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컬처] 죽음 곁에서 생명을 찾다,‘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본인컬처] 죽음 곁에서 생명을 찾다,‘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손정민 기자
  • 승인 2022.03.30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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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보문고
출처 교보문고

지난 2월 26일,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고(故)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고인은 1956년 한국일보에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언론인, 소설가, 비평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렸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해, 굴렁쇠 소년으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고 이어령 교수는 췌장암을 진단받았으나 수년간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을 병원에서 무기력하게 보내기보다는, 죽을 때까지 저서를 쓰며 세상에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암이라는 위력적인 병 앞에서도 굳건한 정신력을 보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병마에 맞서 싸웠다.

 

그런 고인이 김지수 기자와 16번의 만남을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해 나눈 이야기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담겨 있다. 책은 코로나, 종교, 디지로그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죽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고 이어령 교수는 인간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에 집중하게 된다고 보았다. 옛날에는 묘지도 집 가까이 있었고, 가족의 죽음을 곁에서 밀접하게 지켜보는 경우가 지금보다 많았다. 역설적으로 죽음이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퍼졌다. 어른들은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등의 말을 쉽게 하고, 어린아이들도 혼나면 ‘누가 낳아 달랬어? 낳아서 고생만 시키잖아’와 같은 말을 금세 해버리곤 한다.

 

오히려 최근 죽음의 위기가 코앞에 닥쳐서야 사람들은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됐을 때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길게 줄 서 있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이 건강, 생명을 위해 이렇게 필사적이었던 때가 있었는가. 전 인류가 죽음을 망각하고 지냈다가, 오히려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이 생명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고 이어령 교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죽음을 의식할 때 삶에 대한 인식도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이어령 교수는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저서를 쓰고,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메멘토 모리’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특히 마지막 16번째 인터뷰를 다음의 말로 끝맺는다.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실제로 별세 이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고 이어령 교수는 이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을 돌아볼 기회를 선사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시대의 지성으로 빛나며 사람들에게 큰 지혜와 감동을 나눠주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그만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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