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만인보 3부] 배우는 순간순간이 정말 행복하더라
[선거 만인보 3부] 배우는 순간순간이 정말 행복하더라
  • 이연정 기자
  • 승인 2015.04.02 17:29
  • 호수 2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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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대학교 캠퍼스라 하면 학생들 의 열정과 배움으로 가득한 곳 이라고 떠올린다. 대부분의 사 람들은 그러한 열정과 배움을 가진 학생들이 바로‘이십대 청 춘’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학생은‘이십대’도 아니고‘청춘’도 아닌 세 아이 의 엄마인‘만학도’였다. 대학은 스무 살이기 때문에 가야하는 곳이 아닌 ‘나 이제 공부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었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45세 박송미(가명)학생은 공부 할 수 있기에‘행복’하다고 말 했다.

누구 엄마, 누구 부인이 아닌 가 톨릭대 학생

박송미 학생은 스물 한 살 때 성당에서 교리 선생님 봉사를 시 작했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지 난 지금까지도 봉사는 여전히 현 재 진행형이다. 학위 없이 누구 의 엄마, 혹은 누구의 부인으로 서도‘선생님’이라 불리는 봉사 는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봉 사를 하더라도 무언가 알고 봉사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막연한 생각은 늦게라도‘공 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 또 학생이 되기 까지의 첫 발걸음을 떼게 해줬 다.

“아줌마로서 아이들을 키워봤 으니까 생활과학부가 나한테 잘 맞겠지, 싶었어요”학부 선택을 앞두고 박송미 학생은 스무 살의 자신을 떠올렸다. 비록 가난한 집안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지만 스무 살의 박송미는 어떤 학부를 선택했을까, 아마 잘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배우고 싶고, 하고 싶 은 학부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 지만 마흔 세 살의 박송미 학생 은‘배우고 싶은’학부 대신에 ‘잘 할 수 있는’학부를 선택했 다.

박송미 학생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들은 삶 속 에서‘엄마’로서 잘 했던 것들이 었다. 그저 나의 삶의 자리 안에 서 주어진 것들을 잘했을 뿐이었 다. 하지만‘성스러움의 의미’, ‘학문,인간,윤리’와 같은 철학적 인 수업을 들으며 느꼈다. 학문 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새로 배우는 수업시간 이 즐거웠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아 그래 이거야!’라는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끼기 도 했다.

만학도로서 학교 다니기란…

“만학도로서 학교 다니는 일,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에 요”박송미 학생은‘만학도’가 스무 살 때 대학을 포기하고 나 이가 꽤 찼을 때까지 대학에 다 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이라고 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미술학원 선생님도 잠깐 했었던 박송미 학생을 주위 사람들은 이 렇게 생각했다. ‘정말 많이 배운 사람이구나’, ‘대학을 나왔구 나’. 주위 사람들의 그런 시선은 오히려 박송미 학생을 움츠러들 게 했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자 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도록 만 들었다.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하 지 않을 테지만 주위의 시선들이 박송미 학생에겐 대학을 다니지 못한‘자격지심’으로 남았다. 하 지만 지금 박송미 학생은 자격지 심 대신 자신에게‘솔직’해지기 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스무 살 때 대학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톨릭대학교를 선택 했고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 로 남들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과 거대신,‘ 만학도’로서학교를다 니고 있는 현재의‘나’에게 솔직 해지기로 다짐하니 자랑스러웠 다. 이 학교를 선택하고 다닌다 는 것이.

엄마 학교 다녀올게

박송미 학생에겐“엄마 학교 다녀올게~”라고 말하면“네”라 고 답하는 15 개월 된 막둥이가 있다. 그리고 21살 큰 아이와 사 춘기인 18살 둘째 아이도 있다. 우리 아기가 허락해 줘서 학교에 왔다는 박송미 학생의 얼굴엔 포 근한‘엄마 미소’가 가득했다. 아 직 어린 막내아이 때문에 강의를 모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로 몰아넣었다. 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주말은 아이와 함께 시간 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월요일 시간표는 무려 7연강이다. 뒤늦 게 갖게 된 아이는 박송미 학생 의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끼리 더욱 돈독해 지도록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선물만큼 소중한 아니, 그보다 더 귀중한 막내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 딸까지 변화하게 만 들어 줬다. 박송미 학생이 1학년 때 둘째 딸은“나이 다 먹고 무슨 학교야”라며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를 마 치고 늦은 밤,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 의 모습에 딸은 말했다.“ 엄마 정 말 저희를 이렇게 키우셨어요?” 라고. 지금은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엄마의 학업을 응원해준다. 학기가 끝나고 성적이 나오면 박 송미 학생은 핸드폰에 뜬 성적을 캡처해 가족에게 보낸다. “한 학 기 동안 도와줘서 감사합니다”라 는 고마움이 담긴 말과 덧붙여 서.

특기가 공지사항 보기, 취미가 게 시판 보기

학생회는 학과 행사나 학부 행 사를 알리기 위해 학교 건물 곳곳 에 자보를 붙인다. 하지만 자보를 붙이기보단 행사를 알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SNS에서 많 은 학과 정보들이 공유 되지만 “아무래도 만학도는 SNS를 활발 하게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 공유에 있어서 둔한 편”이라며 경 영학과 서금희(가명) 학생이 불만 을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진행하 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들의 대부 분이 만학도들에게는 금시초문인 것들이 많다. 학교가 끝마치면 직 장이나 가정으로 가야하기 때문 에‘만학도 방’이 존재함에도 불 구하고 그들끼리도 교류가 활발 하지 않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 나 서야지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박 송미 학생의 특기와 취미는 입학 후에바뀌었다고한다“. 제특기가 공지사항 보기, 취미는 게시판 보 기예요”

‘만학도이기 때문에’라는 편견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시험 성 적 앞에선 서로를‘경쟁자’로 의 식하게 된다. 하물며 성적을 잘 받을 것이라는 편견을 받고 있는 만학도를 학생들은 어떻게 의식 하겠는가. 그러한 편견은 박송미 학생을 비롯한 다른 만학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A+를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수는 정해 져 있는데 만학도는 다른 학생들 과 함께 경쟁한다. “ 학생들은 학 점이 좋아야 취업이 되는 것 아 니냐, 내가 좋은 점수를 받을 때 누군가는 못 받는 거니까..”라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비췄 다. 박송미 학생은 수업 시작 전 에 종종 음료수를 뽑을 때 교수 님 생각이 나서 2개를 뽑는다. 점 수를 잘 받고 싶어서가 아닌 연 륜에서 나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의 예의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 동이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만 학도 동기는 그러지 말라고 했 다. 학생들이 혹시나‘점수 잘 받 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는 행동’ 으로 오해하면 어쩌나 싶어서 말 이다. 박송미 학생은 아이들과 ‘경쟁’하는 마음이 아니라‘교 감’하고 싶고‘공감’하고 싶은데 성적을 매길 때면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 같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용기가 필요한 20대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이 참 착 해”수업 도중 교수님께 종종 들 었던 말 중 하나다. 하지만 박송 미 학생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십 대 때는 무서운 게 없을 나이라 는 것이다. 덧붙여 지금 우리 사 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닌, 아 름다운‘척’하는 사회라고 덧붙 였다. 아름다운 척하는 사회에서 모든 어른들이 옳은 것만은 아니 라는 것을 박송미 학생은 어른으 로서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십 대라면,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 기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사 회에‘옳지 않다’라고 용기 내어 말하는 것.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 또한 삶의 연륜에서 깨달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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