을 울려댔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심폐소생술에 대해 설명했고, 본인의 어머니여도 동의서에 사인을 하겠다며 나를 설득시켰다. 불 꺼진 복도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울었다.
  
  “음…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 분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병동이라 저희도 환자분을 파악하       고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면담하고, 서류 작성할게요.”
  나는 빠르게 사인을 했고, 어머니의 가족관계와 경제적 상태에 대해 상냥하게 묻는 간호사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족관계는 제 아버지, 연년생인 남동생, 제 친할머니고요.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외할    머니, 엄마 위로 언니하나 밑으로 남동생이 넷 있어요. 치료비는 어머니 돈으로 충당했고요,    앞으로의 치료비도 감당할 정도는 남아있어요. 하지만 전체적인 집안 상황은 좋지 않아요.    그동안 어머니가 모두 생계유지를 하셨거든요.”
  “아… 혹시 어머님이 불편해 하거나 저희가 조심해야할 것이 있나요?”
  “혹시라도 동생과 저희 할머니가 면회를 온다면 막아주세요. 많이 힘들어 할 거예요.”
  간호사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딸, 바쁘지? 엄마가 검사받았는데 큰 병원에 가야한대. 검사받은 자료 좀 받아서 엄마 학원으로 가져다 줘라 부탁할게^^’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젊은 여자가 동네산부인과에서 받을 수많은 눈총에 얼굴에 온갖 주름을 잡았고, 친구와의 약속에 늦게 되어 있는 대로 짜증을 표시하며 산부인과로 향했다. 내 이름이 불렸고, 원장실로 들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심각한 거 알아요? 아마 암일 거야. 수술해봐야 알겠지만…잘해드려요.”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암이라니. 버스를 타고 엄마의 학원으로 가는 내내 고작 동네 산부인과의사가 내뱉은 말을 부정했다.
  “엄마 이거.”
  “고마워. 의사가 별말 없디?”
  “응 별말 안하대? 별 일 없을 거야. 엄마 건강하잖아. 간다.”
  아까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엄마 눈에 물기가 서린 것 같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이 주라는 시간이 지나, 엄마의 병명이 밝혀졌다. 유방암, 3기. 수술과 항암치료가 필요한 병이었다.
  “딸, 엄마 암이라네. 수술해야 할 거 같아. 바쁜 거 아는데 간호 좀 해주면 안 될까?” 
  애써 밝은 엄마의 부탁과 애써 담담한 대답으로 우리의 병원생활은 시작되었다. 현실은 무섭고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눈앞에 놓인 태산을 보고도 눈을 감으려 애썼다. 열흘의 입원기간동안 아빠는 퇴원하는 날 처음 얼굴을 보였다.
  “여보 내가 수술비에서 40만원이 모자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처남한테 얘기해.”
  화가 났다. 아빠의 뺨을 있는 힘껏 치고 싶었다. 아니, 아빠의 몸에 손대는 것조차 더럽게 느껴졌다. 20년을 넘게 고생한 아내에게 저게 할 말인가. 곁눈질로 슬쩍 본 엄마에 얼굴엔 말할 수 없는 허무함과 서운함, 서글픔이 서려있었다. 아빠의 차로 집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는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너는 나이 값을 못하니? 왜 보험하나 없이 사람 치료비걱정을 시켜. 이제 우리 집 쌀은 누    가사고 세금은 누가 낸다니?”
  할머니의 잔소리.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귀를 막았다. 엄마도 늘 그래왔듯 귀를 막기 바랐지만, 아니었나보다.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서운함을 내뱉은 후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13년 전 처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떨어져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나는 휴학을 했고, 밤낮으로 일을 해 엄마대신 쌀도 사고 세금도 냈다. 그리고 간간히 엄마 얼굴을 보았다. 아주 간간히. 시간이 지나 엄마를 다시 만난 곳은 법원이었다. 피고 임동현. 동생에게는 징역 6개월의 구형이 내려졌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의 식사시간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서로 생선살을 발라 올려주기도 하고 이따금씩 농을 건네며 웃기도 했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또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를 잃었다. 내가 열심히 쌓아올린 유리벽.

어느순간 나의 유리벽은 조금씩 사라졌다.

파편도 남지 않고 사라져갔다.

