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재조명] 소주 (1)
[단어의 재조명] 소주 (1)
  • 황겨레 기자
  • 승인 2016.11.30 00:45
  • 호수 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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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만 마시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소주를 마시는 날은 사연이 있는 날이다. 그러다 한 달에 단 하루만 제외하고 매일 소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수척해지고 깡말라버렸다. 잘생긴 얼굴도 사라져버린 채였다. 나는 마지막 날 그와 차를 마실 때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친구는 소주를 마시는 것은 전에 있던 사연들을 지우기 위함이라 했다. 그리고 다음날 갈증이 생겨 저절로 술을 또 잡는 것을 반복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알코올 중독자 얘기다. 그는 특별한 사건보다도 불쑥 드는 감정을 잡을 때는 소주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불쑥 드는 감정이 뭐냐고 물었더니 잠깐 멈추고, 불쑥 드는‘감정’이 아니라 ‘불쑥’드는 감정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냐고 물었다. 난 그렇다고 했다.

다른 술도 아닌 소주인 이유를 물었다. 그것은 소주가 맑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소주가 맑은것과 중독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자 소주는 맑아서 어느 병에 담든 그 병의 색을 갖는다고 했다. 은유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소주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그러니까 은유라고 답했다. 그는 알코올의 비율은 미미하고 겉보기는 물과 같고 성질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소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다시 중독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감정 중독, 생각 중독, 시각 중독이 없듯 소주도 원래 중독이 아니라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피를 알코올로 세척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없애고 싶다고 했다. 특히 어느 날 자신의 안경에 튄 소주 물방울로 안경을 닦으니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다고 이젠 자신의 차례라고 하는데, 거기까지 친구의 근황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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