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 ‘OLD BUT NEW’ 영프라쟈&남구로시장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 ‘OLD BUT NEW’ 영프라쟈&남구로시장
  • 박혜영 기자
  • 승인 2017.04.11 20:59
  • 호수 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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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전통시장 나들이
▲ 아기자기한 조명들로 장식된 영프라쟈 내부
▲ 구로시장∙영프라쟈 입구 전경
 구로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쯤 더 가야보이는 구로시장. 이곳은 구로구의 재래시장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았고, 70년대 구로공단의 젊 은 이들로 사람이 많았을 때까지만 해도 소위 ‘잘 나가던’시장이었다. 이랬던 시장도 주변 상권의 변화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시장의 좁은 골목길, 가장 안쪽의 창고로나 쓰던 곳에서 작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2015년 1월,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만 없었던 사람들이 그 터에서 장사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특별한 테마를 내건 청년상인들이 모여 가게를 연 것이다. 4개의 점포로 시작된 영프라쟈는 현재 12개의 점포로 늘어났고 이제는 관광명소로 거듭나 여러 매스컴에서 다룰 정도로 성장했다. 어법에 맞는 표기인 영플라자가 아닌 ‘영∙프라쟈’라는 이색적인 상호를 내건 이곳이 더욱 궁금해졌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천 원에 세 켤레를 파는 양말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듯 편한 복장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구로구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빛바랜 간판 사이로 조그맣게 ‘영프라쟈’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한쪽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풍선을 매단 코끼리가 ‘HELLO’라는 인사말과 함께 붙어 있었다. 낡은 천장을 가리려는 듯트리를 밝힐 때나 쓸 법한 조명들이 골목을 비췄다. 이질적이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가게들은 더욱 특별했다. ‘ 삼봉—빠’,‘ 자수하는으녕씨’같은 개성넘치는 이름의 가게들이 영업 중이었다.

 여러 점포들 중‘쾌슈퍼’라는 곳이 형광색의 테이블과 함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쾌락주의의 원칙을 담아 인생을 재밌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사고, 팔고, 만들고 알리고 싶은 가게. 해외 식자재와 디자인 문구 외에도 쌀국수와 맥주 등의 식사를 판매하며 그들만의 취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한편에는 복고풍 분위기의 작지만 무언가 바글바글 모여 있는 가게가 있었다. 달고나 체험을 할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어릴 적 슈퍼 앞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옛날 오락기, 구형식 인형뽑기 기계가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분이 지인과 함께 오락기에 붙어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덩치 큰 성인 남성 두 명이 조그만 오락기 앞에서 열을 올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 옆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여성이 가게를 구경하고 있었다. 시장을 자주 방문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프라쟈 내의 추억 점빵은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라 자주 방문한다 했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먹고 싶은 불량식품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영프라쟈를 나와 골목을 헤매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남구로시장을 발견했다. 할머니 여섯 분이 떡볶이를 만드는 가게가 눈에 띄어 그 앞에 서서 떡볶이를 주문했다. 아주 맵거나 달지도 않지만 먹을수록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알고 보니 ‘칠공주 떡볶이’라는 상호로 장사하신 지 30년이나 된 유명한 떡볶이 집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들 외에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잘 어울렸다. 내 옆 붙임성 좋은 청년은 앞에 계신 할머니께 자신이 먹고 있는 떡볶이가 엽떡(프랜차이즈 떡볶이 브랜드)보다 맛있다며 칭찬하고 있었다.

 불현듯 영프라쟈 입구에 쓰인 ‘OLD BUT NEW’가 떠올랐다. 단순히 재래시장을 새롭게 정비했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모든 세대가 한데 모여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문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함에서 느끼는 향수, 익숙함에서 경험하는 새로움. 오늘 날 시장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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