그 순간, 유리벽이 막고 있어서 나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상처에는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니 잠에서 깬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좀 불러봐. 보고 싶네. 아빠 오면 밥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엄마의 부탁에 나는 아빠에게 연락했다. 역시나 아빠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빠가 미웠지만,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매달렸다. 그렇게 아빠가 병원에 도착했다.
  “여보, 나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나 등 좀 쓰다듬어줘”
  아빠는 말없이 엄마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리고 엄마의 숨소리는 점점 차분해졌다.엄마는 밥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죽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여보, 또 와. 또 와야 돼”
  아빠는 엄마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갔다. 아빠의 뒷모습은 작았다. 흰머리가 가득했고 언제부터였는지 디스크로 인해 걸음걸이는 어기적거렸다. 그 모습을 눈에 담고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엄마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딸아, 너는… 아무도 미워마라……. 나도 할머니가 밉지. 아빠도 원망스럽지… 그런데 알겠    어… 왜 다들 그렇게 했는지… 사람이… 다 입장이란 게 있잖아… 너도 조금씩…이해하게     될거야…”
  밤이 되면 더욱 힘들어하는 엄마가 언제 깰지 몰라 항상 밤을 지새웠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밤은 조금 달랐다. 나는 그동안 보지 못한 진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년 전의 아빠는 엄마에게 미안한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고, 그것이 슬펐을 것이다. 아빠가 낸 역정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을 나는 몰랐고, 엄마는 알았다. 
  그 날 이후로 병원에서의 생활에 다시 익숙해지고 똑같은 일상이 지나갔다. 엄마가 약해질수록 나의 유리벽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아…ㄴ…돼…안…가…싫…어”
  “응? 엄마 뭐라고?”
  밥 대신 내가 사온 딸기 몇 조각과 물 반 컵으로 식사를 대신한 엄마가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힘주어 엄마 손을 잡고 직감적으로 행동했다.
  “엄마, 이상한 사람이 말시키는구나? 신경 쓰지마. 나 옆에 있으니까 아무도 못 와. 알지?    엄마 딸 성질머리 더러운 거? 엄마, 오늘도 많이 사랑해. 항상 우리엄마 자랑스러운 거 알    지? 우리 엄마여서 고마워.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엄마는 고개를 힘겹게 움직이며 입모양으로 대답했다. ‘나도’라고.
 
  “선생님! 엄마 좀 봐주세요!”
  타박타박. 마음 급한 발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잠깐 졸고 나니 엄마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침대 빼자. 임종실로 옮기자.”
  선생님과 나는 엄마를 임종실로 옮기고, 선생님은 엄마의 마지막을 위해 클래식을 틀었다. 점점 핏기가 사라지는 엄마의 얼굴과 잦아지는 엄마의 숨소리를 보며 난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무슨 말이든 건네고 싶었다.
  “사랑해. 엄마 사랑해. 이 말 너무 늦게 해서 미안해. 엄마 마음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     해. 너무너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였어. 엄마 마음 아프게 하는 딸이어서 너무    미안해. 진짜 행복했어. 우리 엄마여서 고마워. 지금 다 듣고 있지? 다 알고 있지? 엄마…    우리 슬퍼하지 말자…….”
  울지 않았다. 나는 울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후회와 감사함과 미안함을 가득 담아 엄마 얼굴을 안아보고 엄마 뺨에 입을 맞추고 차가워지는 엄마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간호사 선생님과 엄마를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채우고, 동생과 아버지를 불렀다. 충격에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 동생을 두고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다 끝났다. 이제 끝이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잔인하게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가 싫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례식은 바빴다. 나는 웃으며 손님접대하기에 바빴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고, 신부님은 장례절차에 큰 도움을 주셨다.
  “곧 장례미사에서 아시겠지만, 친척여러분은 우리 율리아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버텨왔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신부님은 외가 친척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미사 전, 나는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 저… 지난 이야기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 소용없어요. 엄마가 돌아    가신 슬픔이 분노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하면 아빠랑 할머니    만 죽일 놈 되는 거잖아요.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그럼 나대신 율리아가 인사드려.”
  “감사합니다.”
  “…엘리사벳은 그 어떤 교우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분이었습니다.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음을 말했을 때, ‘예, 때가 되었다면 하느님 곁으로 가야지요.’하며 순종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딸인 율리아 자매가 오늘 저 대신 강론을 하겠습니다.”
  미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익숙하게 마이크를 찾아들고 제대 앞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저희 어머니의 장례미사에 와주신 교우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어… 경황이 없어 어떤 말을 어떻게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철없는 딸이라 엄마 마음을 많    이 아프게 했었는데, 엄마가 의식이 있을 때 우리 엄마여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오늘도 많    이 사랑한다고 얘기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지금 이렇게 잘 서있을 수 있는    것 역시 공동체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덕분인 것 같아요. 신자가 없는 저희 집을 배려해주    신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엄마가 이제 없지만 하느님 곁에서 항상 살아있다고 믿    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일이 그렇게 끝나버렸다. 한 시름 놓았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엄마의 짐은 그대로 나에게 왔고, 나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앞의 태산을 피해 눈감지 않는다. 그 태산에 질릴 때 옆을 바라보면 옆에서 함께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를 잃었다. 내가 열심히 쌓아올린 유리벽. 어느 순간 나의 유리벽은 조금씩 사라졌다. 파편도 남지 않고 사라져갔다. 그 순간, 유리벽이 막고 있어서 나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상처에는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리벽이 사라진 나는 이따금씩 주체할 수 없이 슬프지만, 조금 더 행복하다.

