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당선) - 진짜가족
수필(당선) - 진짜가족
  • 장재란(사회‧4)
  • 승인 2015.12.02 20:28
  • 호수 2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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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대문화상]
페인트칠이 다 떨어져 푸르뎅뎅해진 철이 흉측하게 드러나 있었다. 끼익- 철 대문을 만지고 싶지 않은지, 손가락 끝으로 겨우 밀어내고 그 앞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철대문 안으로 이어진 좁은 통로를 한참 살펴보던 가현은 그제야 안도했다. 적어도 바퀴벌레나 쥐를 지금은 마주치지 않아도 됐다. 몇 걸음 떼지 않아 가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가현은 시선을 뺏겼다. 빛이 닿을 수 없는 곳. 계단 아래로 갈수록 검은색을 더해가는 곳. 습하고 퀴퀴한 곰팡이냄새를 풍기는 지하 방이었다. 가현은 지하 방에서 시선을 떼고 서둘러 이층집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이 지하 방에 시선을 뺏길 여유가 없었다. ‘새 식구’가 오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는 길, 희한하게 아이의 거센 울음소리가 들렸다. 쇠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더해, 악에 받친 듯한 울음소리였다. 가현이 2층 집으로 발걸음을 뗄수록 그 울음소리는 가까워졌다. ‘어느 집에서 애를 또 팼나?’ 다닥다닥 틈 없이 붙어 있는 주택 집을 바라보는 가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소리는 가현의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가현은 갸웃했다. ‘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는 더 거세졌다. 귀가 얼얼하다 못해 따가울 정도였다. 가현은 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긴 머리카락을 삐죽하게 세운 아기가 양손을 꽉 쥐곤 발버둥 치며 울고 있었다. 가현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기가 어떻게 저렇게 악에 받쳐 울 수 있을까,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급히 방을 나와 가현의 엄마를 찾았다. 낡은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여성은 집이 떠나갈 듯 우는 소리에도 태연하게 화장실에서 나왔다. 가현은 덥석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그녀는 자신을 잡는 손길에 놀란 듯 돌아봤다. “엄마, 쟤 뭐야! 왜 저렇게 우는 거야?” 아기의 울음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가현은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데려오고 조금 자라고 눕혔더니 울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안아주면 안 울까 싶어서 업었는데도 계속 우는거야. 아이고,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 게다가 얼마나 버둥거리는지 안고 있는 것도 힘들고… 저렇게 울다가 지치면 자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아기가 울고 있는 방을 쳐다보지 않았다. 애써 아기가 우는 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듯, 엄마는 주방으로 향했다. 빤히 엄마를 바라보던 가현은 아기의 얼굴이 궁금했다. 불쑥 쏟은 호기심에 가현은 냅다 방으로 달렸다. 계속 울어서 그런지 아기의 얼굴은 통통 부어있었다. 그 덕에 눈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생김새만 봐선 쭉 찢어져 있는 눈꼬리가 퍽 사납다는 인상만 풍겼다. 분명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 거 같은데 머리카락은 참 길다. 드래곤 볼에 나오는 주인공의 머리와 닮았다. 삐죽삐죽 선 긴 머리털이 그저 신기했다. 긴 머리카락 때문인지 아기의 머리가 유독 커 보였다. 콧대라곤 없이, 콧구멍 두 개가 뻥 뚫려 있었다.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니 헛웃음만 났다.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고 했던가,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그 말은 틀렸다. 10분 동안 자세히 들여다봤는데도 아기는, 너무 못생겼다. 킹콩! 마치 화난 킹콩을 닮았다. “아기한테 이런 말 미안한데, 너 되게 험상궂게 생겼다.”

