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되감기] 어디서나 자라는‘미나리’처럼
[필름 되감기] 어디서나 자라는‘미나리’처럼
  • 손정민 수습기자
  • 승인 2021.05.27 15: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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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영화 관람 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미나리>1980년대,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아칸소로 이주한 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부부간의 갈등,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 간의 갈등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아칸소로 이주한 주인공 가족 (출처_NAVER 영화)
아칸소로 이주한 주인공 가족 (출처_NAVER 영화)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아내 모니카(한예리 분), 딸 앤(노엘 조 분), 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을 이끌고 아칸소로 이주한다. 모니카는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데이빗의 심장병도 치료하고자 한다. 그러나 제이콥은 미래도, 비전도 없이 도시에서 살기보다는 농사를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족을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 모니카도 제이콥의 꿈을 인정하고 도우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제이콥이 수원(水源)을 찾지 못해 생활용수를 끌어와 농사를 짓다가 집에 물이 끊기며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모니카와 제이콥이 바빠지면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앤과 데이빗을 돌보려고 한국에서 온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데이빗은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온 순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순자가 데이빗의 짓궂은 장난까지 사랑으로 감싸주며 어느새 둘은 가족으로서의 정을 느끼게 된다.

미나리를 심은 순자 (출처_NAVER 영화)
미나리를 심은 순자 (출처_NAVER 영화)

 

가족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순자는 미나리를 심는 등 가계를 도우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조차 힘들어진다. 제이콥은 농산물을 납품할 업체를 찾지 못하고, 모니카는 순자의 치료를 위해 더욱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데이빗의 심장병도 기적적으로 호전되고 제이콥은 농산물을 납품할 가게를 찾지만, 이미 서로의 삶의 방식에 지쳐있던 부부는 결별하려 한다.

 

역설적이게도 순자의 실수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농산물 창고가 불타면서 갈등이 모두 해소된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창고의 불을 끄는 과정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한다. 순자는 죄책감에 가족을 떠나려 하지만, 데이빗과 앤이 그녀를 붙잡으며 그녀도 손자들의 사랑을 느낀다. 가족들은 서로가 있어 이때까지 버텨 왔고, 앞으로도 서로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끝까지 가족의 현실을 낙관하지 않는다. 힘들게 키워낸 농산물은 없어졌고, 순자는 뇌졸중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 가족은 비로소 꿋꿋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농사도 처음부터 다시 지을 것이고, 아플 때는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어나가야 하지만 가족은 이전과 다르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보인다. 특히 제이콥은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모니카의 말대로 돈을 들여 수원을 찾고, 순자가 심어 놓은 미나리를 확인하러 간다. 가족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 내내 순자는 미나리 is wonderful”이라는 대사를 반복한다. 미나리는 물가에만 심어 놓으면 스스로 잘 자라나 훌륭한 음식이자 약재로 쓰인다. 주인공 가족 역시 험한 미국 타지에 던져졌지만 어떻게든 꿋꿋이 살아간다. 미나리가 자라는 원동력이 물인 것처럼,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영화는 80년대 미국 이민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가족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세대를 관통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힘든 현실의 삶도 사랑으로 견뎌내는 가족의 모습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가장 담담하고도 따스한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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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21-06-04 00:48:21
심금을 울리는 글 잘 봤습니다,,, 씨엠씨 미나리 손정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