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이몽] 필름
[동지이몽] 필름
  • 고유정 수습기자
  • 승인 2018.06.07 10:30
  • 호수 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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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속에서 아날로그를, 아날로그 속에서 디지털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하지만 아날로그 자체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필름 현상을 해주는 사진관은 겨우 스무 곳 남짓이다. 이에 반해 흑백사진을 컨셉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파는 사진관은 유행처럼 번져간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아날로그가 그리운 걸까, 아날로그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리운 걸까.

작년부터는 필름 카메라를 모방한 애플리케이션 ‘구닥’이 인기를 끌었다. 구닥은 실제 필름 인화를 맡기는 것처럼, 3일이 지난 후에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16개 국가에서 애플 앱스토어 전체 카테고리 1위를 기록했다. 구닥은 ‘아날로그를 통해 그 시절 추억에 젖고자 하는 사람 심리’를 정확히 간파했다. 대표적인 ‘디지로그’(digilog·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인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굳이 ‘스마트’폰에서 필름 카메라가 나오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게다가 3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날짜를 앞당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볼 때면 ‘아날로그를 모방한 애플리케이션을 쓰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건 변함이 없구나’하고 생각한다.

난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온갖 지역 축제를 돌아다녔다. 여행지에서 엄마는 언제나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샀다. 인화 후에는 ‘0000년 00월 00일 00 축제’라 쓴 앨범을 서랍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일회용 필름 카메라는 관광지 노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필름 현상 또한 어떤 사진관에서든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었다. 현상할 곳이 없어져 필름카메라가 사기가 두려워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아직도 굳이 불편하게 돈을 들여 필름카메라를 쓰는 이유가 무어냐’ 물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한정된 컷 수, 현상 후에 확인 가능한 사진. 불편함이 만드는 신중함은 아날로그만의 것이다. 아날로그 특유의 맛을 잔뜩 변형시켜 놓은 것들은 어릴 적 일회용 똑딱이 필름 카메라를 다시 회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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