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리] 어긋난 형평성과 성찰의 필요성
[가토리] 어긋난 형평성과 성찰의 필요성
  • 김동한 기자
  • 승인 2017.09.02 02:49
  • 호수 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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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평성은 학생 복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가치이다. 형평성이란 동등한 자를 동등하게, 동등하지 않은 자를 동등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학생 복지는 모두가 동등한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설계해야 한다. 학교 내 학생은 모두 같은 지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물론 때에 따라 더 큰 가치를 위해 차등한 복지를 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엔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조율한후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방학 중 진행한 남자 샤워장 신설은 형평성에 어긋난 편향된 복지가 아닐 수 없다. 여자 샤워장은 신설되지 않았고, 단지 남학생의 샤워장 이용 빈도가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학생들의 의견은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조속히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학생 복지는 과거에도 존재했다.아래는 1996년 3월 5일 본보 제12호 〈남학우들의 아픈 사연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고 글 중 일부이다.

 “과학관에 남자 화장실이 딱 한 군데밖에 없다는 점은 정말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학생이 집중된 자연대, 자연대의 터전인 과학관에 남자 화장실이 한 곳뿐이라니... 하나뿐인 화장실은 시설 또한 열악하여 소변기 하나, 좌변기 둘, 세면대 하나가 전부다. (중략) 올해 신입생 중 남학생의 비율이 높아졌다. 95, 96학번을 합해 남학생은 300명 남짓, 늘어나는 남학생을 감안한다면 학교측의 조속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6년은 본교가 ‘가톨릭대학교’란 이름으로 통합된 지 2년 차가 된 시기이며, 동시에 남학생 모집을 시작한 지 두 번째가 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95년 이전까지 성심여대였던 터라 남학생을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존 건물들이 여대 특성을 고려해 설계된 까닭이 크다. 그래도 95년부터 남학생 모집 계획을 세운 상황이었다면, 남자 화장실을 미리 더 만들어 놨어야 하는 게 당연한 처사이다. 이 역시 형평성에 어긋난 학생 복지였으며, 2년 차가 됐을 때까지 화장실이 부족했던 상황을 보면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이처럼 비슷한 두 사건의 사이에는 22년이란 세월이 있다. 어쩌면 22년의 격차를 두고 비슷한 학교 행정이 벌어지는 이유를 우연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그릇된 행정 실수를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해온 행태가 관행이 되어버린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 정답은 아니지만, 실마리는 풀어줄 만한 말이 있다.

 “가장 아래에는 데이터가 있고, 이것을 처리하면 정보가 된다. 정보를 연결하면 지식이 되고, 지식에 성찰을 가하면 지혜가 된다. 우리가 하는 건 지식을 지혜로 옮기는 일이다.”미학자 진중권은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했다. 결국, 지혜에 도달하려면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그래서 시작했다. 본보는 지난 22년간 신문을 발행하면서 많은 지식을 전달하고 축적해왔다. 거기에는 반성해야 할 점, 본받을 점 등 다양한 본교의 숨결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과거의 사건을 성찰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몇 년 후 이 칼럼의 일화는 남자 샤워장만 신설로 정해질 확률이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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