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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서재]에리히 프롬의 사상, 그 소유와 존재의 정치학
에리히 프롬, 「 소유냐 삶이냐」
[305호] 2017년 11월 02일 (목) 22:23:35 한혜경(중국언어문화) 교수 cuknews@catholic.ac.kr
   
 대학 시절 열심히 탐독했던 책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김진홍 역, 홍성사, 1979)란 책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생활패턴은 영락 없는 올빼미형 인간이었다. 늘 남들이 잠든 고요한 새벽 시간에 깨어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곤 했다. 한창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던 내게 에리히 프롬의 사상은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고 청탁을 받고 옛 추억을 회상하듯 다시 읽어보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새로웠고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 많았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말해 주듯이 삶의 기본 양식을 “소유의 양식(mode of having)”과 “존재의 양식(mode of being)”등 두 가지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 자아와 실존의 문제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깨우침을 얻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일찍이 소유 지향적인 삶에 대해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지만 욕망의 충족이 가져다준 쾌락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아무리 쾌락을 향유하더라도 삶의 진정한 목적인 고통 없는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소유를 향한 열정은 계급 관계를 형성하여 국가 내 국민 간의 갈등, 더 나아가 범세계적인 갈등을 야기한다. 이는 아마도 경제적 행동이 윤리 및 인간적 가치관과 유리되고 경제의 발전이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점점 잠식해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사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여 도구화하려는 기획을 중단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정치지도자들의 끝없는 회담과 결의안 등을 통한 다양한 제스처가 마치 인민들을 위한 매우 유용한 정치 행위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공익보다는 개인적 부의 축적과 성공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소유 지향적인 삶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 더 나아가 세계적인 갈등 관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처럼 소유 지상주의가 정치와 결합할 때 얼마나 무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는 최근 몇 년간의 정치 현실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예컨대 정치지도자를 뽑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성장과 안정을 가져다줄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도덕성의 결여쯤은 묵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국가를 이끌 정치 수반으로서의 도덕적인 자질에 심대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익에 부합된다는 이유만으로 두 눈을 질끈 감은 것이다. 정말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선택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뒷걸음질 치게 만듦으로써 우리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렇다면 존재의 양식에 입각한 시민들의 정치적인 행위는 어떠한 양상을 띨까? 존재의 양식은 탐욕 내지 배타성으로 점철된 소유의 양식과 달리 공유와 연대, 조화와 배려, 희생정신을 근간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 게다가 소유의 양식이 가진 것으로 자신을 규정해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분투하느라 소중한 가치를 저버렸다면 존재의 양식은 독립, 자유, 비판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내면정신과 경험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우리에게는 소유의 정치학이 빚어낸 불행한 역사가 있는 반면 의식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구어낸 값진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작년 이맘때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촛불 시민들의 함성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가장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10월 28일인 어제가 촛불 집회 1주년 기념일이어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더욱 깊은 감회를 느끼게 된다.

 어떠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삶의 양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질 수 있고 그 선택이 삶과 직결되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했으면 한다.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모종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최소한 자신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 신중한 판단을 내린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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