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의료보험?
누구를 위한 의료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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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6.22 15:05
  • 호수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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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으로 연일 시끄러운 요즘, 우리와 밀접하게 관계있는 일이 슬금슬금 추진되고 있었다. 얼마전 4월 6일, 본교 교수이면서 한나라당 소속인 손숙미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이 개정안은 2008년 발의하려 했지만 민심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했던 개정안과 유사하다. 6일 뉴스가 나온 이후, 국민들이 한바탕 술렁였다.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단어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떠올랐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항의했으며, 범국민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국민들은 이렇게 큰 병원들이 사익 추구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늘이다가 결국에는 의료보험을 의무로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으로 선택해야하는 의무도 완화해버려 결국 부자들과 일부 영리의료 법인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까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법안은 이 변화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개정안의 내용 중 국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의료인과 환자 간의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부대사업범위 확대, 의료법인의 합병허용 문제이다. 원격의료 허용을 한다면 사람들은 물론 더 크고 의료시설이 좋은 큰 병원으로 갈 것이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들은 손님이 적어져 운영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의료법인 부대사업범위 확대의 경우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부가사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부대사업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의료법인이 낸 이익을 의료기술의 발전에 투자하기보다는 이익이 더 많이 보장되는 부대사업으로 자금을 돌릴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의료법인 합병허용으로 이어 질 수 있다. 결국 의료기관 계열화의 길을 열어주게 되어 몸집을 부풀릴 수 있는 병원들은 계속 늘어나고, ‘중소기업’인 작은 병원들은 결국 ‘대기업’인 큰 병원이 흡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결국 일부 부자들과 큰 병원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법안들은 의료시장을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의료법 개정안의 발의되기 열흘 쯤 전, 미국에서는 100년 만에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은 세계의 선진국들 중 유일하게 민영의료보험제도이며 전 국민의 15%가 넘는 인원이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우리나라의 진료비에 몇십배에 달하는 돈을 내야 하는 곳이다. 이런 나라에서 대통령인 오바마가 나서서 의료보험 개혁을 주도하여 2014년부터 이 개혁안이 적용되게 된 것이다. 의료개혁을 추진할 당시 미국 국민들은 길거리 시위를 하는 등 상당히 거세게 반발했다. 소외계층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것은 곧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철폐하라는 말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불만들이 있었어도 오바마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이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 두가지 사실을 나열만 하더라도 한국은 한발짝 뒷걸음질치고, 미국은 한발짝 앞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의료법 개정 사건은 의료보험 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의료시술을 받을 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한발 멀어진 사건이었다. 정부는 실질적으로‘의료 보험’이라는 제도가 수혜되고 있는 주체들에게 이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고려해야 한다. 미국인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까지, 오바마는 의료보험개혁을 진행시켰다. ‘의료보험’이라는 제도가 가난한 다수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무시하여 점점 국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정부가, 과연 이번에는 어떤 대처를 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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