아기의 울음시위는 40분가량 넘어서야 끝났다. 점점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아기는 캑캑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기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는지 엄마는 보리차 물을 미지근하게 데워 젖병에 담아왔다. 버둥거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울고 있는 아기에게 보리차 젖병을 조심스레 물려줬다. 엄마의 손끝에서 아기에 대한 걱정이 묻어났다. 아기는 젖병을 물지 않으려는 듯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피하고 혀로 있는 힘껏 젖병을 밀어냈다. 엄마는 아기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호의를 받을 줄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다. 서서히 화가 치민 엄마는 아이에게 억지로 보리차를 먹였다. ‘꼴깍꼴깍’ 울음소리 중간중간 보리차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아기는 있는 힘껏 젖병과 보리차를 뱉어버렸다. 둥근 뺨으로 보리차가 흘러내렸다. 엄마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아기의 눈동자는 마치 ‘퉤! 당신이 주는 보리차 따위 먹지 않아!’라고 외치는 듯 했다. 엄마는 결국 뚜껑이 열렸다.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다 있어!” 엄마의 고함에 가현은 눈이 똥그래졌다. 엄마가 소리지른 것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엄마, 이 아기 여자였어?” 한참을 아기 생김새를 관찰했던 가현은 아기가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가현은 ‘아기’에 대한 환상이 모두 깨졌다. 아기라고 모두 예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기라고 다 순수한 것도 아니다. 킹콩을 닮은 아기 정은이를 보면 그랬다.

일러스트_윤유림

정은이는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라고 했다. 가혹한 말로 바꾸자면 ‘버려진 아기’였다. 정은이가 정식 가족에게 입양될 때까지 임시로 보호하며 돌봐주는 ‘대리 가족’으로 정은이와 가현의 가족은 만났다. 물론 정은이를 돌봐주면서 발생하는 분윳값, 젖병, 아기 옷 등 아기 물품은 입양단체에서 지원했다. 굳이 가현이의 가족이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추가로 가족에게 돌아가는 수고비 때문이었다. 얼마 전, 엄마는 심한 병치레 이후 식당 일을 못 하게 됐다. 그 덕에 집에서 일할 게 없을까 궁리하던 엄마가 찾은 일거리였다. 그런데 이 아기는 도저히 그 돈 받고 돌볼 아기가 아니었다. 보리차는 잘 먹다가도 뱉어내서 옷을 다 버려놓았다. 그나마 분유는 타 줘도 잘 먹지 않았다. 분유를 안 먹는 아기는 또 처음 봤다고 엄마는 혀를 찼다. 잘 대해주면 한 번쯤 웃어줄 만도 한데, 정은이는 울기만 할 뿐 도통 웃질 않았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을 정은이의 시위로 받아들였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안달 난 아기’라며 엄마는 매일 말 못하는 정은이와 싸웠다. (엄마의 표현을 따라)’고약한 심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통에 가족들은 미칠 것만 같았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을 때는 속에서 불이 났다. 속에서 난 불이 머리끝까지 달아오를 때면 아기의 등짝에 매서운 손찌검이 이어졌다. “그만 울어! 왜 이렇게 울어! 너 나 엿먹이려고 우는 거지!” 엄마의 절규가, 분노가 그렇게 이어지곤 했다. 맞기까지 한 아기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런 날이면 울다 잠든 정은이 곁에서 엄마는 이곳저곳을 매만져줬다. 정은이를 때렸다는 죄책감이 묻은 손길이었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정은이와의 전쟁을 견뎌냈다. 그동안 엄마는 많이 지쳐 보였다. 가현이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정은이를 돌보면서도 엄마의 눈치를 봤다. ‘이 지겨운 생활!’을 외치며 엄마가 정은이뿐만 아니라 이 집안도 모두 포기하고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엄마가 불이 꺼진 방안에서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켜두곤 다른 곳을 멍하게 응시할 때면 가현이는 마음속에서 작은 지진이 일었다. “엄..엄마” 가현이는 조심스럽게 엄마의 팔을 잡았다. “엄마, 정은이 다시 돌려보낼까?”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정은이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아니,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가현이는 의아했다. 그저께 밤까지만 하더라도 정은이를 돌려보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현이가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자 엄마는 여전히 울고 있는 정은이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오늘 **아동복지재단에 갔다가 다른 대리가정 엄마들을 만났어. 거기서 정은이 얘기를 들었어.”

