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환자실을 벗어난 이후 환자의 삶,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칼럼] 중환자실을 벗어난 이후 환자의 삶,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 오하은 수습기자
  • 승인 2022.04.27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원 사람들은 저를 숫제 임상 실험물 취급이지 뭡니까” ​

 

이청준 소설가의 <빈 방> 속 한 대목이다. 20세기에 쓰인 문구이지만 지금의 의료 실정에도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때까지, 병원이 우리의 삶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끊임없이 높아져 왔다. 이전에는 그저 병리적 증상을 해결해주는 곳으로 생각되던 병원이 이제는 질 좋은 의료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생과 사의 경계에 호젓이 서 있는 병원은, 그 설립 목적에 부합한 역할을 무탈히 감당하고 있을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 ICU)은 중증의 질환으로 위독하거나 수술을 전후로 집중적인 관찰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집중 치료가 시행되는 곳으로, 병원 현장 일선에서 현재 의료 실정을 대변해주는 대표적 지표이다. 중환자실 내에서 행해지는 임상 술기는 크게 인공호흡기, 심폐보조장치(ECMO), 그리고 지속적 신대체요법(CRRT) 정도로 나누어진다. 삽입된 튜브 혹은 카테터가 빠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억제대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안내 메뉴얼이다.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 환자들은 24시간 의료진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다. 곁에 있는 수많은 감시 장비들은 하루 종일 소리를 내며 활력징후가 측정되고 있음을 알려온다. 때문일까,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멀쩡하던 사람도 불안과 신경쇠약 등의 정신 질환 증상을 호소해 온다.

 

중환자실 치료 후 증후군(Post Intensive Care Syndrome, PICS)이란 중환자실 치료를 마친 대상자에게서 보이는 신체적, 정신적 병리 상태를 통칭한다. 회복했다는 담당의의 판단 아래 중환자실을 떠난 환자들이 병실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사건을 겪은 후에 지속적으로 공포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그 양상이 비슷하다 볼 수 있다. 현대 병원은 원내 감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감염 방지대책위원회를 조직하는 등의 해결책을 통해 원내 감염률 저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중에 있다. 하지만 피상적이지 않은 정신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PICS 대상자들은 외면되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을 “마치 정육점의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라고 묘사한다. 치료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의사 표시는 묵살된다. 의료진에게 그는 차례를 기다리는 한 대상자로 여겨질 뿐이다. 24시간 환한 불빛과 사방에서 돌아가는 기계 경고음 소리, 옆 환자의 신음 소리와 흐느낌이 들려온다. 대상자의 위중한 병리 상태에 중환자실의 열악한 환경이 더해져 중환자실에서의 치료는 환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다. 차라리 의식이 없어 기억을 못한다면 다행이다. 주변 인식이 가능한 상태였던 환자는 중환자실에서의 경험을 고문, 지옥과 같은 단어에 비유하곤 한다.

 

병원은 중환자실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임상 조치들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이 되어 동일한 체제 안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의료진과 정책가가 과연 몇이나 될지 묻고 싶다. 죽어가는 환자의 숨을 몇 분이라도 더 붙여 놓을 수 있다면, 이를 위해 행해지는 모든 술기들은 정당한 선택일까? 현재 중환자실이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만약에 있다면, 개선을 가능케 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현재 시스템에 대해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붕괴된 의료 시스템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해답은 ‘의료진 1인당 담당 환자수를 줄이기 위한 중환자실 내 의료인력 확충’과 ‘환경 개선 등 병실 내 환자가 겪게 될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 있다. 실제 중환자실 치료 후 증후군은 많은 경우 대상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나 곁에서 투병 중인 환자로부터 들려오는 소음으로 인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전인적 간호*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료 인력이 확보되고 1인실 병동을 늘리는 등 병상 간 간격이 확보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왜 인간 중심의 의료를 수행하고 있지 않느냐고 의료진을 질책하기 전에 정책적으로 의료진이 인간 중심의 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고 있는지부터 확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인적 간호: 환자의 입장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간호

 

병원은 사회복지 혹은 종교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대상자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달라고 이야기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병원과 의료진 더러 대가 없이 봉사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병원에 교목실이 있고 사회복지사가 있듯,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맞닿아 있는 병원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첫째로는 법적으로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되, 궁극적으로는 의료진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일인 것이다.

 

병원의 영문인 hospital은 라틴어 hospitale에서 파생되었다. ‘다친 나그네들을 위한 쉼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는 표준화된 지침을 따라 고안된 공장 같은 시스템에서 벗어나 진정한 병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할 시기이다.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랬듯, 사회가 이전 관습의 굴레를 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모하려면 수반되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합심이 있어야 한다. 작게는 중환자실 치료 후 증후군, 크게는 의료 시스템 붕괴의 해결을 위해 법조계와 의료계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