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당선) - 새벽, 운행, 비행기
소설(당선) - 새벽, 운행, 비행기
  • 배다솜(국어국문‧4)
  • 승인 2015.12.02 20:20
  • 호수 2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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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대문화상]
비행기.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을 짓이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저 멀리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밤에 뜨는 보름달 정도의 크기인 데다 평소 자주 보기 때문에 그렇게 신기할 것도,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가끔 비행기가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 사는 친구들이 이 동네에 놀러 와서 ‘신기하다’, ‘안 무서우냐.’ 라고 하면 낯선 것에 익숙한 나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들었다가도, 동시에 이 광경을 낯설어할 수 있는 이들에게 느낄 수 있는 열등감이 들었다. 하지만 새벽의 비행기는 달랐다. 새벽에 다니는 비행기는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단 새벽의 비행기를 보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 부터였다. 그전에는 볼 일이 없었다. 일이 없으면 항상 밤 열 시에 잤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났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죄처럼 여겨졌던 고등학교 삼 학년 때도 밤 열 시만 되면 자리에 누웠다.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학교에 들어가려고 계획에도 없던 전문계고를 들어간 나였다.

어떠한 심경의 변화에도 어김없이 왔던 잠은 전역을 명받은 후부터 좀처럼 오지 않았다. 따듯한 우유니 상추니 하는 잠을 부른다고 알려진 음식들을 먹어보고 약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술에도 의존해봤는데 술이 깨면 잠도 깼고, 둘 다 깨고 나면 머리가 너무 아파 더 괴롭기만 했다. 차라리 잠도 오지 않는데 야간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하여 편의점에 나가봤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편의점은 컵라면을 사러 갈 때나 가게 되었다.

나는 편의점 일을 그만둔 후, 새벽에 컵라면 하나를 사 먹고 아침에 가족들이 다 나가면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청소를 다 하면 TV를 보다가 두 시간 자고 한 시간 깨어있기를 반복하다 저녁이 되어 가족들이 들어오면 방에 틀어박히는 일상을 이어갔다. 이러한 일상을 이어나가면서 알게 된 것이 바로 ‘새벽 비행기’였다.

새벽에 컵라면을 사러 나가는 것이 일주일 째 이어졌을 때였다. 컵라면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집 앞에 도착하니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든 나는 깜짝 놀랐다. 빨간 불빛과 파란 불빛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비행기의 몸체가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천천히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언젠가 봤던 외계인이 나오는 SF 영화가 생각났었다. 외계인이 비행선을 타고 지구에 와서 지구인을 납치하던 영화였는데, 요란한 빛을 두른 비행선이 천천히 내려와 밤에 혼자 다니는 지구인을 납치하던 장면이 유명했었다. 실제로 나를 납치할 만큼 비행기가 낮게 날고 있지는 않았지만, 크기만 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혹시 납치되는 게 아닐까 하면서 새벽의 비행기가 다 지나갈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납치는 안 됐지만 컵라면을 사러 가면서 일주일에 두 번은 그 새벽의 비행기와 마주쳐야 했다.

오늘도 새벽의 비행기와 마주쳤다. 한 달 동안 마주쳤지만, 적응이 되지 않아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해가 뜨지 않아 채도가 낮은 밤하늘과 원색으로 번쩍이는 비행기의 불빛이 선명하게 대조되었다. 그런 대조 또한 새벽의 비행기를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야.”

갑자기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비행기가 내는 소음에 섞여 들렸다. 여자 목소리 같았다.

“야, 여기서 뭐 해?”

나를 불렀던 여자는 비행기 소음을 이겨보려는지 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았다. ‘단이’였다.

“좀만 잔다.”

‘단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새벽에 나타나 집으로 불쑥 따라 들어온 단이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단이는 얼마 안 가 잠이 들었다. 곧 있으면 가족들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물론 가족들이 내 방문을 열일은 없었지만, 괜히 불안했다. 현관문 앞에 놓인 단이의 주황색 운동화가 회색, 검은색, 흰색 운동화들 사이에서 너무 튈 것 같았고 만약 그것을 눈치 없고 목소리 줄일 줄 모르는 여동생이 발견해서 가족들이 그 운동화를 다 보게 된다면 분명 가족들의 시선은 내 방에 꽂힐 것이었다.

