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 갇힌 월경
음지에 갇힌 월경
  • 오명진 기자
  • 승인 2017.03.15 18:38
  • 호수 2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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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아주 평범한 현상
 월경하는 모든 여성을‘출산 가능한 자’라 규정해도 무방할 일인가? ‘비혼주의’를 선택한 가임기 여성도 있는 만큼 이러한 규정은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출산 정책이란 명목으로 전국 가임기 여성 현황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였다. 실제 생활 속에서도 이와 관련된 불편은 만연해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왜 생리대와 탐폰, 둘 중 하나를 선택할수밖에 없나. 생리용품 광고는 왜 항상‘하나’의 이미지만으로 포장 되는가. 생리대 가격은 어찌하여 인권을 침해할 정도로 비싼 것일까.
 월경은 여성에게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토록 평범한 일에 대하여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각지대에 갇혀버린 월경.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의 실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3월 8일은‘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비롯되었고, 오늘 날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은 여권 향상을 위해 운동하고 있다. 한국또한‘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 지 올해 33년을 맞았다. 하지만 국내외 기념행사 개최와는 별개로 여권의 실질적인 지위 향상의 결과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2016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는 한국이 116위로 나타났다. 2010년 104위에 이은 하락세다. 페미니즘이 논의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인식 범주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월경’에 대해서는 어떤가?

 

월경에 대한 시선과 인식

 월경은 전 세계 인구 절반이, 월에 한 번씩 겪는 주기적인 일이다. 그러기에‘월경’이라 표현하는 것이 다. 누구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기뻐할 일이거나 그저 그런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현대’사회 전반에는 월경 자체가 부끄러운 것, 금기시 되어야 할 것이라는 관습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월경은 이러한 관습에 걸러져왔다. 그 전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는‘비’월경자인 나머지 절반의 인구를 의식하며 살게 됐다.

 최근 기존의 사회를 이끌어 온 사회∙종교∙문화등의 이론들이 남성주의 시각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적지 않게 제시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다. 그런 까닭에 예전부터 얽히고 얽혀온 여성의‘월경’에 대한 인식은 풀리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월경은‘성별화’구조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는 데 가장 중요시되는 기준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에 의해 월경은 여성의 문제이니 여성만이 책임져야 할 일인가. 지금껏 여성들은 월경 뿐 아니라 갱년기 우울감도‘개인’의 문제로 감당해 내야 했다. 대형포털 사이트에 갱년기를 검색하면‘더 이상 월경을 하지 않고 임신능력을 상실했을 때’라고까지 나온다. 여성을 대상화하여 출산 가능한가의 여부로 판단해도 무방한 것일까. 과연 가임여성은 출산을 위한‘도구’일 뿐인가. 월경을 하는, 월경이 끝난 여성 모두 출 산을 위한‘도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생산’과‘아이를 낳을 수 있는 축복’

 에밀리 마틴(Emily Martin)은 자신의 저서 <여성의 몸에 관한 의학적 비유 : 월경과 폐경>에서 월경을‘임신과 출산 목적’으로 보는 병리적 이해 방식에 대해 비판한다. 사람의 위 내막 혹은 남성의 정액이 배출되는 것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월경과정을 임신이 허용되지 않는 기간이라는 등의 문제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관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월경은 그저 여성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혈액의 건강한 배출활동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그것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 있어‘방해’가 되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맥락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산 욕구 중 하나인 종족의 번식, 즉 재생산 욕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사회의 경제와 분리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 국가의 경제와 인구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월경을 출산가능성 증명 수단으로 보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축복’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 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여성에도 결혼주의자와 비혼주의자가 있다. 결혼했어도 출산을 원하지 않거나, 비혼이지만 출산을 원하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있다. 사람이기에 다양한 선택이 존재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모든 여성이 결혼을 전제로 한 삶을 사는 게 아님을 알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여성의 월경에 관한 모든 일은 여성만이 책임질 게 아니다. 월경과 생리용품이 일상생활에서 대화주제로서터부시되는것또한문제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는가’,‘ 그 존중은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월경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 전반을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이 통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가 산하기관인 행정자치부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해결과 출산통계 정보 열람을 근거로‘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제작∙배포한 일이 있었다. 출산지도에는 행정구역 별 가임기 여성들의 인구 수치가 공개되었고, 가임기 여성들의 분포도에 따라 행정구역 순위가 매겨졌다. 이는 모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월경하는 여성 모두를‘출산 가능한 자’라 치부하고 비혼주의 여성의 선택은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선택은 존중,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뿌리다. 과연 한국 사회의 여성은‘인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음지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생리용품

 생리대를 숨기는 사람들

 “너‘그거’있어?”

 누구나 익숙하게 들어본 말일 것이다. 갑자기 생리대가 필요할 때 여성들은‘그거’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시대가 발전하고 페미니즘이 거론되며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상황은 점차 변하고 있다. 하지 만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경우 생리대라고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주의 시각이 퍼져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월경은 혐오스러운 생리이니 숨겨야 한다’,‘ 월경은 깨끗하고 순수한 것과 반대되는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라는 남성 중심 관점에 월경하는 주체들은 오랜 시간 억압되어왔고 이러한 인식을 내면화하게된 것이다.

