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한여름 밤을 수놓다.
[르포]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한여름 밤을 수놓다.
  • 이승민 기자
  • 승인 2020.08.28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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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름은 고전 음악 공연의 적기는 아니다. 높은 온도와 습도는 관객과 연주자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로 인해 평소와 조율을 달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악기가 습기를 머금고 늘어져 의도한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활에 바른 송진이 무더운 날씨에 녹았다가 다시 굳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2020년 여름 예술의전당에서는 예년과는 달리 장마가 극성을 부리는 여름에 교향악축제가 개최되었다. 가을에 진행되는 대학 오케스트라 축제와 더불어 예술의전당 음악당을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最高),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교향악축제를 굳이 비수기에 진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하여 평년에는 4월에 진행되던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의 적극적인 개최 의지 덕분에 늦게나마 공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불참 의사를 밝힌 대구시향 대신 서울시향의 참여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해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의 내한 공연에 어려움이 있어 공연 프로그램이 일부 변경되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이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충분한 연습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평소보다 장마가 길게 이어지는 등 2020 교향악축제는 시작부터 내내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

 

이러한 난국에도 불구하고 2020 교향악축제는 728일 서울시향 공연을 시작으로 810KBS교향악단 공연까지 총 14번의 공연을 열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예년보다 1주일가량 줄어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공연을 진행하여 내실 있는 행사가 될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실황 공연뿐만 아니라 예술의전당 야외광장과 네이버 TV를 통한 생중계로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교향악축제 이전에는 수기로 문진표를 작성했지만, 교향악축제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입장할 것을 감안하여 QR코드를 이용한 전자문진을 도입하여 감염 우려를 최소화하였다.

 

공연 이전에는 2020년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기에 프로그램들이 베토벤 일색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한때 교향악축제를 휩쓸었던 말러 붐과 같이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부족해져 관객들로 하여금 진부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연주 단체들이 다양한 작곡가의 곡들을 선곡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특히, 84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가 1부를 글라주노프의 곡들로 구성한 점이나, 86일 인천시향이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바이올린 협주곡등의 곡들을 선보인 점, 89일 원주시향이 이지수 작곡가의 달의 바다를 초연한 점이 그 예시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엘가 첼로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3영웅’, 5운명’, 7, 차이콥스키 교향곡 4, 5, 6비창’, 멘델스존 교향곡 4이탈리아등 여러 명곡이 연주되면서 익숙함과 혁신 사이의 조화를 잘 이끌어낸 선곡이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731일 수원시향의 2부 베토벤 교향곡 7번이나 810KBS교향악단의 엘가 첼로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 뛰어난 연주로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모두 고전적인 해석이었는데, ‘고전이 왜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지를 보여주는 연주였다.

 

2020 교향악축제는 예년과 같이 벚꽃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코로나와 호우로 지친 사람들에게 호연을 통해 슬픔을 달래었다. 추도곡으로 종종 연주되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님로드와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등의 구성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또한, 베토벤 교향곡 3영웅5운명에서는 위기와 시련을 초월한 악성(樂聖)’의 자화상을 그려내며 암울한 시대에 대한 극복 의지를 북돋웠다.

 

축제 이전부터 여러 악재에 시달리며 우려와 함께 시작했지만 교향악축제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힘든 시기에도 불구하고 호연을 이끌어 낸 여러 음악가뿐만 아니라 축제가 관객과 만나줄 수 있도록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헌신한 의료진들과 방역 수칙을 철저히 따라주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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