정은이는 키우기 정말 ‘힘든’ 아기로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첫 대리가정에서 포기한 이후 다른 지역의 대리가정들도 정은이를 키우다 재단으로 되돌려보냈다. 그렇게 여섯 번, 정은이는 **아동복지재단으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특히 정은이가 가현이네 집으로 오기 바로 전에 돌봐주던 엄마는 대리가정계의 ‘못된 여자’로 통했다. 정은이를 키웠던 대리가정 중에는 가장 길게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이 여자는 3명의 아기를 동시에 돌봤는데 아기들이 울면 한 번을 안아주질 않고 ‘입 다물라’고 보리차를 물리는 여자라고 했다. 아기한테 보리차를 먹여서 아낀 분유는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동복지재단에서 지원한 후줄근한 옷이 아니면 아기에게 옷 한 벌 사주질 않아서 항상 그 집 아기들은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 집 엄마에게 아기란 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는 울다 지쳐 잠든 정은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은이를 데리고 오려고 **아동복지재단으로 갔는데 세상에! 말이 아기지, 거지꼴을 한 애가 있는 거야. 더 놀랐던 건 나한테 아이를 넘겨주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는 거지. 그래도 제일 길게 정은이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 엄마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정은이가 흘린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는 말을 이었다. “정은이가 울 때마다 보리차를 물렸나 봐. 정은이가 하도 울고 못살게 괴롭히니까 계속 보리차만 물린 거지. 그러니까 정은이가 우유가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 어째, 정은이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있더라고. 그게 다 물배였던 거야.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니? 우리 집에서까지 정은이 포기하면 일곱 번째야. 정은이가 버림받는 게…” 엄마의 말끝에는 눈물이 서렸다. 가현이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두 모녀는 조용히 눈물만 훔쳤다.

엄마도 가현이도 정은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악을 쓰며 울더라도 눈물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줬다. 말로는 ‘못생겼다’고 놀리더라도 눈빛으로 만큼은 ‘예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는 것이 다가 아니라 웃는 방법도 있음을 알려주려고, 정은이 앞에선 일부러 많이 웃었다. 처음에는 보리차를 먹겠다고 우유를 뱉어냈던 정은이도 차차 우유에 적응해갔다. 그렇게 몇 주가 또 흘렀다. 그동안 정은이는 몰라보게 바뀌었다. 항상 남산만큼 부풀어있던 배는 원래 아기들의 배의 형태를 되찾았다. 이전만큼 고약하게, 이유 없이 울어대질 않았다. 무엇보다 가현이와 엄마의 가슴을 떨리게 했던 것은 정은이의 웃음이었다. 방긋- 신이 나서 웃는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엄마와 가현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상 못생겼다고 놀렸는데, 정은이는 꽤 예쁜 아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웃을 줄도 알면서, 짜식!” 정은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엄마도 덩달아 웃었다.

아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도 냉혹한 ‘시장논리’가 뒤따랐다. 아기를 사고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의 얼굴이었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등은 입양하는 이들의 가장 큰 고려사항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정은이는 입양이 안 됐다. 정은이의 얼굴이 못생겼다며,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아동복지재단에서는 전해왔다. 엄마는 발끈했다. “아니, 우리 정은이가 얼마나 예쁜데! 우리 정은이의 진면목을 모르는구만!” 품에 안겨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정은이를 꼭 안으며 엄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가족이면 우리 정은이 안 데려가는 게 좋지. 우리 정은이를 정말 잘 키워줄 좋은 집에서 데려갈 거야. 그지, 정은아!” 대리 가족이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정은이라니.

정은이의 돌이 다가왔다. 매서운 추위가 감돌았던 1월, 정은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정은이의 돌을 준비하려 장을 봐온 엄마는 한 손에 떡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은이를 업고 있던 가현이는 케이크에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우리 케이크 먹는 거야?” 가현이의 호들갑에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잔칫상이라기엔 모자라지만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했다. 호기심이 많은 가현은 서둘러 장바구니 안에 무엇이 들었나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정은이 이유식으로 먹일 과일들, 재료들이 장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왔다. “에이, 다 정은이 거지!” 입이 삐죽 튀어나온 가현이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정은이 이유식해야 되잖아. 바나나 좀 먹고 있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현이는 바나나를 덥석 잡았다. 탐스러운 바나나를 한 입맛보곤 업혀있는 정은이에게 바나나를 슬쩍 내밀었다. “가현아, 네 침이 묻은 바나나 주면 정은이한테 안 좋아. 이따가 엄마가 줄테니까 가현이 다 먹어.” 엄마는 요리하는 중간중간 가현이와 정은이를 살폈다.

