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칼이 되는 단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는 단어
  • 윤채현 기자
  • 승인 2022.04.17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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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주린이 주식 조언 요청합니다’, ‘결정장애 왔는데 음식 추천해줘’, ‘나 확찐자 됐어’. 모두 교내 에브리타임에서 볼 수 있는 글이다.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주린이’가 들어가는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O린이’, ‘결정장애’, ‘확찐자’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정할 때 망설이고 한 쪽을 고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을 결정장애라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을 O린이라고 자칭하곤 한다. 이와 같은 단어들이 혐오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표현 실태 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통해 혐오표현을 정의했다.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다. 

 

작년 4월, 교보문고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O린이라는 용어 사용과 관련된 시각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6.2%는 O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31%는 사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나머지 42.8%를 차지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O린이라는 용어를 가치중립적으로 보았다.

 

이처럼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O린이라는 용어를 혐오 단어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O린이라서 잘 몰라요’라는 말은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이며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선입견이 내포된 것이다. 국제아동인권센터는 O린이와 같은 단어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사용을 지양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지혜 작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우리 모두에게는 차별감수성의 사각지대가 있다.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듯, 어떤 차별은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공정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예시로, ‘결정장애’처럼 어떠한 단어에 장애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열등함을 내포한다. 또한, 이주민들에게 쓰는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는 말은 자신이 한국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주민들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뱉은 단어가 차별적 표현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또한, 홍성수 작가는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혐오표현이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혐오표현이 차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며,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혐오의 확산에 취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심리학자 올포트가 제시한 ‘편견을 가진 사회의 조건’에 한국이 해당하는 요소들이많음을 지적한다. 순서대로 ▲사회구조에 이질적 요소가 많고 ▲사회 이동성이 있고 ▲급격한 사회 변화가 있고 ▲의사소통과 지식의 전달이 막혀 있고 ▲소수자 집단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경쟁과 갈등이 있고 ▲착취로 이익을 얻고 있고 ▲공격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억제되지 않고 ▲민족중심주의의 전통이 있고 ▲동화주의나 문화다양성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그 조건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상황을 정교하게 분석할 여력은 없지만, 올포트가 제시하는 상황적 요소 중 한국에 해당하는 것이 적지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혐오표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공존의 사회로 가기 위함’이라며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방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현재 정부는 혐오표현 방지를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작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제1차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차별표현 시정을 통해 문화다양성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상 언어, 표현 및 관습 등에서 나타난 차별 표현의 대안 표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특정 문화, 인종, 국가 관련 혐오발언으로 다문화 가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제정할 계획을 전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이지만 칼이 되는 단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칼에 찔려 누군가는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되는 혐오표현에 경각심을 갖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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