나는 집에 여자를 끌어들였네 마네 하는 비난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여자를 데려와도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간식거리를 좀 사 와서 나에게 내밀거나 ‘저녁 먹고 가라 해’ 라고 한 뒤 예정에 없던 고기반찬을 하는 정도로만 신경을 썼다. 그것은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변함이 없었다. 변한 것은 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집에 여자를 데려오지 않았다. 밖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 뒤에 나 혼자 들어왔다. 그만큼 돈을 벌었기도 했지만 집에 여자를 데려가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 부모님이 써주는 약간의 신경조차 감당이 안 돼서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전역을 하고 나서는 여자를 일절 만나지 않았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아니 내가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저 방에만 숨어있으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단이가 집에 들어와 있는 것을 가족들에게, 그것도 부모님에게 들킨다면 여태 두 달 동안 가족들의 의식에서 지워냈던 나의 존재가 다시 떠오를 것 같아 불안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 앞으로 나가 단이의 운동화를 집어왔다.

가족들이 다 나간 후에도 단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족들이 내는 물소리나 말소리가 꽤 소란스러웠는데도 단이는 잘 잤다. 나는 잠든 단이를 놔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잠귀 어두운 단이지만 혹시 몰라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걸레질만 했다. 나는 거실과 부모님 안방, 심하게 어질러져있는 여동생방, 물건이 없어 어딘가 휑한 느낌이 드는 누나 방을 다 청소하고 나서,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빈 컵라면 용기만 버리면 내방은 그렇게 치울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괜히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다 꺼내서 다시 크기별로 혹은 장르별로 재배치하고는 했다.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고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는 단이의 얼굴을 수시로 살피면서 책을 정리해나갔다. 단이 얼굴 한 번 보고 책 하나를 꽂고, 단이 얼굴 한 번 보고 열을 맞추고, 그러다 다시 한 번 단이 얼굴을 보는데 단이의 오른쪽 눈가 아래에 일 센 치정도 빨갛게 상처가 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선뜩했다가 연민을 느꼈다. 나는 손을 뻗어 단이의 상처를 확인했다. 겉에 배어 나온 피가 굳어 살짝 거친 느낌의 상처와 함께 상처 주변의 부드러운 피부가 만져졌다. 단이의 피부는 여전히 좋았다.

단이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이십 분정도 걸리는,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애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단이와 나는 친해질 수 있었다. 방향이 같지 않았으면 같은 학교였어도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실제로 단이와 나는 학교를 다니는 삼 년 내내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고 동아리도 서로 달랐다. 그냥 지나다니면서 낯만 익은 채 졸업할 사이였을 지도 몰랐다.

나는 동네 근처의 전문계고로 진학했지만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애들을 찾기가 어려웠었다. 비행기가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애들이랑 같이 떠들고 웃고 했지만 집에 갈 때는 혼자 갔다. 동네 근처라지만 걸어서는 이십분이었다. 엠피쓰리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가도 참 지루했다. 그렇게 지루한 하교를 한지 일 년 째 되었을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네 번 정도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리고 또 두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 다음 건너야할 세 번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옆에 같은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눈에 띄었다. 층도 안 친 새까만 단발머리에 긴 눈을 가진 여자애였다. 명찰을 보니 초록색이었다. 초록색이면 이학년.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설마 같은 동네인가 하고 유심히 보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여자애는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멀뚱히 서있는 여자애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여자애의 눈은 하늘에 가있었다.

비행기.

나는 음악을 듣느라 비행기의 소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어폰을 빼니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여자애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비행기를 쳐다보았다.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비행기 좋아해?”

나는 여자애의 어깨를 톡 건드리며 말을 건넸다.

“아니, 싫어, 엄청.”

여자애는 신호등에 시선을 두며 대답했다. 단이와는 그렇게 만났다.

일러스트_문찬희

**

단이는 방 안에 둔 자기 운동화를 집어 들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해할 수도 있어서 그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이게 더 오해하겠다.”

단이는 투덜대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간 단이는 냉장고를 열어보고, 냉동고도 열어보고, 찬장도 한 번 열어 보더니,

“야, 먹을 게 하나도 없네.”

하고 소리쳤다.

“왜, 밑반찬들 많을 텐데.”