조촐하게나마 정은이의 돌상이 차려졌다. 돌잡이 한다고 엄마는 부산스럽게 연필이며, 실이며 챙겨왔다. 그걸 또 찍겠다고 가현이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댔다. 요즘 가현이는 부쩍 정은이의 사진을 찍었다. 정은이가 처음 일어섰을 때, 자기 힘으로 일어나선 신기해하는 표정, 혼자 신나서 몸을 흔들어대다가 엉덩방아 찧는 모습, 환히 웃는 정은이 모습 등 가현이는 쉴새 없이 정은이를 찍었다. 정은이의 모습을 담고 또 담았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이 가족은 늘 이별을 준비하며 살았다. 오늘도 가현이는 정은이의 돌잡이 사진을 찍었다. 작은 손에 꼭 부여잡은 실타래를 찍었다. 어느 집으로 갈지 몰라도 행복하게, 건강하게, 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나나를 작은 숟가락으로 퍼서 정은이에게 먹였다. 퍼주면 퍼주는 대로 정은이는 정말 잘 받아먹었다. 엄마는 바나나를 다 먹이곤 정은이를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잘 생각이 없었는지 정은이는 어디론가 또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또 해주었다. “오늘 정은이 돌이라고, **아동복지재단에 갔다 왔거든. 가서 직원이랑 얘기를 나누다가 평소에 궁금했던 걸 물어봤어. 정은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정은이 생모, 생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이야.”

정은이는 ‘구조’되어 **아동복지재단으로 왔다고 했다. 구조된 곳은 모텔, 그것도 창틈으로 바람이 휭휭 들어오는, 차디찬 화장실 바닥에서였다. 정은이는 온통 피바다가 된 모텔 화장실 바닥에서, 찬 기운을 견디며 울고 있었다고 했다. 마치 살려달라고 악을 쓰는 것처럼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정은이는 살기 위해 울었다. 이 거센 울음소리를 이상히 여긴 모텔 주인은 그 방을 열고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이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텔 화장실 바닥에서 출산한 산모가 자신과 연결된 아이와의 탯줄을 잘라내기 위해 사용한 녹슨 가위 때문이었다. 구조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은이를 감싸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만약, 늦는다면 이 연약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파상풍에 걸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달려 도착한 병원에서 극적으로 정은이는 살아났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정은이는 죽었을 거라며, 안도했다. 어쩌면 정은이는 봤을지 모른다. 느꼈을지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생모가 자길 두고 ‘가버린다’는 것을,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서서히 멀어지는 생모를 느끼며, ‘가지 말라고’ 그렇게 울부짖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이 작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온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정은이의 생모는 10대 여성이라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가족 없이 떠돌았다고 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는 자신의 여성 성(性)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고 했다. 어떤 남자든, 얼마나 나이를 먹었든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으며 그녀는 살았다. 그러다,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남편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추측해봤을 때 50대 남자일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키울 수 없으니 입양 보내라’며 당장 손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아동복지재단에서 기억하는 정은이 생모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단 한 차례도 정은이 생모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거칠거칠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은이가 운다고 때렸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어쩌면 정은이는 여섯 번 대리가정을 바꿔 돌아다니는 동안 많이 불안했을지 모른다. 태어남과 동시에 버림받은 이 녀석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슬픔을 먼저 깨달았을 것이다. 나와 연결됐던, 가장 긴밀했던 사람이 자신을 두고 떠나가는 그 슬픔. 그 슬픔은 그대로 눈물이 되어, 누구보다 통렬하게 울부짖게 됐을 것이다. 자신을 받아줬던 가족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두고 떠나가는 걸 정은이는 그대로 느꼈을지 모른다. 여섯 번이나, 이 작은 아기 혼자 감당할 슬픔은 그랬다. 그런 아이의 사정도 모른 채 그저 울지 말라고, 시끄럽다고 때렸으니…엄마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얼굴을 닦아내는 손길에 물기가 묻어났다.

