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재조명] 스마트폰
[단어의 재조명] 스마트폰
  • 오명진 수습기자, 이예나 수습기자
  • 승인 2016.10.12 22:26
  • 호수 2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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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바보상자’하면 텔레비전이 떠오른다. 이제 스마트폰이 그 바톤을 이어받은 듯하다. 물론 스마트폰은 넘쳐나는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다루기 쉽다. 하지만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매체이기도 하다. 검색 하나를 하더라도 연관된 정보까지 무자비하게 쏟아진다. 어느 정보가 정확한 건지 거를 새도 없다. 항상 시간을 보기위해 화면을 두드리지만, 상단 바에 뜬 카톡까지도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는 행동흐름이기에 별 거리낌이 없다.

혼자서 스마트폰에 파묻혀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가끔 정신이 들어 하루 24시간 중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계산할 때가 있다. 입이 떡 벌어진다. 내가 이걸 쓰는 건지, 이게 나를 쓰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던 내가‘진짜 뭔가 이상한데’라는 느낌을 받는 건 전철을 탈 때다. 등교, 출근 길 꽉 찬 전철 안 사람들은, 콩나물이 되어 힘겨워 하지만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공간이 여유로울 때도 예외는 없다. 분명 여러 사람이 스마트하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를 모아놓은 전체 풍경은 괴이하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각자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혼자 이어폰만 꼽고 가만히 있으면 어색할 정도다. 난 그런 어색함이 싫어 의미 없는‘스마트폰질’을 한다. 그런데 또 옆 사람이 신경 쓰여 사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을 받는다. 불안감, 어색함을 한낱 기계 때문에 느낀다니. 어느 샌가부터 주객이 뒤바뀌었다. ‘바보’탈출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요즘이다.

오명진 수습기자
cuknews@catholic.ac.kr

휴대폰과 컴퓨터의 결합체,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개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나 터치 몇 번으로 정보를 볼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연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스마트하게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 폰이 인간을‘진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의가장 큰 이점은 앉은 자리에서 알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덕분에 우리의 일 처리는 빨라졌다. 스마트 폰은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었다. 그러나 이상하다. 그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우리는 여유로워지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바쁘게 살아간다. 일 처리가 빨라진 만큼, 우리의 삶역시 빨라졌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 지향하는‘스마트’는 과연 우리 삶을 향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노동자로서 ‘스마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이점은 우리를 언제 어디서나 일하게 했다. 퇴근 후 스마트폰을 끄는 것은, 더는 개인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연락받지 않을 자유에서 멀어지고 있다. 권력 형태가 이제는 연락의 지배, 피지배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한 ‘스마트폰’을 통해 드러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삶이 침범당할 위기에 놓였다.

우리에게 더는 의사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하고, 받고 싶지 않아도 받아야만 한다. 그것이 현대사회가 개인을 지배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럼에도 스마트폰이 편의와 자유를 제공한다는 환상 속에서 너무도 값비싼 요금을 치르고 있다.

이예나 수습기자
cuknews@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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