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helf of CMC]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연구하는 박승만 선생님에게 책은 더 나은 연구자이자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바탕이다
[Bookshelf of CMC]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연구하는 박승만 선생님에게 책은 더 나은 연구자이자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바탕이다
  • 이승민 기자
  • 승인 2021.06.12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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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helf of CMC>는 성의교정의 교수님들을 만나 다양한 의학 분야에 관해 들어보고,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의학이라고 하면 환자를 대면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이나 실험실에서 병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는 기초의학, 또는 인구를 관리하는 예방의학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 역사가 있듯이, 의학에도 의학사가 있고 이를 연구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의학의 사회문화사는 의학과 사회, 문화가 서로를 구성하고 매개하는 과정에 대한 탐구이다. 의학 지식이나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또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용하는지에 집중하는 연구 방식이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연구하는 박승만 선생님에게 책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본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서는 더 나은 연구자이자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바탕이다

 

역사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객관적인 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탓입니다. 따라서 역사학은 단순히 과거를 밝히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연구가 누구를 또 어떤 가치를 대변하는지 늘 고민합니다. 적어도 제 연구가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주목받지 않는 목소리를 전하고, 전해지지 않는 역사를 알리며, 기존의 지배적인 서사에 도전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누구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였는지 살펴야 하는 동시에, 현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끝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그에 앞서 한국 사회를 사는 시민으로서, 저버릴 수 없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책은 더 나은 연구자이자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바탕입니다. 매우 애석하게도, 역사학 연구자는 자신이 발 디딘 사회나 공동체의 편견을 그대로 공유합니다. 특정 계급과 성별, 성적 지향, 신체적, 정신적 상태, 출신 지역, 인종, 직업, 나이, 학력, 종교 등에 대한 편견 모두를 말입니다.

 

편견은 좋은 연구를 가로막습니다. 편견으로 뒤덮인 글은 그저 통념을 반복할 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견 속에서 역사학 연구자는 좋은 시민이 될 수도 없습니다. 편견이 가득한 글로 인해,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수많은 이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담은 책이 많습니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선입견을 끝없이 점검할 수 있고, 또 점검해야만 합니다. 물론 독서가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다른 이와의 대화나 다른 이의 삶을 담은 영상물 시청도 큰 도움이 됩니다.

 

1. <다시, 미시사란 무엇인가>

곽차섭 엮음

푸른역사

2017

 

몇 년 전, 우연히 어떤 농부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신권식 옹께서 1950년대부터 작성하신 대곡일기였습니다. 의사가 없는 무의촌에서 사람들이 어떤 질병으로 고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한국 농촌 의료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정신없이 일기를 들여다보며 논문을 썼습니다.

 

이처럼 개개인의 인생 역정은 수많은 현실의 단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구체적인 삶의 면면뿐만 아니라 구조에 대한 이해를 새로이 돌아볼 실마리가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역사 서술은 개별의 삶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역사가는 입을 모아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역사학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2.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0

 

페미니즘은 일상에 녹아든 정치를 정교하게 분석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세계의 여러 시스템이 여성에 대한 정보를 무시한 채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로 인한 젠더 데이터 공백이 여성을 가난하고 아프게 만든다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와 근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여성의 피해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스크의 크기나 백신의 용량이 남성에게 맞게 설계된 탓에, 여성은 불필요한 위험을 강요당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 이런 일은 진실로 비윤리적입니다. 전공이나 관심사에 무관하게 모두가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입니다.

 

3. <조류독감: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돌베개

2008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감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우한폐렴이라는 말이 단적으로 나타내듯, 그저 중국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가득할 뿐입니다. 이상한 식습관 탓에 아니면 생물학 무기를 만들기 위한 비밀 실험 탓에 괴상한 병이 생겼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과연 중국이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일까요? 마이크 데이비스는 조류독감의 예를 통해, 감염병의 유행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데이비스는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립니다. 작년에 출간된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4. <인류세의 모험: 우리가 만든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다>

가이아 빈스 지음

김명주 옮김

곰출판

2018

 

인류세(人類世)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 환경에 미친 변화가 너무나도 큰 탓에, 인류의 시대를 새로운 지질 시대로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가이아 빈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숲을 그대로 둘지 베어낼지, 판다가 생존할지 멸종할지, 강이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는 물론 대기의 온도까지 결정"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윤리적 의무는 현대 한국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공간으로 따지면 지구 공동체, 시간으로 따지면 미래 세대까지 고려할 수 있고 또 고려해야만 합니다. 환경 위기는 그렇게 시공간의 범위를 넓혔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이 책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잡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5.<,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 (2016)

 

마지막 자리는 영화에 양보하고 싶습니다. 심장병으로 일을 그만두어야 했던 블레이크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복잡하고 비인간적인 제도 앞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런 좌절 속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케이티를 돕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이웃이 되어 살아갑니다.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 굳이 영화를 꼽은 이유는 , 다니엘 블레이크가 제가 생각하는 글의 이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앞서 드린 말씀처럼, 개인의 눈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감독은 블레이크라는 보통 사람의 삶을 통해, 복지국가 영국이라는 허울 좋은 통념이 가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나아가, 감독은 블레이크와 케이티의 관계를 통해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연대는 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복지사무소 담벼락에 큰 글씨로 항의의 메시지를 남기는 블레이크를 향해 수많은 행인은 손뼉을 치며 응원을 보냅니다. 개인의 삶에 가닿는 연대의 글, 그런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인터뷰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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