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VS 초코파이
구속영장 VS 초코파이
  • 임수진 기자
  • 승인 2010.03.09 19:11
  • 호수 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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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일그러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다. 서민 보호를 위해 생긴 제도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몸매 관리에 자신의 온갖 자산을 쏟아 붓는다. 10대들은 여전히 입시 경쟁에 휘말리고 있고, 그에 이어 ‘88만원 세대’로 찍힌 20대들은 취업난과 비정규직이라는 구덩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속에서 뒤틀려만 가는 10대들은 웃는 날보다 인상 쓰는 날들이 더 많아진다. 어른이 되면 뭐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꿈꾼다는 건 요즘 아이들에게는 사치다. 어른들은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삭막한 시대다. 우리가 웃는 10대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오히려 가정과 학교 밖의 길거리다. 삼일절, 광복절, 그 외에도 시도때도 없이 굉음을 내며 도로변을 달리는 폭주족들이 있다.

또 선배들이 후배들의 교복을 찢고 밀가루와 계란을 던져대는 ‘추태’졸업식에서다. 이런 10대들은 법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더라도 벌금형이나 훈방 조치 등으로 사건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엽기 졸업식 추태로 인해 ‘개념 없는’ 10대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법치국가로서 강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드디어 경찰이 칭찬받을(?) 일을 했다. 지난 2월 3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역주행을 하다 다른 차량의 사고를 유발해 운전자를 다치게 한 폭주족에 대해 교통사고법과 함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처법’)을 적용해 구속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는 폭주족에게는 영장 발부가 아니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로 처벌했기 때문에, 이번 사례는 폭주족에 폭처법을 적용한 첫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경찰에서는 폭주족들이 3년 이상의 징역까지 받을 수 있게 되어 폭주족들이 잔뜩 움츠려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거, 안타깝게도,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 듯 싶다. 우리가 청소년들을 위해, 법치국가인 이 나라를 위해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폭주족 아이들을 만난 기사나 뉴스의 인터뷰에서는 자신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는 데는 가정불화나 학교 생활에 원인이 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학교와 부모님의 잔소리, 억압, 사랑이 부족한 가정,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10대들이 선택한 ‘탈출구’는 다름 아닌 길거리인 것이다. 자신들을 손가락질하던 어른들을 놀라게 하고 경찰들을 쩔쩔 매게 만드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10대들을 보면 아직 참 어린 것 같다. 그러나 폭주를 택한 현실도피는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아프다.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면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더욱 요란하게 울어댄다. 당신은 폭주족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가? 당신은 폭주족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찰의 따뜻한 한 마디, 설득, 요구르트나 초코파이 하나에 감동받아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가? 우리가 진정 청소년을 위하고 청소년 범죄를 막고자 한다면, 손쓸 수 없이 날뛰는 문제아라도 결국 반항기 다분하고 감수성 예민한 한 10대 소년일 뿐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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