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란 풍선이 귀하다고 느낀 어느날, 그는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20일이 되지 않아 당신을 뽑은 국민들 앞에서 새파란 검사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에는 그를 욕하는 것이
가장 진부한 일이 되었다. 변하고 싶지 않은 우리를 계속 변하도록 하는, 지난 5년간 투박하게만 느껴졌던 그의 언어는 항상 우리를 당혹하게 하였다. 어쩌면 진실만을 줄 수
있는 그에게 우리는‘경제적 풍요’만을 기대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고향 간다며 기차문간에서 손을 흔들며 좋아하던 그가 자연을 닮은 미소를 가진 농부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도 잠시, 1년 4개월만에 그는
우리를 영원히 떠나갔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자신의 일에만 매진하고 그 흔한 촛불시위에서 촛불 한 번 들지 않은 우리 일상인도 동의하는 것 하나는 그가 가장 덜 부패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더 이상 당신이 우리들의 노란 풍선이 될 수 없다고, 당신을 버리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가장 혹독한 방식으로 처벌하였던 것이다. 이 처럼 그는 일상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이단아로 다가와 경계인으로 있다가 단독자로
돌아갔다.
만일 우리가 잃어버린 노란 풍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짤리고 왜곡되어 전달되어 그의 언어라고 불리는 것들을 집어던지고, 그가 우리에게 그 투박한 말투로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진실로 말하려 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조중동이라는 안경을 벗고 말이다. (읽지 말고 다시 들어보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그가 정말“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는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는지를… 전자는 막가파를 연상하게 하지만, 후자는 아무런 원칙, 예의 없이 해도 되겠느냐를 뜻할 뿐이다.) 이제 다시 노란 풍선을 우리 손에 쥐어 줄 사람은 없다. 만일 노란 풍선이 다시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이젠 우리 각자가 오직 자신의 힘으로 노란 풍선을 힘껏 불어야 할 것이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의 노란 풍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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