 대중매체의 생리용품 광고에서도 여성의 월경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생리대 광고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1971년 유한킴벌리가 코텍스 생리대를 출시하였을 때 광고문구 는‘누가 여성을 해방시켜주는가?’였고, 시각적으로 강조되었던 것은 다리를 활짝 벌린 자유 여성의 이미 지였다. 능동적인 여성상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뒤 방송윤리위원회는 이를 비난하며 텔레비전 에서 생리대 광고를 금지해버렸다. 1995년 생리대에 대한 광고 규제는 풀렸으나 IMF외환위기를 기준으로 ‘청결, 흰색, 순결, 순수’같은 이미지가 성행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흡수력을 강조하면서도,‘월경혈’의 상징인 붉은색이 아닌 파란 시약으로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광고의 직접적인 대상자이자 생리용품 사용자인 여성을 생각한 광고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생리대를 둘러싼 의문은 광고에만 한정되는 것이아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1월 생리대에 부과되는 세금에 관한 질문에 대해“여성들의 고충을 겪어보지 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초기 사회가 건설됐기 때문”이라 답한 바 있다. 남성주의 시각에 충실한 부류 가운데는 세계 인구의‘절반’인 여성을‘일부분’으로 치환하여, 겨우 일부분만이 사용하는 생리용품을‘사치품’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4월, 국민안전처가 5년 만에 변경 재난구호 품목을 발표하면서 생리대를 빼고 대신 슬리퍼, 안대, 귀마개 등을 추가하기도 했다. 개인 별 취향 차이와 2~3년이라는 유통기한 때문에 제외했다 설명했지만 논란이 거세지자 국민안전처는 응급세트에서 개별구호품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누락’된 것이라 해명했다.

 깔창을 생리대로

 “생리대 살 돈 없어 신발 깔창∙휴지로 버텨내는소녀들의 눈물”

 지난해 5월 일명‘깔창 생리대’사건이 알려졌다. 이후 인터넷 상에서는 열악한 경제사정 때문에 신문 지, 수건을 생리대로 사용했다는 등의 충격적인 사연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한국의 생리대 가격은 2007년 소비자시민모임의 조사 결과 세계 29개국 중 5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싸다. 정부가 2004년부터 10%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고 있으나, 생리용품 제조업체 유한킴벌리는‘원재료 가격과 기술적 요인에 따른 가격 상승’을 이유로 오히려 가격을 꾸준히 높이고 있다. 여성의 생리용품을 인권 차원에서 고려하 는 것이 아닌, 단순 경제상품으로만 보는 관점이라 볼수 있다.

 생리용품은 생활필수품이다. ‘깔창 생리대’사건의 충격이 컸던 이유는 그‘생필품’이 제대로 보급되 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리대 가격 문제는 시장논리에만 맡겨 두어선 곤란하며,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저소득층은 물론 여성 모두에게 생리용품의 가격은 상당히 중요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생리컵’이 대안용품으로 거론됐지만 현재 정부의 답답한 규제에 발이 묶인 상태 이다.

 한국에서‘생리컵’을 왜 못써?

 생리대에 관한 한 현재 한국에서는‘선택의 자유’가 부재하다. 월경하는 이들의 선택을 자유로이 보장, 존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생리대 패드가 면이든 일회용이든, 체내 삽입형인 탐폰, 생리컵 (menstrual cup)을 쓰든지 간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맞는 생리용품이 있는 법이다. 한편에 탐폰 과 생리컵을 찬양할 정도로 편안해하는 여성들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질 내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것 자 체를 꺼려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처럼 각기 다른 환경의 모든 여성들은 월경으로 인한 환경적, 경제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들의 다양한 선택이 존중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 우선으로 필 요하지 않을까.

 생리컵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탐폰조차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 생리용품은 여성의 질 내에 직 접 삽입하여 사용하는 생리대 대안용품이다. 탐폰은 일회용 패드 생리대와 같은 재질로 흡수를 하며, 생리 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되어 생리혈을 받아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리컵은 사용 초반부‘삽입’이라는 두려움의 벽만 허문다면, 6~12시간에 한 번씩 세척한 후 재사용이 가능해 경제적이며 자유로운 생활 보장이 가능하다. 한번 월경 시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약 3-40개의 생리대 가격(개당 최소 1만원~3만원)에 비해 2만원후반대에서 3만원인 생리컵은 영구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자의 몸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므로 편안한 생리컵 사용을 위해서는 자신의 월경혈 양, 질 길이, 컵의 탄력 정도 선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위생적인 제작공정과 세세한 검수 절차를 거친 뒤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생리컵은 생리대와 탐폰과 함께 의약외품 가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해외의 경우 유럽 대부분 국가는 공산품, 미국과 호주는 의료기기, 일본은 생리컵-의료기기, 생리대-의약외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등에서‘공산품’으로 유통∙판매되어 오다가,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허가 받지 않은 생리컵에 대한 판매금지와 단속에 나선 이후 현재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해외 직접구매 혹은 이전에 국내에서 구입한 사용자들이 올린 SNS, 블로그 후기가 알려지며, 생리컵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늘고 있으나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판매자와 제조업체, 구매자들의 문의가 많아지자 지난 1월 25일 식약처는 제 2차‘생리컵 민원설명회’를 개최했다. 생리컵 허가 신청 시 필요한 제출 자료요건 등을 소개하며“생리컵을 유통 판매하려는 제조업체와 상담 등을 통해 빠른 시간 내 안전한 제품이허가 판매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지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참조했을 때 엄정한 기준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있어야만 하겠다. 하지만 미국 식약처(FDA)와 같은 해외의 생리컵 관련 허가 기준과 참고사례가 이미 많은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에서만 허가가 유독 늦어지는 이유 또한 식약처 측에서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월경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현실은 계층과 성별을 막론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어느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 인구의 절반이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이며, 나머지 절반도 이를 제대로 인지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한국은 불필요한 면에서만 보수적이다. 정치적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보수는 서로에 대한‘무지’로 이어지며, 무지한 상태에서 이해에 기반한 대화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대화가 없는 곳에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인식의 변화가 누락된 사회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지의 개선’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지가 타파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득하다. 한국 사회에 드리운 왜곡된 보수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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