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나는 펜을 든다]아무 것도 하지 않을래
[고로 나는 펜을 든다]아무 것도 하지 않을래
  • 이미쁨 기자
  • 승인 2016.03.02 23:46
  • 호수 2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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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휴학할래.” 갑작스런 외침 한 마디에 나의 어머니는 한참을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리고는 “뭐하려고?” 나지막이 물으셨다. 언제나 나를 괴롭히던 고놈의 돈이 아니어도, 지칠만한 이유야 충분했다. 어느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더 이상 아무 연락도, 아무 의무도 없이 가만히 쉬고 싶었다. 그러나 계획을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불안해졌다. 가만히 쉬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시간 속에서 늦춰질 거라는, 지체될 거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어머니에게 졌다. 이번 학기도 등록을 했고, 무언가를 잘 해낼 자신이 없는 지금 그냥 학교를 다니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 투정을 이곳에 맘껏 부리고 싶다.

죽기 전에 해야 할 백 몇 가지, 20대에 해야 할 몇 가지, 대학생이 해야 할 몇 가지…. 자기계발서는 우리에게 늘 발전을 강조하며, 무언가를 해내야 하고, 알찬 인생, 값진 인생을 살기 위한 처세술을 소개한다. 심지어 비로소 멈춘 뒤 보아야 할 것도 있고, 청춘이니까 좀 아파도 봐야 하고, 이제는 미움을 받더라도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내 감정까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뿐인가.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입사 면접 시 휴학 당시 무엇을 했는지를 단골로 물어본다고 소개한다. 직무와 관련한 대외활동을 했거나, 어학성적 향상을 위해 공부를 했거나,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나…, 이미 휴학을 해보았던 선배들은 내게 무언가라도 했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 휴학하지 말라며 만류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모두들 시달리고 있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과 무작정 쉰다는 것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공감할 만한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피로하다는 사실이다. 매순간 성취를 효율을 원하는 삶 속에서 치이고 또 치인다. 매 순간 일을 하면서도,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소모하며 살아야 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너무나도 위험한 세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우리에게 쉬고자하는 욕구,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욕구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편안함과 안전에 대한 본능일 것이다.

150여 년 전 프랑스에서 한 외침이 있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칼 마르크스의 사위로도 유명한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권리」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말했다. 인간의 자연적 본능으로 돌아가라!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보다, 천 배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외쳐야 한다고. 뿐만 아니라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어쩌면 이번 학기 휴학을 하지 못한 데에는 쉰다는 것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는, 인생을 낭비한다는 만들어진 죄책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어떤 의무도 없이, 어떤 과제도 없이, 내일의 약속도 없이 게을러질 테다. 이런 나에게 아무도 성적을 매기거나, 잘잘못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버려두기를. 이렇게 말하면서도 귀가 얇은 나는 다음 학기를 또 등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한동안 유행했던 말처럼,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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