 

소설 부문 당선 수상소감_김덕현(국사,4)

  글을 써 내고 수상을 하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 연락을 받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제 글이 어딘가에 실린다는 게 많이 부끄럽기도 하네요. 수상보다는 이 글을 쓰면서 치유 받고 싶었습니다. 완전히 몰입해 써내려가서 응모 분량의 두 배에 가까운 글이 나왔고, 분량에 맞게 다듬고 고쳐서 완성된 소설입니다. 완성작을 훑어 보면서도 호흡이나 의도한 감정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 삭제된 장면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이후로 과제 외의 글을 써본 적이 없는 터라, 이 소설을 쓰며 글에 대한 욕심이 살아났습니다.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참 많은 것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것을 글에 표현해보고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더 이상 짐이 아닌 소중한 가족, 아빠와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문화상에 출품하기까지 큰 힘이 되어준 룸메이트 승진이 유현이 그리고 제가 학교로 다시 돌아올 마음을 먹게 해준 소피바라 10학번 동기들,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매번 감명 깊은 수업으로 학교로 돌아온 것이 너무나도 잘한 선택임을,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주신 국사학전공 선생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1000일이라는 시간 동안 힘든 일, 기쁜 일 모두 함께해준 사랑하는 김지훈씨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부족한 작품인데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부문 당선 심사평_김정 영문학과 교수

글쓰기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고 그 열망을 향한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의 끝은 자신에게 보내는 어떤 것으로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함으로써 세상과 소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 무언가와 그 어떤 것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현시욕이 되어서도 안 되고 섣부른 넋두리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진정성과 성찰의 흔적이 없는 고백은 독백이자 넋두리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올해 응모작 대부분이 그렇게 독백에 가까운 넋두리였다. 취업, 가정불화, 성정체성 등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아내고자 하면서 과연 그것에 대한 현실감을 제대로 가지고 썼는지 의심스러웠다. 신기하게도 예년에 비해 비문이 많이 사라지고 문장력이 향상된 점은 고무적이었으나 직설적인 감정의 과잉, 표현의 과잉은 전혀 의미 충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문학작품을 읽는 가장 큰 덕목인 행간의 의미를 찾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다. 작 중 인물은 없고 글을 쓰는 사람이 그 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옆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공감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15편 중 5편을 골랐다. 「플라워 바이러스」는 발상은 신선한데 치기가 가시지 않고 소설로서의 구성력이 떨어져 아쉬웠다. 「얄궂음 스물네 번째 그 일주일」은 장황할 게 없는 이야기를 너무 세세하게 묘사하고 행간의 의미가 없는, 생각할 틈이 없는 이야기 이었다. 군데군데 좋은 표현들이 너무 장황한 이야기에 묻혀 살아나지 못했다. 「일상」은 제목 그대로 지친 일상을 그런대로 표현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녹여내야 소설이 된다는 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자살해 주셔야겠습니다.」는 문장력이 좋아 술술 읽히는 작품이었다. 암울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는 있으나 소설이기 보다 사회학 보고서에 가까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을 향하여」는 주제의식은 있는데 그렇게 관에 반하게 된 동기가 불투명해 설득력이 없고 무언가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이런류의 글을 쓰고 싶다면 카프카의 『변신』이나 『심판』이 왜 훌륭한 작품인지 되새겨 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작으로 선한 「유리벽」은 담담하면서 특별한 데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제목이 상징하는 유리벽 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쨍하게 와 닿는 맛을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드러내려고 꾸미지 않는 차분함이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우직함으로 믿고 당선작으로 했다. 응모자들 모두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쉽게 버리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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