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참사’여전한 일용직 현장 노동자의 환경
‘이천 화재 참사’여전한 일용직 현장 노동자의 환경
  • 윤선주 기자
  • 승인 2020.05.22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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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29일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지하 2층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퍼져 지상 1층에서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고, 화재 발생 11분 후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염과 유독가스가 전 층에 확산된 상태였다.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12일부터 검찰과 국과수가 합동 감식을 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공사장 천장과 벽면을 채운 벽 속의 우레탄폼소재가 화재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레탄폼은 온도 유지를 위한 단열재로 쓰이는 건축 재료이다. 값이 저렴하고 단열 효과가 좋지만,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붙으면 유독성 연기가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따라서 우레탄폼 작업 시 화기를 사용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 안 된다. 그러나 소방당국의 화재보고서에 따르면 화재 당시 지하 2층에서는 우레탄폼 작업, 승강장 설치, 덕트 설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는 발화기기뿐만 아니라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에 소방당국은 발화기기나 담뱃불이 우레탄폼에 튀면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년 전, 이번 이천 화재 참사와 비슷한 사건이 이미 일어났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이다. 40명이 사망했던 이 사건은 지하 1층에서 우레탄폼 작업 중 유증기 폭발이 일어났고, 5분 만에 창고 전체로 불이 번졌다. 냉동창고의 건축자재 역시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이번 참사와 동일했다.

 

철판 사이에 우레탄폼을 넣은 일명 샌드위치 패널에 대한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됐다. 2008년 참사 이후 정부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불연재료나 준불연재료를 마감재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건설업자의 경제적 부담이 클 것을 고려하여 건물 외벽에만 시행령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고, 벽이나 기둥 등 건물 내부에 대해서는 따로 규제하지 않았다.

 

사고 사망자 중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로 파악되면서위험의 외주화문제도 지적됐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업체 측이 제출했던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현장 안전 개선을 요구했으나 공사 업체는 이를 미준수했다. 뿐만 아니라 화재 당시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확실히 하겠다는 입장을 유가족들에게 전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일환으로 총리실은 태스크 포트를 꾸리고, 필요하다면 법 제정도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주원인으로 지목된 샌드위치 패널에 대한 규제는 제도개선 때마다 무산되거나, 규제 범위를 완화하는 등 여전히 제자리인 상태이다. 또한, 희생된 특수고용 일용직 노동자들이 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아, 피해 보상 처리가 미미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천 화재 참사는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닌,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과 생명을 저버린 공사 현장 안전불감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참사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노동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법 제정과 적극적인 현장의 참여를 통해 참사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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