나도 똑같이 냉장고와 냉동고와 찬장을 열어봤다. 오랜만에 열어봤는데 생각보다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돼지고기 사와, 고추장찌개 해줄게.”

단이는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왼쪽 손목에 백 원짜리 동전만한 푸른 멍이 보였다. 다시금 가슴이 선뜩해졌다. 나는 단이의 손목에서 시선을 치워버렸다.

“이러고 나가라고?”

내말을 들은 단이가 허, 하고 웃었다.

“좀 씻고 나가든지 하지 않겠니.”

결국 돼지고기를 사기 위해 샤워와 면도를 하고 나왔다. 대낮에 밖을 나와 보는 것은 정말 한 달 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나와 보는 동네를 구경할 마음이 없었다. 사람과 상가가 적은 골목들을 통해 옆 동네 정육점으로 갔다.

동네 ‘토박이’는 길 가다 아는 사람과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아는 척을 하면서 형식적인 안부를 묻고 간혹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넌지시 물어보는, 그런 ‘동네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랑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궁금해 할지가 무서웠다. 그리고 단이가 꼭, 꼭 그 정육점을 가라고 당부했었다. 돼지고기 상태나 가격이 제일 낫다고.

단이는 이런 내 상황을 알고서 나를 내보낸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단이는 그렇게 영악하지 못했고 살짝 무심한 경향도 있었다. 그리고 단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가 ‘고추장찌개’였다. 레시피를 알아왔다고 고기와 채소를 사들고 와서 서툴게 찌개를 끓였던 단이와 ‘이거 제육볶음이지?’ 하고 놀리면서도 퍼먹던 여동생이 생각났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고추장찌개가 오랜만에 먹고 싶었다. 고기를 산 뒤 걸음을 빨리 하면서 가는데 어느 골목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옆 동네 사람들인 것 같았다, 가게를 보다 나온 듯 한 사람들도 있었고 집에서 바로 나온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빼보면서 수근 거렸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그 웅성거림 속에서 ‘시체’ 라는 말이 튀어 나오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골목 입구에 가까이 가서 보니 어딘가 익숙한 골목이었다. 단층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끝에는 시멘트로 바른 계단이 보이는 골목. 왜 이 풍경이 익숙한 지 생각해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앞치마를 두른 통통한 여자가 뛰어왔다. 여자의 어깨너머로는 두 대의 경찰차와 ‘KCSI’라고 쓰여 있는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고 무전기를 든 순경들이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 집이네 그 집!”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통통한 여자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보고 온 것을 흥분한 채로 전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여자의 얼굴은 점점 더 번들거렸다. 여자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다 주워듣지는 못 했지만 ‘ 부녀가 사는 집’, ‘피’, ‘도망’ ‘그집 딸’ ‘폭력’ 정도의 단어들은 들을 수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시선을 던지며 온갖 추측을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걸음을 옮겼다.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옮기면서도 귀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을 헤집었다.

단이는 점심을 먹고 거실에 누웠다. 그 옆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은 나는 식곤증에 허덕였다. 졸음이 왔지만 왠지 잘 수 없었다. 단이가 신경 쓰였다. 단이 자체가 불편한 것은 아니었는데 단이가 이렇게 거실에 늘어져있을 때 가족들이 불시에 들어올까 걱정이었다. 특히 엄마와 여동생은 퇴근시간이 들쑥날쑥 할 때가 많아서 최근에도 거실에 있다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다.

“자?”

단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 빨간 실핏줄이 꽤 많이 비쳤다.

“잘 지냈어?”

나는 한참 전에 했어야 할 말을 했다. 단이는 몇 번 눈을 깜빡이다 다시 돌아누우면서

“아니, 넌?”

라고 대꾸했다. 나는 단이의 허리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몇 가닥 만지면서,

“나도 별로.”

라고 대답했다. 4년 만에 주고받는 안부는 참 싱거웠다. 그리고 안부를 주고 받고나니 그 전까지 어제 만난 친구처럼 편했던 단이가 약간 어색해졌다. 단이도 마찬가지인지 말이 없어졌다. 그저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계속 주무를 뿐이었다.

“너네 동네에 사람 죽은 거 아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나온 게 하필이면 살인 사건이었다. 단이는 손목 주무르는 것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죽었다고?”

“응, 머리에 뭘 맞고 죽었다는데. 누가 때려 죽였나봐.”

