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거래의 대상인가?
페미니즘이 거래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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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8 15:18
  • 호수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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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학생회 산하 자치기구였던 반성폭력위원회가 성평등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인준을 받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성평등위원회에 대한 홍보 활동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전학대회에서의 인준 문제는 절차상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제290호학보 참고)로 인하여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위 활동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성평등이라는 것은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보편타당성을 지니게 된 가치일 뿐만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가 명언하는 것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면서 성평등위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평등위원회가 명칭과 달리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강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호감을 가지기 어렵다고 했다.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어디까지나 여성이 남 성의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 위한 것 즉 평등을 목표로 한 것이었고, 이처럼 헌법적 가치실현을 위한 것이다 보니 설령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도 그 반감을 표현하는 것은 떳떳하기 힘든 일이었다. 최소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러하였다. 그런데 어느새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는 작년에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여성 2명이 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여성혐오 성 글이 등장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는 것이 정설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주된 활동 수단은 이른바‘미러링’이었다. 나는 여기까지만 한정해서 보면, 정당한집단의정당한활동이었다고생각한다. 여성 혐오라는 부당한 가치에 대항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한 것이고, 비록 약간의 강제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고는 해도 미러링이란 결국 역지사지(㒬㶀⻜㴝)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활동은 이상하게 변해갔다. 미러링이 지나쳐서 미러링의 대상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예컨대 김구 선생님이 나 안중근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가에 대하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혐오스러운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런 글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한참 뒤에서야 이런 류의 글이‘일베’사이트에서 유관순 열사를 모욕한 글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김구선생님에 대한 모독이 유관순 열사에 대한 모욕의 미러링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역지사지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모욕한 글을 보면,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그 자체에 대해 불쾌함과 분노를 느낄 것이다. 이에 대해 단순히 유관순 열사가 여성이었다고 해서 남성 독립운동가를 모독하는 것은 역지사지가 아니라 혐오의 재생산일 뿐이다. 범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항의가아니라, 단순히 남성 일반에 대한 혐오 내지 공격으로 단체의 지향점이 바뀐 듯하다. 물론 이에대해 혹자는, 이들 또한 진정한 페미니스트이며 이들처럼 극단적인 주장도 있어야만 다양한 의견들의 충돌∙갈등과 화해 속에서 ‘진정한 페미니즘’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다고한다. 그러나 나는 반문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거래의 대상인가?

 

만일 그러하다면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처럼, 싼 가격에 사고자 하는 사람과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하는 사람의 갈등과 화해 속에‘ 진정한 페미니즘’의 모 습이 드러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가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이에 대해 흥정하려는 것은 상대방에게 불신을 심어줄 뿐이다.

 

필자는 전통시장을 자주 활용한다. 처음 방문할 때에 약간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몇 번 들러본 후 단골 가게가 생기면 대형마트에 비하여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 은 물건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에 비하여 현저히 경쟁력을 잃은 상태인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소비자의 불신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시장에 갔다가 극소수의 이기적인 상인에게 바가지를 쓰거나 품질 등에 대해 속은 경험이 있으면 그후로는 시장 방문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지금의 메갈 리아는 이러한 이기적인 상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평등을 지향하는, 당연히 실현되어야 할 이데올로기를 과장하여 남성비하로 나아감에 따라 오히려 페미니즘 에 대한 반감만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극소수의 이기적인 상인에게 속았다고 해서 시장 방문 자체를 꺼리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 반감을 가지기 전에 자신이 반감을 가지는 대상을 먼저 정확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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