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함의 서재
철학함의 서재
  • 신 승 환 철학∙교수
  • 승인 2010.06.22 15:30
  • 호수 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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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학문으로서 철학은 신화적인 세계관을 넘어 인간이 지닌 어떤 정신적 능력으로 자연과 문화, 역사와 사회는 물론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해명해보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철학을 굳이 정의한다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해와 해석의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원리로 자신을 해명하며, 주체가 대상이 되는 자기회귀적인 학문이다. 그러기에 철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어떤 특정한 대상에 관계하는 체계가 아니다. 개별 학문은 그 학적 대상에 따라 규정되지만 철학은 이러한 모든 학적 원리 자체와 씨름하는 메타학문의 성격을 지닌다. 철학은 개별 학문이 자리하는 근원적 터전으로 자리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존재이며, 대상에서 앎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철학하고 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날듯이,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철학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철학의 행위를 명시적이며 주제적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 이름 할 수 있다.
 철학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오늘날 철학이 너무도 많이 오해되고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학만의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 전개하는 지적 활동, 자기이해의 행위 정체를 왜곡시킨다. 학문을 실용성이나 기능성으로, 또는 자본주의를 비롯한 사회체계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잘못 가운데 하나이다. 철학은 물론, 인간의 지적 행위로서의 학문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기능성에 자리하지 않는다. 학문은 인간의 존재론적 지평에 관계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이해와 해석의 근원적 특성에 관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에 기초하여 대상에 대한 개별 지식체계들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은 철학이 주장하는 오만한 자기만의 강변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인간이란 존재에 내재된 근원적 특성인 이해하고 해석하는 행위를 성찰할 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래서 철학하는 나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 너무도 널리 펴져있는 학문에 대한 오해와 근대성이 과잉으로 작동하는 현재에 대한 성찰의 작업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란 시대는 17-18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정립된 근대의 철학적 원리에 의해 체계화 되어 있다. 자연을 이해하는 특정한 학적 체계로서의 과학 기술은 물론, 경제적 조건성과 관계되어 체계화된 자본주의와 유럽 근대사에서 체계화된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근대체계와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근대를 넘어서는 철학적 원리를 요구한다. 그것을 흔히 탈근대성이라 이름 한다. 탈근대란 근대의 체계와 원리를 한편으로 감내하면서 다른 한편 이를 넘어서는 원리를 의미한다. 이 주제는 이 시대 철학의 당면한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기에 그런 문제와 대결하는 가운데 나의 철학적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존재론적 해석학과 탈형이상학이란 이름으로 주어진다.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오랜 사유의 역사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철학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삶이 쉽지 않고, 죽음이 간단한 사건이 아니며, 우리 존재가 가벼운 것이 아니라면, 그에 관계되는 철학이 가벼울 수는 없지 않은가. 철학적 작업은 존재와 삶이란 무게를 지닌 우리 모두에게는 숙명이고 현실이며, 존재 자체일 수밖에 없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철학자의 몫일 테지만, 삶으로서의 철학은 우리 모두의 과제인 것이다. 철학은 철학할 때 우리의 삶과 존재가 된다. 철학은 우리 존재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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