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으로 관계 맺다: n[앤]
열린 마음으로 관계 맺다: n[앤]
  • 이계은 기자
  • 승인 2009.11.17 20:33
  • 호수 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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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대안언론 n[앤]을 만나다
     
  ▲성공회대 여성주의 저널 앤[n]과 중앙대 여성주의 교지 <녹지>  

  지난 해,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그의 블로그 ‘고재열의 독설닷컴’을 통해 대학언론이 ‘위기 상황’임을 고발했다(본지 190호 ‘선배들도 일어섰다, 대학언론도 일어나라’참조). 학교당국에 대한 비판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학보사 기자로 임명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자 총학생회 간부가 학보를 통째로 훔쳐가는 일도 있었다. 이것이 극단적인 예라면, 대부분의 대학신문은 ‘비판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언론과학연구 9권 3호(2009년 9월)에서 ‘정체성 위기의 국내 대학신문’을 주제로 국내 6개 대학신문을 선정해 기사유형과 보도주제 및 지면구성을 살펴본 결과 “단신형 기사를 중심으로 홍보성 기사 또는 흥미 위주의 기사에 치중”하는 특성이 발견되었음을 지적했다.
 대학신문이 학교당국으로부터 재정적 독립을 시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당국 혹은 총학생회에 신문 운영자금을 의존하는 한, 앞으로도 편집권이 침해받기 쉬운 상태에 놓일 것이다. 다양한 실험과 실천적 지성의 역할을 담당해야할 대학언론이 그 방향성을 잃고 학교 홍보기관지로 전락하고 있다.

 재정적 독립 - 변화와 상상력의 매체
 이러한 대학언론에 일침을 가하는‘대안’매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7호부터 학교부속기구에서 자치기구로 이행해 자치언론으로 변모한 <성균지>, 성공회대 여성주의 저널 <n[앤]>, 서울대학교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 등, 대학 내 대안언론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언론들을‘하나로’묶을 수 있는 기준은 학교당국에 대한 재정적 독립을 시도한 자치언론이며, 광고를 싣지 않는 비영리적 언론이라는 특징이다. 이들이 자치언론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학교 당국을 비롯한 여러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다.
 그 중 성공회대 여성저널 <n[앤]>은 창간 2007년 이후, 내년 1~2월을 목표로 4호를 준비 중이다. 지난 14일(토), 성공회대에서 n[앤]을 만나보았다. 찾아간 당시 그들은 4호 기획회의를 마친 후였다. 네 명이 n[앤]의 이름으로 모이게 된 사정은‘n개의 페미니즘’처럼 각기 다르다. 장유미씨는 성공회대 학생이 아니며, 독자로 지켜보다가 올해 여름에 합류했다. 귄은 대학 여성주의에 관한 다큐를 제작하다가 참여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는 슬슬은 자신을‘농촌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여성주의’라는 관심사 아래, 각자의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여성주의를 드러낸다.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다양한 방식을 강구한다. 앤의 글은 내밀하다. 취재나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쓰기보다, 평소 여성주의 경험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뱉는다. 남성 중심의 구조를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비판하고 욕구에 맞는 활동을 하며 일상에서의 여성주의를 실천한다는 그녀들이다. 상처, 소외, 외로움…,이것을 글로 표현하면 의미가 된다.

 내면을 터놓는 글쓰기 방식은 타인의 마음도 울린다.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억압과 차별을 일깨운다. 일상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글쓰기는 나만의 것인 동시에, 한편으로 굉장히 정치적인 의미 지닌다. 나의 여성주의와 너의 여성주의가 만나기를 희망하고, 만나서 이뤄지는 기적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창간호부터 지금(3호)까지 다룬 담론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다. 예비역들이 대학에서 활개를 치고, 그들을 우대해 주는 학교분위기에서 다루게 된 학내 군사주의 문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데이트 성폭력, 일대일 사랑은‘강요’받은 것임에 불과하다는‘다자사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관심사는 일상과 멀지 않다.

이모? ‘가족’을 빙자한 폭력이다!
학내 여성주의와 같은 구체적인 사안을 대할 때, n[앤]은 정면에 나서지 않는다. 예전에는 총여학생회 설립 등, 목표를 위한 담론과 방법이 존재했다면 현재는 운동방식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집중하고자 한다. 개인이 느끼는 여성주의에 천착하고, 이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견지한다. 가끔 학생회 단위에서 ‘생리공결제’나 ‘성폭력방지규약’에 대한 자문이 들어올 때 조언이나 논의에 참여하는 정도의 선을 유지하고 있다.

n[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내 문제는 일명 ‘이모 논쟁’, 학내 식당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호칭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무려 7일 간 총학생회에게 비판을 제기했다고 한다. “총학생회가 학교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쉼터’를 만들고자 했어요. 서명운동 등을 벌였는데 그 구호가 “시급 4500원, 비정규직 식당 이모의 노동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나 이모는 가족 안에서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여교수를‘이모’라고 호칭하지는 않잖아요? ‘이모논쟁’은 서비스업 중년 여성 종사자들을 존중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소통,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기
1년에 두 번의 저널을 발행하는 데에 필요한 재정 확보도 그들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창간 준비호 부터 총 세권을 내기까지의 비용은 모두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매 호마다 좋은 글을 모으고 독자 참여행사를 여는 것 외에도 재정확보 문제는 중요하기에 고정된 수입이 없는 자치언론 입장에서는 많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고정적인 재정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기회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n[앤]은 저널출판 이외에도 독자를 만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독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수다회’를 열었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에 대한 토론회 등은 잠재적 독자들이 무겁고,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사회운동은 어렵습니다. 구호로 가득한 전단지를 볼 때마다 갑갑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재미가 필요합니다. n[앤]은 다르게 가고자 합니다. 수다회는 독자들이 모여서 말 그대로 주제에 대한 ‘수다’를 떠는 행사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아도 좋습니다. 실제로 독자들이 이 행사를 통해 많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내면의 것들을 발산하면서 서로의 여성주의가 만날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세미나, 수다회, 영화상영회, 회원제도, 독자모임, 청탁 확대를 통해 독자 또한 n[앤]에 대한 공모의식을 형성해왔다. 기성언론이 ‘지면’으로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했다면, 앤의 방식은 ‘탈중심화’를 시도하여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실천적인 공동 실험의 공간으로.
n[앤]은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다른 프레임으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재 질문을 거듭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다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고, 여성주의의 핵심이다.

대안언론은 현재 힘든 상황이다. n[앤]은 재정난에 대한 압박은 둘째 치고, 편집위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앙대 여성주의 교지 <녹지>는 학교당국에 의한 타 교지와의 통폐합의 가능성으로 위기를 겪고 있고, 일부 대안언론은 재정난으로 인해 사비를 털어 운영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뚜렷한 목표를 잃지 않는다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은 오늘도 좁게는 학내, 넓게는 사회 지배권력 체체에 균열을 가하는 중이다. 더욱 단단해지길 바란다.

 

▲ 앤[n]의 편집위원. 왼쪽부터 장유미, 다해, 귄, 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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