나는 누가 누구에게 고백해서 사귀게 되었다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랑 달리 그 동네 원래 좀 그래.”

단이는 나보다 더 가볍게, 그리고 건조하게 이야기하면서

“비행기 지나다니는 동네가 그렇지 뭐.”

라고 덧붙였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단이는 ‘토박이’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옆 동네로 이사를 왔었다. 단이는 학교를 멀리 다니기 힘들어서 아예 이사했다고 학교 애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월세가 싼 곳을 찾다가 이리로 온 것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오는 애들은 나와 단이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와 단이만은 그것이 그렇게 부러워 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단이는 이사 온 동네를 무척 싫어했다. 치안도 안 좋고, 교통편도 이상하고, 볼거리도 없고, 그나마 볼거리라고는 시끄러운 비행기이고, 삭막하게 집들이랑 건물들만 있다고 투덜댔다. 실제로 단이가 이사한 동네가 그런 동네이기도 했지만 단이가 정말로 싫어한 것은 이사한 ‘동네’가 아니라 이사를 하고 나서의 ‘집’이었다.

단이와 하굣길 친구를 맺은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였다. 단이가 당분간 같이 집에 가지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밤 아홉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난 알았다고 하고 혼자 집에 가서 있다가, 단이가 나올 시간에 맞춰 학교로 다시 갔다. 정문 앞에 서있으니 저 멀리서 나를 본 단이가 뛰어왔다. 단이는 자신이 둘렀던 하얀 목도리를 나에게 둘러주었고 나는 조용히 차가워진 단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서로 말이 없었던 20분이 지났다. 나는 단이가 둘러줬던 목도리를 단이에게 둘러줬고 단이는 집 대문 앞에 섰다. 나는 단이에게 인사하고 뒤를 돌아 걷다가 대문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단이는 열쇠를 꺼내는 대신 대문에 귀를 대고 서 있었다. 나는 단이가 정확히 삼십분 뒤에 집에 들어가는 것을 멀리서 보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아마 그 날이 단이와의 연애가 시작된 날이자, 단이가 그 동네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된 날이었다.

***

단이는 내 성화에 못 이겨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 남아있는 단이의 흔적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조금 있으면 여동생이 올 시간이었다.

“너 우렁각시냐? 집안일만 하고 쏙 숨어있고”

단이는 다 치우고 들어온 나를 보고 쏘아 붙였다. ‘그러는 너는 왜 우리 집에 와서 이러느냐’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연애할 때는 이 집에 거의 살다 시피 하던 단이라서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이에게 쏘아붙일 다른 말을 찾아봐야 했다.

“넌 얼굴이 왜 그래.”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보다 더 부질없는 말이었다. 단이의 집 상황이 좀 달라졌다면 모를까. 그래도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바뀌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슬그머니 들었지만,

“늘 똑같지 뭐.”

라고 하는 단이의 말이 그 기대를 잘라먹었다. 나는 화제를 전환하려고 다른 이야깃거리를 생각해보았다. 단이의 대학생활, 나의 직장생활, 동창, 군대, 연애. 이야깃거리야 사실 많았지만 그 이야깃거리들이 이 분위기를 살릴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사람 죽은 거,”

나는 또 무심코 살인사건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단이가 눈에 살을 모았다.

“그 집도 부녀가 살고 있었다는데.”

“원래 그 동네 한 부모 가정 많아. 왜, 딸이 지 아빠한테 맞아 죽었나보지?”

“아니, 그 반대.”

단이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 단이는 당황하거나 놀라면 입을 살짝 벌리는 버릇이 있었다.

“너희 집 골목이었는데 아는 거 없어?”

“몰라”

“너 여기로 이사 온지 6년은 되지 않았어?”

“왜 자꾸 좋지도 않은 얘기 자꾸 꺼내고 그래?”

단이는 짜증이 확 올라왔는지 머리를 짚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닌 거 아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걸까 얘는. 그러고 보니 그 집도 딸이 아버지에게 맞고 살았다고 했던 것 같다.

“뭐 그 집도…”

나는 하던 말은 다 끝내야 더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 안 할 것 같아 마저 이야기를 하려는데, 단이가 갑자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면서 방문 문고리를 잡았다.

“야…!”