정은이는 미국으로 입양이 결정됐다. 정은이를 **아동복지재단에 데리고 갈 때마다 ‘예뻐졌다’고 칭찬을 듣더니, 입양을 결정한 가족이 나타났다고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족인데, 인상이 좋은 분들이라고 했다. 늘 정은이와의 이별을 준비했던 가족들은 입양확정 소식에 애써 덤덤한 반응을 했다. 정은이 입양 날짜에 맞춰 차근차근 보낼 준비를 했다. 입양한 가족에게 ‘정은이를 잘 부탁한다’는 편지와 함께 아기 옷을 포장했다. 아마, 이 옷도 정은이 성장 속도로 볼 때, 얼마 못 입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로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포장된 작은 아기 옷을 보며, 엄마는 정은이 보낼 준비를 마쳤다.

입양 당일, 엄마는 마지막이 될 정은이와의 외출 준비에 정성을 다했다. 정은이를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늘 그랬듯 정은이의 긴 머리를 핀을 이용해 예쁘게 묶었다. 엄마의 손길에 기분이 좋은 건지 연신 웃는 정은이를 엄마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입은 웃는데 눈은 울었다. 가현이도 정은이의 물건을 정리하며 말이 없었다. 짐을 다 싸고 나니, 정은이의 흔적은 이 집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가현은 그대로 그 물건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었다. 예쁘게 치장한 정은이의 마지막 모습도 함께 담았다. 진짜 마지막이었다.

**아동복지재단 안에 마련된 장소에 대리가족과 정식가족이 모였다. ‘예쁘다’며 정은이를 안아보겠다고, 엄마의 품에서 정은이를 데리고 갔다. 정은이는 가현이와 엄마가 함께 있으니 안심하고 있는 건지, 그저 예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정식가족은 연신 ‘예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이가 가야 할 시간이 왔다. 정은이를 안아 든 가족들은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정은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표정이 없어졌다. 아마, 정은이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정은이는 엄마와 가현이를 계속해서 눈에 담아두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보든 정은이는 엄마와 가현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바라봤다. 마지막이란 걸 이 녀석도 아는 모양이었다. 헤어지기 전 ‘울지 말고 웃으며 잘 살라’는 엄마의 당부를 알아듣기라고 한 것인지 정은이는 울지 않고 떠나갔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는 엄마와 가현이를 두고 그렇게 떠나갔다.

아무 말도 없이 도착한 집 앞에는 늘 그랬듯이 녹슨 철문이 있었다. 이 문을 열면 죽은 바퀴벌레가 있는지, 쥐는 없는지를 살피며 가현은 들어갈 것이다. 그리곤 이내 또 지하 방 앞에 우뚝 멈출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엄마는 늘 가현이 이곳에서 멈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바쁘단 이유로 물어보지 못했던 차였다. “가현아, 여긴 왜 자꾸 보는 거야?” 가현은 지하 방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고 엄마를 바라봤다. “무섭잖아.” 뜻밖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서운데 왜 보는거야?” 가현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해. 여기에서 무서운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거야. 그럼 나는 아마 끌려 들어가고 말 거야. 그런데 그렇게 내게 힘들고 위험한 일이 닥친다고 해도 엄마가 있으니까, 엄마가 나를 찾고 걱정할거니까, 그러니까 무서운데 안 무서워. 그래서 내가 궁금하거 그럴 때에도 이렇게 서서 볼 수 있어.” 엄마는 가현을 안았다. “엄마, 그런데 정은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은이는… 아무도 없었잖아.” 가현의 답에 비로소 엄마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모녀가 안고 우는 사이, 웬일인지 지하방에 빛이 환하게 들었다. 동시에 빛은 모녀를 향해 따뜻이 비춰주었다.

수필 부문 당선 수상소감_장재란(사회‧4)

“이거 소설이야?” 저의 이야기를 접한 이들이 한 번쯤 묻는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반응이 더욱 가슴 아픕니다.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진짜 가족>에 등장하는 아기 정은이가 받았을 상처는 가상의 영역일 텐데, 현실에 기반을 둔 사실임을 잘 알기에 ‘소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소설’로 치부할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받을 시선을 제가 대신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지 모릅니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현실 속 약자의 이야기에 가슴 아파하고, 귀 기울이고,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모두 정은이가 제게 남기고 간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있다면 저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는 ‘가현’이라는 인물입니다. 소극적이고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던 저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방식이 ‘수필’로서 적합한지를 한참 고민했지만 ‘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학보에 실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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