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연대, 그리고 언론을 위하여
학생 연대, 그리고 언론을 위하여
  • 이석훈(중문·2)
  • 승인 2018.05.22 11:47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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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아나키즘. 우리 대학 상황을 관통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느 특정 정치적 요소에 책임을 전가하기 힘들다. 지난 4월 27일자 학보 기사를 보면 그 부분이 매우 자세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에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회 학생과 일반 학생을 몇 명 선정, 취재해 글을 썼다.

지난 학보 총학 관련 기사들은 모두 연결돼 정치적 효능감이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함을 보였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허나 필자는 ‘학생들 간의 연대가 불가능해졌음’에 집중해보려 한다. 먼저 학보의 타 학교 총학 성공사례 기사를 보자. 기사에서는 학생들이 하나의 정치적 이슈로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학생 자치의 밑바탕 역할을 해냈다.

이미 많은 학우들이 알고 있듯이, 본교에서 이런 행태를 보기는 어렵다. 그 원인으로 학생회 학생과 일반학생 간 의견 차이에 의한 구성원 갈등을 제시하고 싶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몇몇 학생들에게 ‘학생회가 학생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회 소속이었던 학생들은 대부분 “소통하기 위한 여론 장치를 만들고 있는데, 학생들 관심이 지지부진하다”는 식의 답변을, 일반 학생들은 “기숙사의 전등 고장이 며칠 간 지속돼 넘어질 뻔한 적 있었다. 그러나 몇 년째 고쳐지지 않았다. 이를 학생회에서 적극 수렴해 해결해야 한다”와 같은 학생회에 대한 아쉬움이나 “학생 의견을 반영하기는커녕 축제나 새터 등 학교 행사에서만 역할을 한다”는 강한 비판을 보였다.

이 사안의 핵심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의견이 어느 특정 소속에 따라 첨예하게 달라지는 것, 그리고 이 괴리에 대한 건설적 토론, 대화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합의되지 않으면 서로는 서로의 관점에서만 사건을 해석·전달할 테고, 이는 학생들이 서로를 멀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뿌리가 약한 나무가 작은 바람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민주주의에 있어 뿌리는 ‘상호 존중에 입각한 대화의 과정’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언론기관의 역할과 그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본다. 사소해 보이는 갈등의 골을, 언론기관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한다면 어떨까. 이는 학생 의견이 제대로 피드백 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새로운 구견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공동체이든 의사 참여와 자치는 가장 중요한 권리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수천 가톨릭대 학우들에게 학생자치와 학보사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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