나는 당황해서 단이에게 소리쳤다. 거실에는 가족들이 티비를 보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내 목소리는 비행기 소리에 섞여버렸고, 단이는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주변 아줌마들한테 자랑할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나의 성적이었다. 물론 그 자랑거리에는 투자가 있었다. 그 투자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새벽 두시에 자서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다. 엄마가 등록한 학원을 쭉 돌고나서 집에 오면 밤 열한시였고, 학교와 학원과 엄마가 내준 숙제들을 다 하고 나면 한시가 넘어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가기 전에 오늘 배울 것들을 예습해야 했고 그렇게 할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당시에 수험생이었던 누나도 혀를 내두르는 일상이었다.

전교 10등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 성적은 엄마의 욕심을 자꾸만 부채질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쉽게 오르내리지만 들어가기는 결코 쉽지 않은 ‘명문대’를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동네를 벗어나게 해줄 것 같은 아들의 존재는 엄마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희망의 뒷면은 부담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희망만큼 나의 부담은 커져갔고 나중엔 일상이 너무 지쳐서 부담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잠을 실컷 잤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친 만큼 성적도 조금씩 내려왔는데 엄마는 그것을 보고 보약이나 영양제를 사 먹일 뿐 이었다. 결국 나는 주저 앉아버렸다.

방문을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 의자니 상자니 하는 것들을 문 앞에 쌓았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었을 때였다. 엄마는 처음엔 화를 내며 겁을 주었다가 나중엔 울면서 애원했다. 나는 겁이 났다가 연민이 들었다가 했지만 절대 문을 열지 않고,

“내가 알아서 하게 좀 냅둬!”

라고 소리치기만 했다. 이런 나를 방에서 꺼낸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문 앞‘서 조용히 정말 알아서 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알았다’라고 했고 그 이후로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 엄마는 한동안 나를 설득하다가 이내 무심한 엄마가 되었다. 학원에 안 가서 좋았고 잠을 많이 자서 좋았고 무서워하던 엄마를 이긴 것 같아 좋았다. 고등학교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나는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라는 말에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나서였다. 단이가 옆에서 수능 성적표를 들고 울고 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수능 성적표를 보고 있었다. 단이 성적표에는 있는 1,2,3이란 숫자가 내 성적표에는 없었다. 그래도 뭐 어디든 가겠지. 단이가 학교에서 대학교에 대해 상담 받을 때 나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보았다. 내 성적표를 본 담임선생님은 재수도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걸로는 취업 잘 되는 전문대학도 어렵다고. 그러면 취업은 어떨까요? 라고 물었다. 담임선생님은 대학을 물어 볼 때 보다 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대학가는 것 보다 내신이 더 좋아야 취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나는 초조해졌다. 한동안 못 느꼈던 초조함이었다. 단이가 입버릇처럼 말해서 넘겨버렸던 ‘9급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라는 말이 생각났고 알아서 잘 하고 있겠거니 하고 믿고 있는 아버지와, 애써 나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쫓기듯이 구인광고 사이트를 뒤졌고 학력무관, 경력무관에 주 6일로 나가야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뒤로는 초조함이 좀 없어졌는데 그것은 일 년도 가지 않았다. 영장이 나왔고 입대를 하게 되었고 내가 하는 일은 복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해’ 라는 말의 무게는 전역하고 나니 훨씬 무거워져 있었고 나는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가족들을 피했다.

“안녕하세요.”

거실로 나간 단이는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와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에게 배꼽인사를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인사에 답하지 않고 빤히 단이를 쳐다봤다.

“어, 단이언니.”

팩을 하고 있던 여동생이 일어나 단이를 알아봤다. 여동생이 아는 체를 하자 그제야 아버지와 엄마는 단이에게 잘 지냈느냐고 했다. 나는 방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서 부모님과 여동생이 단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바라봤다.

“방아, 너 단이 밥은 먹였니?”

“아…네”

엄마가 갑작스레 말을 걸자 나도 모르게 쓰지도 않던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엄마는 나를 한 번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쟤 방에서 자고 가도 되겠니? 방을 치우는 건지…”

“방아, 너 방은 치우고 단이 들여보냈냐?”

