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존엄인가 경시인가
안락사, 존엄인가 경시인가
  • 홍연주 기자
  • 승인 2022.04.28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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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어떻게 죽고 싶은가? 20대에게 죽음은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20대로서 막연하게 생각해 본 죽음은 ‘편하게 죽고 싶다’ 정도로 그칠 것이다. 적어도 고통 속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안한 죽음’, 이 죽음이 안락사 없이 실현 가능한 것일까?

 

지난 달 19일, 그의 아들 안토니 드롱을 대변인으로 하여 알려진 알랭 드롱의 말이 논란이 되었다. 그는 훗날 고통 속에서 가지 않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알랭 드롱은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배우다. 한 때는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며 유럽 전역과 한국, 일본 등의 아시아 각지에서 20세기 후반 영화계를 휩쓸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그가 안락사에 긍정적인 의견을 표한 것은 찬반 논란을 만들기 충분했다.

 

논란 속에서, 그는 안락사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입장을 굳혔다. 그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선택도 인간의 권리다. 현재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미국의 일부 주 등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적극적 안락사라 해도 모두가 이러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국가들은 불치병과 회복 가망이 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안락사 전에, 오랜 기간동안 의사와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며 안락사에 대한 의지가 아주 확고한 사람만이 안락사를 맞이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자살을 막기 위해 소극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알랭 드롱의 주장처럼, 안락사가 최후의 존엄을 보장해준다는 이념 하에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 중이다.

 

반면에, 한국은 안락사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다. 한국의 안락사 논의는 오래되지 않았다. 2013년에 국가생명윤리심사위원회에서 안락사 관련 법안 제정을 요청한 이후,2018년에 들어서야 ‘연명의료결정법’이란 이름으로 안락사가 실행되기 시작했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안락사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적은 있지만, 법안 제정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유지하던 김 할머니의 가족이 퇴원을 요구하자 병원이 거절한 것이 계기가 되어, 원하지 않는 연명 치료를 중단할 권리에 대한 소송으로 번진 사건이다. 마침내 대법원이 가족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일부 병명에 한하여, 임종에 들어간 말기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아주 소극적인 안락사이다. 그러나, 제정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해당 법안이 적극적으로 실행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환자의 의사와는 별개로, 환자의 생명 연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란 관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법적 근거가 구체적이지 않아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극적 태도는 1997년 서울 보라매 병원의 의사가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의 가족 요청에 따라 해당 환자를 퇴원시킨 행위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된 사건을 발단으로 이어져왔다.

 

또한,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 말고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타인에 의한 의도적 죽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스위스의 형법 115조는 ‘이기적 동기로 타인의 자살이나 자살 시도를 유발하거나 도와주어 만일 그가 실제 자살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였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안락사가 아니어도 고통받는 타인의 요청에 따라, 이타적인 마음으로 자살을 도와준 경우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가족이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 장치를 떼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안락사가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여 극히 제한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서울신문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우리나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에 관한 의견을 조사했다. 결과는 80%가 안락사에 찬성했다. 찬성한 이들은 △가능성이 없는 삶에 고통받으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 △식물인간이 된 채로 삶이 연명되는 환자, △감당 불가능한 치료비를 내느라 환자와 가족들 모두 고통받는 경우, △연명 치료에 대한 거부로 자살을 선택하는 환자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어떻게 하면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을지를 논해야 할 때라며 의견을 밝혔다. 20대인 우리가 편안한 죽음을 원하는 것처럼, 임종을 앞둔 몇몇의 사람들도 편안한 죽음을 소망한다.

 

안락사가 관련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편안한 죽음에 안락사는 깊이 관여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죽어간다. 필연적 죽음을 편안하게, 원하는 형태로 맞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존엄인가, 아니면 생명 경시의 문제인가. 기사를 끝내며, 안락사에 대한 두 견해를 역사적 맥락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책인 『안락사 논쟁의 새 지평』(한스 큉, 발터 옌스. 2010. 세창출판사)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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