이번엔 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식은땀이 났다. 아버지와 엄마의 시선이 다시 단이에게로 갔을 때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단이는 아예 자리를 잡고 가족들이랑 이야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누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단이를 참 좋아했다. 단이도 누나를 제외한 가족들을 참 좋아했다. 아버지는 단이가 순하고 예쁘장한 것 같다고 좋아했고 엄마는 공부를 잘 해서 좋아했고 여동생은 자신을 무시하지 않아서 좋아했다. 단이도 자기 집에서 얻지 못하는 안정감을 내 가족에게서 얻을 수 있어서 좋아했다. 누나는 단이가 어딘가 어두워보여서 싫다고 했다. 단이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누나가 오면 살짝 얼어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게 돼서 싫다고 했다. 뭐 누나를 제외하면 단이는 우리 집에 잘 어울렸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저렇게 화기애애한 것을 보니 새삼 나와 단이가 일 년 정도 연애를 했었고 그리고 헤어졌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 연애에서 가족들을 빼놓을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이는 한참 후에나 내 방에 들어왔다. 볼이 살짝 빨개진 채 살짝 비틀거렸다. 술까지 얻어 마신 모양이었다. 옆에 누운 단이의 숨에서 살짝 술 냄새가 났다.

“우렁각시다.”

단이는 내 콧등을 톡톡 치며 물었다.

“아니지, 실직자야.”

“좀 있으면 나도.”

단이는 홱 돌아누웠다,

“사람이 죽었다고?”

“자라.”

나는 단이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죽일 수도 있지!”

단이는 덮어준 이불을 제끼며 일어났다.

“맞다 보면 그런 생각은 수없이 든다고!”

단이는 자신을 변호하는 건지 아니면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간 딸을 변호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투로 외쳤다.

“왜 같이 사는 사람에게 그걸 푸는 거야”

단이는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나는 단이를 껴안고 달랬다.

“미안해, 우리 자자 이제.”

내가 등을 쓰다듬자 단이는 얌전해졌다. 졸음이 오는지 눈도 살짝 살짝 감겼다. 나는 단이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옆에 누웠다.

“비행기 때문이야, 비행기.”

단이는 눈을 감은 채 웅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애를 재우듯이 단이의 배를 토닥여줬다. 좀 있으니 단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단이에게 집을 아예 나온 건지, 여기엔 언제까지 있을 건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또, 왜 그렇게 단이가 그 살인사건에 대해 예민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물어볼 수 없었다. 단이는 불면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 부문 당선 수상소감_배다솜(국어국문‧4)

날이 추워졌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을 때도 날이 추웠습니다. 시려오는 손끝을 다잡으며 소설을 쓰던 그 일 년 전은 저에게 너무 힘든 시기였습니다. 집안 사정, 학교생활, 개인의 정신상태 모든 것이 힘들어서 다 놓아버리고 싶었고, 그럴 수 없어 잠을 이루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작년을 떠올리니 한 가지 의문이 드네요. 왜 하필 그때 소설을 썼을까.

아버지와 새벽기도를 가다가 마주한 낮게 나는 비행기, 경찰차와 과학수사대 마크가 붙은 차와 고독사로 죽은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던 시장 반찬가게 아주머니, 말도 없이 절 기다렸던 아이. 좋았던, 무서웠던, 씁쓸했던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도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는데 왜 소설을 썼을까요.

왜 소설을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설을 다 쓰고서 후련함과 그 뿌듯함, 약간의 부끄러움은 기억이 납니다. 다 쓴 소설을 남들에게 보일 때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도요. 이것은 처음 소설을 썼던 고등학교 2학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느꼈던 것들 때문에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문예창작수업을 통해 문학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날계란’이라는 부족했던 제 작품 문학계간지 대학생교실에 추천해주시고 귀한 시간 내어 첨삭해주셨던 류양선 선생님, 소설에 대해 조언과 비평을 아끼지 않았던 문예창작 소모임 ‘만끽’ 선배들, 이 소설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이야기해주셨던 이재웅 작가님, 너는 글을 쓰는 재주가 있다고 항상 응원해주는 은솔이, 이 소설을 보고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었다는 영현이와 이 소설은 당선될 것 같다고 했던 태원 오빠, 소설을 읽어보고 나서는 저 멀리 비행기만 보면 놀려대던 우리 돔이, 그리고 글을 쓰는 저를 가장 좋아해 주는 아빠.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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